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학동

                                                                                                                                                                                                                                                           

1.개요

노학동은 상가ㆍ주택ㆍ아파트ㆍ학교ㆍ기관ㆍ교육 등이 밀집된 도시지역과 농경지, 순두부, 토종닭, 딸기 등의 자연부락이 어우러진 도농 복합지역으로서 속초 경제·문화의 중심지역이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21,208총 인구수
10,526인구(남)
10,682인구(여)

4.지명의 유래

  • 노학동 : 노학동(蘆鶴洞)은 1966년 동(洞)제 실시 때, 종래의 노리(蘆里), 도리원리(桃李源里), 이목리(梨木里),척산리(尺山里), 신흥리(新興里)를 합쳐서 노학동(蘆鶴洞)이라고 명명하였다. 노학(蘆鶴)이란 이름은 노리(蘆里)의 '노(蘆)'자와 척산리(尺山里) 학사평(鶴沙坪)의 '학(鶴)'자를 딴 것이다. 조선(朝鮮) 후기 읍지(邑誌)를 살펴보면 현재의 노학동(蘆鶴洞) 지역에는 행정상 동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고, 행정상 논산리(蘆山里)에 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던 것이 그 후 사람들의 거주가 늘어, 일제시대(日帝時代)부터 행정상 노리(蘆里)가 신설되었고, 습지대의 개발과 버덩의 개척에 따라 더욱 더 인구가 늘어, 1942년 속초면(束草面)이 속초읍(束草邑)으로 승격 될 때, 노리(蘆里)는 노리(蘆里), 도리원리(桃李源里), 이목리(梨木里), 척산리(尺山里)의 4동리로 나뉘어졌다. 그리고 1962년 타도 지역에서 많은 인구가 뒷버덩으로 집단 이주해 와서 신흥리(新興里)가 신설되었으나, 얼마 안되서 1963년 속초시(束草市)로 승격되고, 1966년 동(洞)제가 실시됨에 따라, 종래의 노리 (蘆里) 지역이 모두 합쳐져서 노학동(蘆鶴洞)으로 명명되었다. 현재는 1998년 10월 17일 동 통폐합으로 (구)교동(校洞) 일부를 병합하여 도농 복합 행정동을 구성하고 있다.


<출처: 속초시청>

5.지역의 옛이야기

5.1.파명당과 학사평

우리 민족은 예부터 명당자리를 중시하였다. 명당자리와 관계된 이야기가 노학동에 전해오고 있다. 이곳에 이름난 유명한 가문이 있었는데 이 가문은 대대로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하는 인사도 많았고 이름난 학자도 많은 명문거족이었다.

그런데 이 집안이 언제부턴가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였다. 과거에 급제하는 사람도 없고 집안에 사람이 죽고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가문 사람들이 모여 집안의 일을 의논하면서 집안이 잘 안 되는 것은 묘 자리 때문이라고 하였다. 당시만 해도 풍수설을 상당히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집안이 잘 안되면 묘자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집안사람들이 지관을 모시고 집안의 조상의 묘를 다시 정하기로 하였다. 지관을 모시고 조상의 묘를 보니까 음지여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그런데 묘를 옮기려고 파니까 봉분을 다 파고 관이 드러나자 학 두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학 두 마리가 날아올라서 한 마리는 북쪽을 향해 날아가고, 한 마리는 남쪽을 향해 날아갔는데 북쪽으로 향해 날아가 학사평(鶴沙坪) 고을에 앉았다. 그때 학사평은 모래밭이었다. 그래서 학사평이라고 하였다.

남쪽으로 날아간 학은 손양면 학포리(鶴浦里)로 날아갔다. 학포리로 날아가 그곳에 앉았다고 하여 학포리가 되었다.

이러한 파명당 이야기는 많은 지역에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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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