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면

                                                                                                                                                                                                                                                           

1.개요

해안면은 1956년 피난민정착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마을로, 분지 지형으로 되어 있어 지역의 움푹 패인 지형을 보고 펀치볼(punch bowl)이라고도 부른다.

# 해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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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구

2023년 기준(자료갱신일: 2023.3) / 단위 : 명
1,212총 인구수
662인구(남)
550인구(여)

# 양구 인구 # 해안면 인구

4.지명의 유래

  • 해안면(亥安面) : 해안은 돼지해(亥)자 편안할 안(安)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여 지고 있다. 그 당시 해안은 해자를 바다해(海)를 썼으며 해안 분지에는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초에 해안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게 되었는데 그 스님에게 지역사정을 소상히 말하고 뱀을 없앨 방도를 구하니 그 스님이 뱀과는 상극인 돼지를 말하며 바다해(海)자를 돼지해(亥)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해안을 돼지해(亥)자로 고치고 마을에는 돼지를 많이 기르게 되었으며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이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전하여지며 이런 이야기로 볼 때 전혀 사실 무근은 아닌 것 같으며 현재도 해안지역에는 높은 산을 제하고는 평지에 뱀이 거의 없다고 한다. 또한 “돼지해”자를 쓰기 이전에 “바다해”자를 쓰게 된 동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해안을 조사하면서 선사시대 유물과 산중턱에서 조개껍질이 발견 된 적이 있다. 이것은 해안면 분지 전체가 넓은 호수가 아니었나 생각 된다. 조개껍질은 바다가 먼 동해안으로부터 조갤 가져 왔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고 해안분지가 호수였을 때 민물조개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렇기 때문에 “돼지해(亥)“자를 쓰기 이전에 넓은 호수를 연상하여 “바다해(海)“자를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해안에는 8봉(여덟봉우리)가 있어서 여덟봉우리중 아무곳이나 올라가 해안을 내려다보면 7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며 면전체가 눈 밑에 있어 면 전체가 한마을 같다고 했다.

  • 현리(縣里) : 원래 해안소가(亥安所) 있었던 곳으로 춘주(춘천)부에 딸려 있다가 조선시대 4대 세종 6년(1424년) 양구군으로 이속되어 현리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자월(子月), 추덕이(楸德伊, 가래덕이), 상평(桑坪)을 병합하여 현리라 하고 해안면의 소재지가 되므로 해안이라 하였다. 1953 년 휴전 전까지 격전지가 되었었으며 그때 미군들이 이곳의 지형이 주발처럼 생긴 분지라 하여 펀치 보올(Punch bowl)이라 하였다. 현재의 현1리와 2리는 6.25이후 새로 조성된 지역으로 입주민들의 관리를 위하여 집단촌을 조성함으로 현재의 모습이 되었고 해안면의 행정종합리가 되었다.

  • 오유리(五柳里) : 오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오류동, 오릿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운천리를 병합하여 오유리라 하였다. 8.15해방후 북한에 있다가 1951년 수복 후 군용지로 쓰이다가 1954년에 인제군 서화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구군 동면에 편입되어 해안출장소가 되었으며 1983년 해안면으로 승격되면서 해안면 오유리가 되었다. 후에 중대가 생기면서 만대리의 운전동을 병합하여 오유 1, 2리도 분동하였다.

  • 만대리(萬垈里) : 넓은 뜰에 만호(萬戶)가 충분히 살 수 있어 만대동(萬垈洞)이라 하였는데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독산촌(獨山村), 평촌(坪村), 내동(內洞), 운전동(雲田洞)을 병합하여 만대리라 하였다. 후에 운전동은 오유리로 병합되었다. 1951년 국군이 탈환하여 군용지로 쓰였다가 1956년 민간인이 살게 되었다. 1954년에 인제군 서화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양구군 동면에 편입되어 해안 출장소가 되었으며 1983년에 해안면으로 승격되면서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가 되었다.

  • 후리(後里) : 현리 뒤쪽에 있어 뒷골 또는 후동(後洞)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1916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석우촌(石隅村), 산뒷골을 합하여 후리라고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 월산리(月山里) : 달산령 밑에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며 달산 또는 월산리라 불리운다. 1916년 행정구역 병합에 따라 성황당, 물골을 병합하여 월산리라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 이현리(泥峴里) : 진고개 밑이 되므로 진고개 또는 이현동(泥峴洞)으로 불리고 진고개는 비가 오면 길이 질어 붙여진 이름이다. 1916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전(山前), 석둔지(石屯地), 화소허, 수뢰골을 합하여 이현리라 하였다. 현재는 법정리이다.


<출처: 양구군청>
# 양구 지명 # 해안면 지명
양구군 지명 자세히보기(양구문화원)

5.지역의 옛이야기

5.1.해안면의 전설

해안면은 본래 해안소라 하여 춘천부에 속해 있다가 1524년 양구현에 이속되었다. 1954년 수복되면서 인제군에 속해 있다가 1973년 양구군으로 복속되어 동면 해안출장소가 되었다.
1973년 면으로 승격되었다. 지형이 특이하고 사방으로 높은 산맥에 둘려 쌓여 분지를 이루며 한국전쟁 중 미 종군기자에 의해 펀치볼이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이 곳에는 해안면이란 명칭에 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해안면은 한자로 해안(海安)이라고 썼다고 한다. 그 당시 해안 땅에는 뱀이 많아 사람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조선 초기에 주민들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을 한분 모시고 지역 사정을 소상이 말하고 뱀이 많으니 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구했다.
그랬더니 스님은 해안이라는 명칭의 해(海, 바다해)자를 뱀과 상극인 해(亥, 돼지해)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고 일러주어 그때부터 해자를 돼지 해(亥)자로 고치고 마을에 돼지도 많이 기르게 하였다. 그 후 부터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마을 사람들은 집밖 출입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
조선 초기가 언제인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19년경에 발행된 양구현지에 해안면의 명칭은 亥安이라고 적혀 있으며 1524년(세종6년) 춘천부에서 양구현으로 이속 될 때에도 亥安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海安이라는 명칭은 훨씬 이전부터 부르던 명칭으로 보인다.
해안의 지형이 분지인데다 화채그릇 같이 생기고 한쪽이 터지면서 해안의 모든 물은 물골이라는 한곳으로 빠져 나가는 것으로 보아 물골이 터지기 전에는 커다란 호수였을 것이다. 지금도 해발 600-700m에 조개껍질이 나온다고 하며 지리학자들은 해안이 침식된 지형이라는 것이다.
이 분지에 물이 고여 커다란 호수를 이루었을 적에 바다 같이 넓은 호수를 바다海자를 써서 海安이라 불렸을 것으로 보인다.

5.2.대암산 용늪의 기우제 전설

동면 팔랑리와 해안의 만대리 그리고 인제군 서화면 서흥리와의 경계에 있는 높이 1,308m의 대암산이 있다. 이 산 정상 한가운데에 용연 또는 용늪이라 부르는 고층 습원이 있다. 산이 높아 항상 구름에 싸여 있는 산이다.
이 용늪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 해에 기우제를 지냈다.
옛날에는 어느 곳에서나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냈으나 이 대암산 용늪에서 지내는 기우제는 다른 곳에서 지내는 기우제와 다르게 지냈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으면 동면이나 해안면, 서화면에서 대암산 용늪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보통 기우제는 좋은 음식을 만들어 비가 내려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제문을 쓰고 지역의 유지들이 제를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 대암산 용늪에서 드리는 기우제는 하늘이 노하여 괘씸하게 생각하여 비를 퍼붓는 방법의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기우제 때 유지들이 축문을 읽은 후 끌고 간 개를 그곳에서 때려잡아 개의 피를 용늪에 뿌려 산신을 화나게 하여 산신이 노여움의 댓가로 비를 뿌려 가뭄을 극복하는 방법의 기우제를 지냈다】
이런 방법의 기우제가 언제까지 계속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현재 기우제는 없어지고 해안면에서 대암산아래 만대리 냉골에 사당을 짓고 풍년제를 올리고 있다.
풍수설에도 용늪이 명당이라고 해서 누가 몰래 용늪 속에 시체를 암장(暗葬)이라도 하면 큰비가 몹시 내려 부근의 주민이 시체를 파 내버려야 비로소 비가 그쳤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양구 옛이야기 # 해안면 옛이야기

7.지역의 명소

양구통일관, 제4땅굴, 을지전망대, 펀치볼, 해안야생화공원, 국립DMZ자생식물원, DMZ펀치볼둘레길

# 양구 명소 # 해안면 명소
양구 명소 자세히보기(양구볼구양)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해안초등학교
중학교 : 해안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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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