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읍

                                                                                                                                                                                                                                                           

1.개요

횡성읍은 횡성군의 서쪽에 위치하며, 횡성읍은 본래 횡성현의 소재지로 현내면, 군내면, 횡성면이라고 부르다가 1979년 5월 1일 횡성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은 26개의 법정리로 이루어져있으며, 횡성군의 주요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다.
# 횡성읍

2.인구

2022년 기준(자료갱신일: 2022.10) / 단위 : 명
20,968총 인구수
10,573인구(남)
10,395인구(여)

횡성읍 리별인구현황 등 자세히 보기
# 횡성읍 인구

4.지명의 유래

  • 읍상리: 횡성읍의 위쪽이 되므로 읍상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괴정거리, 박석고개, 뱀구뎅이, 향교말을 병합하였으며, 읍상1~5리로 구성되어 있음.

  • 읍하리: 횡성읍의 아래쪽으로 읍하동이라고 불리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리고개, 예숫물거리를 병합하여 읍하리로 하였음.

  • 가담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전천(前川)가에 큰 늪이 있어 개늪, 개남, 가담이라 불렀음.

  • 갈풍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조선시대 때 갈풍역이 있어 갈풍이라고 함.

  • 개전리: 전천(前川)가에 마을이 있었고, 개와치, 개홧, 개전(介田)이라고 불렀음.

  • 곡교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구부러진 다리가 있어 곱은 다리, 곡교(曲橋)라고 불림.

  • 교항리: 전천(前川)의 다리목에 있는 마을이어서 다리목, 교항(橋項)이라고 하였음.

  • 궁천리: 마을 앞에 흐르는 개울이 활처럼 휘어서 굽이쳐 흐른다고 하여 활아지, 궁천(弓川)이라고 하였음.

  • 남산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마을에 남산이 있어 남산이라고 함.

  • 내지리: 원래 메지라 하였다가 내지라고 불르는데, 그 이름의 유래는 알수없음.

  • 마산리: 마을에 말무덤산이 있어 말미, 마산(馬山)이라고 하였음.

  • 마옥리: 본래 횡성군 군내면 지역으로 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의 모래가 옥을 갈은것처럼 희다고 하여 마옥리라고 부름.

  • 모평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이 지역이 섬강가에 띠가 많은 벌판이었기 때문에 '띠벌'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나타내는 모평(茅坪)으로 부름.

  • 묵계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조선 인조 때 한림 이당이 이곳에 반구정을 지어 놓고 후진들을 가르쳤는데, 그 때 먹을 갈고 붓을 씻어 마을에 흐르는 개울이 항상 검다고 하여 묵계리라고 함.

  • 반곡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밤나무가 많아 밤두둑이라고 하였다가 반곡으로 바뀜.

  • 북천리: 횡성읍 북쪽 냇가에 위치하여 북천(北川)이라 하였음.

  • 생운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사룬, 사탄(沙呑)이라고 하다 생운으로 바뀜.

  • 송전리: 마을 앞에 소나무가 많아 솔앞, 송전(松前)이라고 불림.

  • 영영포리: 마을 앞 전천(前川)이 길어서 영영개라고 하였는데, 훗날 영영포로 바뀜.

  • 옥동리: 옛날에 마을 뒷산에서 옥이 나와 옥골, 옥동(玉洞)으로 불림.

  • 입석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선돌이란 바위가 있어 선돌, 입석(立石)이라고 함.

  • 정암리: 본래 횡성군 우천면 지역으로 정암(正庵)이라는 암자가 있어서 정암이라고 하였음.

  • 조곡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지형이 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임.

  • 청룡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횡성군 청룡(靑龍) 줄기가 되었고, 청룡이 이 마을에서 승천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임.

  • 추동리: 본래 횡성군 청룡면 지역으로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울, 추동(楸洞)이라고 함.

  • 학곡리: 본래 횡성군 공근면 지역으로 지형이 학처럼 된 큰 골짜기에 마을이 있어 학곡이라 불리기도 하였고, 학이 많아 학골이라고도 하였음.
횡성문화원-횡성군 지명 자세히 보기
# 횡성읍 지명
<출처: 횡성문화원>

5.지역의 옛이야기

5.1.모평리의 보리우물 전설

횡성읍 모평리 마을 한가운데 논에 보리우물이라는 샘이 있었다. 이 우물은 물맛도 좋고 병을 고치는 효험이 있다하여 소문을 듣고 멀리서도 사람들이 다녀갔다. 그러던 어느해 극심한 흉년이 들었는데 이 마을에 어린 아기를 등에 업은 한 아주머니가 밥을 구걸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어려운 형편이라 아무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굶주림에 정신을 잃은 아주머니의 실수로 아기가 죽게 되었고 그 아주머니도 실성하여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이후로 보리우물은 그 약효가 없어지고 평범한 우물로 바뀌었다고 한다.

5.2.모평리의 밤나무숲 전설

횡성읍 모평리 앞뜰에는 밤나무숲과 소나무숲이 울창했는데 많은 수의 황새와 왜가리들이 둥지를 짓고 번성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경사라고 생각해 온 정성을 다해 아끼고 보살폈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그 좋던 숲들이 훼손되자 그곳에서 둥지를 틀고 살던 황새와 왜가리들이 졸지에 보금자리를 잃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이 후로 마을에는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열병까지 돌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루터기만 남은 밤나무숲을 신성시 여기는 습관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5.3.모평리의 금붕어 바위 전설

횡성읍 모평리 마을에는 금붕어 바위라는 10평 정도의 넓은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양 옆으로는 쌍둥이같이 똑같은 기와집 두 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이 이 금붕어 바위 밑에는 옥같이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고 신령한 힘을 가진 금붕어가 살고 있었다. 이 금붕어가 머리를 윗쪽집으로 두고 물속에서 노닐면 윗집이 번창하고 반대로 아랫쪽으로 향해서 노닐면 아랫집에 복이 찾아왔다고 한다. 

5.4.모평리의 알미봉 전설

횡성읍 모평리 뒷산에는 알미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 산봉우리는 섬강 건너편 곡교리에 있는 산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면서 모평리와 곡교리 산 가운데가 갈라져 산봉우리 하나가 떨어져 나왔고 이 산봉우리는 섬강을 따라 한강 상류 여주 지방까지 떠내려가 멈췄다. 그 후 모평리에 살던 어느 사람이 한양가는 길에 우연히 그 산봉우리를 발견하고 모평리 소유라 주장하며 도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마을 사람들은 횡성까지 와서 그 떨어져나온 사실을 확인하고 몇 년간 도지를 물어주었다. 그곳 사람들은 도지를 물어주기 싫어 도지를 받으러 온 모평리 사람에게 그 산봉우리 섬을 옮겨가라고 하였는데 깜짝 놀란 그 사람은 도망을 치고 그 후로 도지를 물지 않게 되었다.

5.5.마산리의 송하석 보 도깨비 전설

 횡성읍 마산리 쇠절이에 구씨 성을 가진 중년 남성이 살았는데 어느날 저녁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집안 식구들과 온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사라진 구씨를 찾으러 다녔다. 그러던 중 절벽위에 소나무가 들어 차 있어 그 이름을 송하석이라 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구씨의 목소리가 밑에서 들려왔다. 사람들이 반가워 달려가니 구씨가 도리깨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씨름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합세하여 도리깨를 구씨의 손에서 떼어놓고 집으로 데려왔다. 정신이 돌아온 구씨는 초저녁에 어떤 남자가 부르길래 따라나섰는데 덩치 큰 거인이 붙들고 놔주질 않아 씨름을 했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려보니 덩치 큰 거인은 보이지 않고, 자기는 집에 있던 도리깨를 붙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5.6.마산리의 황룡고데이(구덩이) 전설

 횡성읍 마산리 말미라는 마을의 뒷산에는 황룡고데이(구덩이)가 있는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곳에 살던 부잣집이 있었는데, 조상을 위해 좋은 묏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땅을 파던 중 지관이 말한 대로 조개 같은 것이 나와 멈췄어야 했지만, 말을 듣지 않고 돌을 깨뜨렸다고 한다. 그 속에서 금빛 개구리가 나와 죽었고, 그 뒤로 그 집안은 재산이 줄고 자손도 귀해졌다고 한다.

5.7.마산리의 용마총 전설

 

5.8.청룡리의 소세(혀) 바위 전설

 

5.9.생운리의 퉁퉁바위 전설

 

5.10.생운리의 고판서와 도깨비 전설


 

5.11.읍상리의 향교에 얽힌 전설

 옛날에 횡성읍 읍상리라는 곳에 향교를 짓기로 하였다. 건물의 설계도 끝내고 땅도 잘 다져 놓았으나, 집을 지을 나무가 부족하였다. 그래서 목수는 멀리 떨어진 오대산까지 가서 좋은 나무들을 베어 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많은 나무를 다시 횡성까지 옮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수는 걱정으로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나 보니 향교를 지을 자리에 오대산에서 베어 온 나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목수는 꿈을 꾸는 줄 알고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 보았으나, 그것은 분명 현실이었다.
그날 아침, 횡성에 있는 모든 소들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외양간에 묶여 있던 소들이 모두 땀을 흘리며 애를 쓴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늘이 목수의 애쓰는 모습을 불쌍히 여겨, 횡성에 있는 모든 소들의 힘을 빌려 나무를 옮겨준 것이라 믿게 되었다.
-출처: 횡성군

5.12.영영포리의 까막나들이 전설

 옛날 횡성의 영영포리라는 마을 앞에는 아주 깊은 연못과 큰 버드나무 숲이 있었다. 그 마을에는 힘이 아주 센 청년이 살고 있었는데, 쌀 자루도 쉽게 들고 씨름 대회에서는 항상 이기곤 했다.
어느 날, 청년은 밤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던 중 버드나무 숲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도깨비는 청년에게 씨름으로 힘겨루기를 하자고 했다. 둘은 오랫동안 씨름을 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도깨비는 힘이 빠져서 지게 될까 봐, 오늘은 비기고 내일 다시 하자며 청년에게 보따리를 주었다. 그 보따리 안에는 쌀과 보물이 들어 있었다. 도깨비는 금세 사라졌고, 그 후 사람들은 이곳을 까막 나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연못은 없어졌지만, 오래된 버드나무 몇 그루만이 옛날 이야기를 전하듯 남아 있다.
-출처: 횡성군

5.13.영영포리의 학출묘의 전설

 조선 숙종 때, 김진사라는 사람에게는 두 번째 부인이 낳은 상기라는 아들이 있었다. 상기는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셋째 부인이 질투심에 상기를 골탕 먹이려고 했다.
과거 시험 전날, 셋째 부인은 자신이 죽었다는 가짜 소식을 상기에게 보냈다. 효심이 깊었던 상기는 과거를 포기하고 급히 고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셋째 부인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이 엄청난 충격에 상기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김진사는 아들의 시신이 너무 무거워 옮길 수 없자,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김진사의 후손들은 무덤을 이장하려 했다. 그때 한 스님이 나타나 이 무덤이 '천하 명당'이니 옮기지 말라고 말렸다. 하지만 후손들은 스님의 말을 무시하고 무덤을 파헤쳤다. 그러자 무덤 속에서 하얀 학 한 마리가 날아올라 하늘로 사라졌다.
후손들은 그제야 스님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무덤을 학이 날아갔다는 뜻으로 '학출묘'라고 불렀다고 한다.

 

5.14.북천리의 고내이베루 전설

 횡성읍에 있는 고내이베루라는 곳은 아주 험하고 깊은 숲이었다. 그곳의 절벽 꼭대기에는 절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많은 스님이 고양이 한 마리를 아들처럼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길을 가던 나그네가 징검다리를 건너려는데, 스님의 고양이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나그네는 고양이에게 온몸을 할퀴이고 강물에 빠졌다.
분노한 나그네는 다음날 절을 찾아가 스님에게 고양이를 없애라고 요구했다. 스님은 슬펐지만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쫓아냈다. 그러자 절은 신도들의 발길이 끊겨 결국 폐허가 되고 말았다.
주지는 고양이를 찾아다녔고, 충청도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마침내 고양이를 만났지만, 고양이는 주지를 외면하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이 벼랑을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라 하여 '고내이베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5.15.마옥리의 솔포정 전설

 횡성읍에 솔포정이라는 언덕이 있다. 옛날 이곳에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귀찮아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이 집에 들렀다. 스님은 이 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손님이 오지 않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집 뒤에 있는 솔포정 언덕을 파서 반으로 자르라고 시켰다.
하인들이 스님의 말대로 언덕을 자르자, 정말로 손님이 뚝 끊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부잣집의 재산도 점점 줄어들어 결국 망하고 말았다.

5.16.청룡리의 삵괭이 바위 전설

 횡성읍에 삵괭이 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 이곳에는 아주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집의 모양이 황금알을 품고 있는 황금닭과 같아서 재물이 넘쳐났다.
하지만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부잣집 식구들은 힘들어했다. 그때 지나가던 스님이 집 뒤에 있는 삵괭이 바위를 깨면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부잣집은 스님의 말대로 삵괭이 바위를 깨뜨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손님이 뚝 끊겼다. 그런데 재물도 함께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부잣집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삵괭이 바위가 바로 집의 보물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고, 바위를 깨뜨리자 황금닭이 도망가서 집이 망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5.17.정암리의 말바위 전설

 횡성읍 정암리에는 말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 이곳에는 아주 부자인 원장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집이 워낙 커서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집안 여자들은 손님을 대접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저녁, 초라한 옷차림의 노인 한 명이 이 집에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길 청했다. 그날도 손님이 많아 겨우 구석에 자리를 잡은 노인은 부잣집 여자들의 푸념을 들었다. 여자들은 손님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며 제발 손님 좀 안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확인한 뒤, 밤중에 집 뒤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정으로 바위를 깨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바위에는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 후, 그 집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고, 일하던 사람들이 쓰러져 죽었다. 그러면서 손님이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부잣집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5.18.입석리의 화몽정 전설

 횡성에는 '화몽정'이라는 정자에 대한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 진오기라는 벼슬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서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그는 아름다운 여자와 만나 시를 짓고 춤을 추며 놀았다. 그 여자는 자신이 '화선'이라는 기생이라고 말했다.
진오기는 꿈속에서 만난 화선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낙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을 듣는다.
꿈에서 깬 진오기는 화선이 정말 있는지 궁금해 직접 찾아가 보았는데, 화선은 이미 1년 전에 죽은 유명한 기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진오기는 그 인연을 생각하며 '화()''()'이라는 글자를 따서 '화몽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남은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5.19.가담리의 혈 잘린 산 전설

 조선 인조 임금 때, 이괄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괄의 반란은 실패했고, 이괄은 역적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역적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벌주는 법이 있었다. 이괄의 형과 사돈 관계였던 박시중이라는 사람도 벌을 받았다.
사람들은 박시중의 무덤을 없애고, 그의 조상들이 묻혀 있던 산의 ''을 잘라 버렸다. 혈은 산의 중요한 기운이 흐르는 곳을 말한다. 혈이 잘린 산은 완전히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 뒤, 사람들은 이 산을 '혈 잘린 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5.20.반곡리의 칠우고개 전설

 횡성읍에는 칠우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옛날에는 나무가 많아 낮에도 어둡고 험한 곳이어서 도둑이 많았다.
사람들은 도둑 때문에 이 고개를 넘기 어려워했는데, 관아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 고개를 넘지 말고, 최소 6~7명이 함께 다닐 것'이라는 규칙을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은 6~7명씩 무리를 지어 고개를 넘었고, 도둑들과 싸울 몽둥이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렇게 친구 '일곱()'이 함께 힘을 합쳐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이 고개는 '칠우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5.21.교항리의 천석꾼이 터 전설

 횡성읍 교항리 마을에는 천석꾼이 터라는 집터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게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집터 앞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물고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게 앞에 물고기가 있으니 도망가지 못하여 자연 집이 번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게의 등(背)에 해당하는 집터 뒤에 집 10칸이 들어서면 그때에는 이 집을 뜨는 것이 좋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었다.
즉, 게의 등이 닳고 벗겨지면 자연히 개의 정기가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 일대에는 지금은 주택 단지가 조성돼 전설의 연못도 찾을 길 없으며 연못가에 심었다는 느티나무와 낚시를 했다는 낚시바위만 남아 있다.

5.22.옥동리의 국사봉 제상바위 전설

 횡성읍에 있는 국사봉은 옛날에는 국토봉이라고 불렸다. 이 산 정상에 올라가면 넓은 지역이 한눈에 보인다.
아주 오래전, 중국의 유명한 사람이나 도선국사라는 스님이 이 산을 보고 정말 좋은 산이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사봉 정상에는 제사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옛날 횡성으로 오던 관리들이 이곳에서 백성들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5.23.궁천리의 서낭당 나무 전설

 횡성읍 궁천리에는 서낭당 나무라는 큰 소나무가 있다. 200년 정도 된 이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옛날 이 마을의 땅을 새로 일굴 때, 사람들은 이 나무에 의지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서낭당 나무의 죽은 가지를 잘라다 불을 때었는데, 그 즉시 그의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서낭당 나무를 더욱 신성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5.24.학곡리의 글쓴바위 전설

횡성에는 '글쓴 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풍수지리에 아주 뛰어난 선비가 이 바위를 지나다가, 근처에 아주 좋은 명당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선비는 그 명당자리가 '팔봉'이라는 곳의 위쪽, '장지고개'의 아래쪽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중요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바위에 그 내용을 새겨 놓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비바람에 글씨가 많이 깎여서 지금은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 명당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 횡성읍 옛이야기 # 횡성옛이야기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횡성초등학교,성북초등학교,성남초등학교,창림초등학교
중학교 : 횡성중학교,대동여자중학교
고등학교 : 횡성고등학교,횡성여자고등학교
대학교 : 송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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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