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시의 최북단에 위치한 읍으로, 주문진항과 해변으로 유명하다.
읍은 주문리, 교항리, 향호리, 장덕리, 삼교리 이상 5개의 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읍소재지는 주문리이다.
<출처: 속초시청>
울산바위에는 바위정좌내력과 그 내력 때문에 벌어진 지세다툼 일화가 얽혀 있다. 외설악의 내원암(內院庵)을 지나 마주보이는 웅대한 암산과 울산바위는 금강산을 조성하려고 울산에서 옮아온 바위였다. 때가 늦어 금강산에 정좌하지 못하고 외설악에 주저앉았는데, 이러한 전설 때문에 근처 신흥사가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울산에서 놀러온 유생들이 주지에게 울산바위를 가져다 놓았으니 지세(地稅)를 물라는 것이었다. 막대한 지세에 절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동자승이 꾀를 내어 지세지불을 거절하였다. 바위 때문에 도리어 산림이 피해를 보고 있으니 바위를 도로 옮겨가라고 맞섰던 것이다.
그러자 지세를 받으러 왔던 사람은 재로 새끼를 꼬아 바위에 얽어매주면 가지고 가겠다고 버티었다. 동자승은 소금물에 적신 새끼줄로 바위를 동여매고 불에 태워 거죽만 타게 한 뒤 가지고 가라고 하니, 지세를 받으러 온 사람은 아무말 못하고 갔을 뿐 아니라 다시는 울산바위의 지세를 받으러 오지 않았다 한다.
설악산의 절경 중에 권금성은 일품이다. 이러한 권금성은 재미있는 전설을 갖고 있다.
아주 오랜 옛날 한 마을에 권씨 성의 장사와 김씨 성의 장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이 쳐들어오자 산세가 험한 곳으로 피난하였다. 그곳의 지금의 권금성 자리이다. 적이 오자 방어할 길이 없어 서로 의논하였다. 그래서 두 장사가 그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적병이 오기 전에 성을 쌓아야 할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안에 성을 만들어야 화를 면할 것이오.”
하지만 성을 쌓는 다는 것이 결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의논 끝에 돌을 날라다가 이곳이 쌓기로 하였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는 다면 몇 달이 걸릴 것 같았다.
두 장사가 궁리 끝에
“이렇게 합시다. 돌을 날라서는 성을 쌓을 수 없으니 내가 강에 내려가 돌을 던질 테니 당신은 여기서 받아서 성을 쌓으시오, 그래야만 하루 밤에 성을 다 쌓을 수 있을 것이요."
“좋습니다.”
그래서 권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주어서 던졌다. 그러면 김장사는 그 위에서 돌을 받아가지고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힘들면 서로 교대로 김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던지고 권장사는 위에서 돌을 받아 성을 쌓았다.
이렇게 권장사와 김장사가 만든 성이라 權金城 이라고 부른다.
계조암은 예부터 스님들이 도를 터득하기에 좋은 도량으로 많은 수도자들이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계조암 부근에는 매미가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계조암에서 듣는 매미들의 소리는 계곡에 울려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계조암과 매미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스님이 도를 닦기 위해 계조암에서 수도를 시작하였다. 스님의 일은 하루 종일 도만 닦고 그 외에는 잠자는 것이 전부였다. 스님은 도를 닦다가도 한 낮에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났다. 그래서인지 밤에는 깊은 잠에 들 수가 없었다. 여름만 되면 한 밤에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였다. 그 이유는 숲과 냇가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에 잠 못 들고 심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스님은 아직 도를 터득하지 못해서인지 개구리 소리에 초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개구리를 모두 찾아다니며 쫓을 수도 없고, 다 잡을 수도 없고 어쩔 수 없는 형편에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은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도를 터득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그 도를 터득하지 못하여 여러 방법과 노력을 해 보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방법과 연구와 비책을 통해서 마침내 개구리 울음을 그치게 하는 도술을 터득하였다.
그 여름부터 개구리가 울어대기 시작하자 부적을 만들어 던지자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였다. 그때부터 스님은 편안하게 밤잠을 푹 잘 수 있었다. 자신의 노력과 궁리를 통해 자신을 괴롭히던 자연물을 없애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밤잠을 설치게 하던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해결했지만 낮잠을 방해하는 매미소리는 또 하나의 방해물이었다. 스님은 개구리에게 사용했던 방법을 매미에게도 똑같이 사용하려고 하였다. 이에 스님은 매미들을 벙어리로 만들려고 부적을 만들어 하늘에 날리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매미들은 이미 개구리를 벙어리로 만든 사실을 알고 도망을 갔지만 눈치를 채지 못한 매미들은 스님의 도술에 걸려 모두 벙어리매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날 울고 있는 매미는 눈치 빨리 도망간 매미이고 울지 못하는 매미는 좀 둔한 매미이다.
그런데 매미들 중에 스님의 도술을 피해 도망친 매미들이 서로 의논하게 되었다. 어디로 가서 살 것인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산수와 풍경이 아름다운 강원도로 가기로 하고 강원도 중에서 설악산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매미들은 설악산이 원래 자신들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알고 반갑고 정다운 마음으로 설악산 계조암에 자리를 잡고 살기로 하였다.
그래서인지 계조암에는 여름이면 다른 곳보다 매미소리가 자연과 어울려 소리의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계조암에서 벙어리가 된 매미를 위하여, 그리고 그들을 대신하여 극렬하게 운다고 한다.
설악산에서 동해로 흐르는 강을 쌍천이라고 부른다. 도문고을 앞 쌍천에는 큰 바위가 있다. 그 바위는 중간이 갈라져 있고 우리의 삶을 지켜온 영험한 바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이 바위를 벼락바위라고 부른다. 도문은 원래 부유한 고을로 설악산의 정기를 받았고 풍경이 아름답고 고요하여 문장을 즐기기에 적합하여 이름난 학자들도 많았다.
이 고을은 원래 설악의 영향으로 불교가 비교적 성한 곳이었다. 그럼으로 이 지역에는 불교와 관계된 담화가 많다. 도문 고을은 원래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풍수에도 최고의 장소이다. 이 고을의 산기슭에 牟거사라는 거사가 살았다. 이 거사는 출가는 하지 않았지만 불교의 도를 터득하고 살아가면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그래서는 그는 자칭 모거사라고 하였다. 항상 승려와 같이 절제된 생활을 하였다. 채식을 하고 살생을 금하고 수도자의 길을 가면서 살았는데 그에게는 열대여섯 살 된 딸을 하나를 데리고 살았다.
그 거사는 매일 쌍천의 바위에서 낚시를 하며 소일을 하였다. 낚시에 고기가 잡히면 다시 물로 던져주고 이런 생활을 하며 지냈다. 그의 딸은 강에서 낚시하는 아버지 옆에서 시중을 들기도 하고 심심함을 풀어드렸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가 낚시를 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딸이 보니까 낚시를 고기가 물자 낚싯대가 움직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깨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 기색도 없이 다시 물에 놓아주었다.
이 때 낚시터에 한 승려가 나타났다. 이 승려는 파계승으로 이곳을 지나다가 모거사의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장난삼아 모거사를 만나 농을 시작하였다.
“소승 날이 저물어 하루 쉴 곳이 없으니 죄송스럽지만 거사님 댁에서 하루 묶었으면 합니다.”
정중하게 청했지만 거사는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낚시만 열중하였다. 파계승은 서서히 오기가 생기고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도를 터득한 거사라도 남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는 못된 사람이구만 거만하기 짝이 없구나.”
생각을 하며 그 거사의 행동을 보니 말 한마디 없이 낚시에만 열중하고 자신에게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파계승은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거사 옆에서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다 거사를 무조건 따라갔다. 방으로 들어가기에 파계승도 따라 들어가 거사와 마주했지만 거사는 이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왜 따라왔는지도, 어디에서 왔는지도, 어떻게 하라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 때, 딸이 저녁상을 차려왔다. 저녁상을 보니 산나물에 감자를 넣고 죽을 만들어 죽 두 그릇을 가지고 들어왔다. 거사는 밥상이 들어오자 객에게는 신경도 안 쓰고 먹어보라는 말도 없이 혼자 두 그릇을 다 먹어버렸다. 파계승은 어쩔 수 없이 당하고는 괘씸한 생각에 화가 나기 시작하였다.
거사는 객에게는 관심도 없이 식곤증인지 피곤하지 벽에 기대여 눈을 감고 잠을 자기 시작하였다. 파계승은 분하고 무시하는 거사를 보며 복수를 하여 골려주고 싶었다. 이 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중이 거사를 깨웠다.
“거사님”, “거사님”
거사는 귀찮다는 듯이 눈을 겨우 뜨면서
“왜 그러는가”
“저는 아시다시피 이렇게 떠도는 중이지만 제가 여기에 온 것은 하나의 목적이 있어서요.”
“그래 무슨 목적에 왔는지 들어 봅시다.”
그랬더니 파계승이
“아주 귀한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자
“그 귀한 것이 무엇인가?”
“사실은 내가 귀한 부처님의 씨를 갖고 있습니다.”
거사는 파계승의 귀한 부처님 씨라는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부처님의 씨라…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의미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파계승은
“부처님의 씨를 갖고 있는데 저에게 밭을 하나 시주하시지요.”
모거사가 생각해 보니 참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나는 밭이라고 해 봤자 감자를 붙여 먹는 조그만 밭 한 뙤기가 전부인데 줄 밭이 없는데…”
“에이, 거사님, 훌륭한 밭이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는데…”
“무슨 소리 인고, 나에게 좋은 밭이 있더니… 나는 정말 좋은 밭이 없다네.”
“거사님, 아름다운 딸이 있지 않소.”
그때서야 거사는 파계승이 말하는 숨을 뜻을 이해하고 아주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당신은 파계하겠다는 말이오.”
“파계라니 당치 않은 소리요.”
그러자 파계승은 보따리를 슬금슬금 풀더니 상자하나를 거사 앞에 내어 놓으며
“이 상자 속에는 금은보화가 가득하오.”
정말 펼쳐보니 값진 보석이 가득하였다.
“이 보물들은 제가 부처의 씨를 그 밭에 심어서 얻은 종자로 하여금 절을 크게 짓고 그 절을 통하여 법연을 펼친 계획으로 쓸 재물이오. 그러니 딸을 저한테 주십시오.”
이자의 요구가 엉뚱하여 거사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시요. 당신에게 절대로 딸을 줄 수 없소.”
단호하게 거절하자
“그럼 좋습니다. 저하고 약속을 하나 하지요. 제가 여기서 밭을 얻지 못하면 이 많은 보화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저하고 약속을 하나 하시지요. 제가 이집을 중심으로 100장 이내에 이 금은보화의 상자를 숨겨 놓을 테니 제가 숨겨놓고 가서 100일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거사님께서 도를 닦으신 분이니까 이 보화를 찾게 되면 저는 서사님의 도에 눌리고 진 사람으로 보화는 거사님 것이고, 만약에 거사님이 보화상자를 찾지 못하면 거사님 딸을 제에게 시주하십시오.”
거사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집을 중심으로 100장이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거사는 중과 내기를 하면 무엇이든 이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거사는
“좋다.”하고. 자신 있게 약속을 하였다.
그날 밤 그 파계승은 보물상자를 어딘가에 숨겨놓고 사라져 버렸다.
그 다음날부터 그 거사는 파계승과의 약속을 딸에게 말하고 보물상자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좋아하던 낚시도 그만두고 보화상자를 찾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거사는 보물상자를 탐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사랑스런 딸을 파계승에 빼앗긴다는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 모습을 딸이 지켜보며 아버지의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 보화를 찾다가 99일이 지나갔다. 거사는 찾을 수 없다는 절망감에 한탄을 하며 자포자기 하였다.
그러면서 딸에게
“내가 너무 경솔했구나. 내가 도를 닦으며 평생을 살아왔는데 자신의 딸 하나도 구할 수 없다니 나의 도가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너를 저 중놈에게 빼앗겨야 하다니, 미안하다.”
“내가 조그만 도를 배워 자만한 결과다. 내 도가 너무 보잘 것이 없구나.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설악산으로 들어가 도를 더 닦아야겠다.”
고 말하고는 설악산으로 입산하였다.
딸은 아버지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말릴 수도 없고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딸은 그 자리에서 잡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하였다. 정성스럽게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두워지나 아버지를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천둥번개가 치고 동천개벽 하는 쾅소리가 아버지가 매일 낚시하던 바위에 벼락 치는 것이었다. 처녀가 그 바위에 가보니까, 벼락을 치자 그 큰 바위가 깜짝 놀라서 쩍하고 반으로 갈라졌다. 그런데 그 안에는 파계승이 숨겨놓았던 보상자가 나타났다.
그 바위를 사람들은 벼락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복은 딸의 효심에 감복하여 하늘이 내려준 고귀한 보답이라고 칭송하였다. 지금도 그 바위는 이러한 담화를 간직한 채 설악산을 굽어보며 동해로 흐르는 물을 장엄하게 지켜보고 있다.
설악산, 대포항 등
초등학교 : 대포초등학교, 설악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