영랑동은 농업과 어업, 상업 등의 다양한 산업분포를 이루고 있으며, 청정해역을 자랑하는 동해안으로는 관광객의 입맛을 돋우는 횟집타운이 소재하고 있어 지역경제의 중추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 영랑동 누리집
<출처: 속초시청>
영금정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풍경은 절경이다. 영금정하면 정자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금정의 영자는 신령 영(靈), 거문고 금(琴), 정자 정(亭) 자를 쓴다. 신령스러운 거문고 소리가 나는 정자모양으로 생긴 석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영금정은 큰 바위로 이루어진 절경의 산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바위를 부셔 방파제를 만들어 속초의 명소가 없어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나라의 선녀들이 하강하여 영금정에서 목욕을 하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다시 돌아갔다고 하여 영금정 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영금정에는 장군이 말을 타고 다녔다는 너럭바위 위에 말발굽 모양이 있다. 영금정에 징바위가 있는데 바위를 치면 징소리가 난다고 하여 징바위라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에 신라시대 화랑인 영랑(永郞), 술랑, 삼조, 남석등이 금강산으로부터 고성 삼일포에 와서 3일동안 수련을 하고 각각 분산했습니다. 영랑만이 이 호수에 와서, 뱃놀이를 하며 선유하던 곳이라 해서 이 호수의 이름이 영랑호라 불리어 왔습니다.
영랑호 남쪽 기슭에 송림이 울창한 복판에 자그마한 사찰이 하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서기 637년전에 정혁담이라는 승려가 사지를 건립하고 53불의 보광부처를 보완하였다고 해서 보광사(普光寺)라고 이름이 불려왔습니다.
그리고 영랑호는 아주 물결이 맑고 잔잔해서 언제나 어족이 풍부하며 낚시를 즐기는 태공(太公)들과 뱃놀이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속초 시민의 휴식처가 바로 영랑호입니다.
그럼 영랑호를 떠나서 유래를 마치고 그전에부터 불교가 맨 처음에 어디서부터 번성했나 하면 인도에서부터 번성했는데, 인도에서부터 번성하면, 당나라 동남사, 지상사, 원나라 윤재사, 개국사를 거쳐서 금강산으로부터 금강산 신개사, 유점사 장안사 3개 사찰을 거쳐 가지고, 이 영동지구 관동8경을 쭈욱 내려 오는 그 승려가, 원래는 승려가 말을 탔다고 하면 위법적이지만, 그러나 거리가 워낙 멀고 보니 어딘가는 그 아주 말먹이가 무성하게 자라 있고 그 꼭 말 먹이를 했으면 좋겠어서 말에서 내려서 풀을 비어서 말을 먹일라고 풀을 비어서 등에다 싣고 말을 타고 올라와 보니 점심 때가 되었어요.
시장끼가 있어 하는 것 같아서 그 풀단을 풀어 가지고 말을 먹이고 그래 ‘먹이재’라 하는 데가 오늘날에 와서 그 풀단을 풀어서 먹였다고 해서 먹이재입니다.
그래 먹이재를 거쳐서 이 봉우리 꼭대기를 올라와 보니 인도에서부텀 포도 전법이 부족한 지라 여기서 수 년간 수도를 해야 되겠다 해서 그 바위 틈에서 수도를 수 년간하고 그래서 거기서 도(道)가 통했어요. 그 포도 전법을 통달을 해서 그분이 그제서 도가 통했다고 해서 이를 ‘달마봉’이라 불렀고, 달마대사가 바로 이 분입니다.
<유만석, 남·50, 설악동, 1981. 4. 17>
영랑호, 영랑동 선사유적, 영금정 등
초등학교 : 영랑초등학교
고등학교 : 속초고등학교
특수학교 : 속초청해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