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읍은 횡성군의 서쪽에 위치하며, 횡성읍은 본래 횡성현의 소재지로 현내면, 군내면, 횡성면이라고 부르다가 1979년 5월 1일 횡성읍으로 승격하였다. 읍은 26개의 법정리로 이루어져있으며, 횡성군의 주요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다.
# 횡성읍
횡성읍 마산리 말미라는 마을의 뒷산에는 황룡고데이(구덩이)가 있는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곳에 살던 부잣집이 있었는데, 조상을 위해 좋은 묏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땅을 파던 중 지관이 말한 대로 조개 같은 것이 나와 멈췄어야 했지만, 말을 듣지 않고 돌을 깨뜨렸다고 한다. 그 속에서 금빛 개구리가 나와 죽었고, 그 뒤로 그 집안은 재산이 줄고 자손도 귀해졌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김진사라는 사람에게는 두 번째 부인이 낳은 상기라는 아들이 있었다. 상기는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셋째 부인이 질투심에 상기를 골탕 먹이려고 했다.
과거 시험 전날, 셋째 부인은 자신이 죽었다는 가짜 소식을 상기에게 보냈다. 효심이 깊었던 상기는 과거를 포기하고 급히 고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니 셋째 부인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이 엄청난 충격에 상기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김진사는 아들의 시신이 너무 무거워 옮길 수 없자, 그 자리에 무덤을 만들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김진사의 후손들은 무덤을 이장하려 했다. 그때 한 스님이 나타나 이 무덤이 '천하 명당'이니 옮기지 말라고 말렸다. 하지만 후손들은 스님의 말을 무시하고 무덤을 파헤쳤다. 그러자 무덤 속에서 하얀 학 한 마리가 날아올라 하늘로 사라졌다.
후손들은 그제야 스님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무덤을 학이 날아갔다는 뜻으로 '학출묘'라고 불렀다고 한다.
횡성읍에 있는 고내이베루라는 곳은 아주 험하고 깊은 숲이었다. 그곳의 절벽 꼭대기에는 절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많은 스님이 고양이 한 마리를 아들처럼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길을 가던 나그네가 징검다리를 건너려는데, 스님의 고양이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나그네는 고양이에게 온몸을 할퀴이고 강물에 빠졌다.
분노한 나그네는 다음날 절을 찾아가 스님에게 고양이를 없애라고 요구했다. 스님은 슬펐지만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쫓아냈다. 그러자 절은 신도들의 발길이 끊겨 결국 폐허가 되고 말았다.
주지는 고양이를 찾아다녔고, 충청도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마침내 고양이를 만났지만, 고양이는 주지를 외면하고 쏜살같이 달아나 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이 벼랑을 고양이와 관련된 이야기라 하여 '고내이베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횡성읍에 솔포정이라는 언덕이 있다. 옛날 이곳에는 아주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귀찮아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이 집에 들렀다. 스님은 이 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손님이 오지 않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인들에게 집 뒤에 있는 솔포정 언덕을 파서 반으로 자르라고 시켰다.
하인들이 스님의 말대로 언덕을 자르자, 정말로 손님이 뚝 끊겼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부잣집의 재산도 점점 줄어들어 결국 망하고 말았다.
횡성읍에 삵괭이 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 이곳에는 아주 큰 부잣집이 있었는데, 집의 모양이 황금알을 품고 있는 황금닭과 같아서 재물이 넘쳐났다.
하지만 손님이 너무 많이 찾아와서 부잣집 식구들은 힘들어했다. 그때 지나가던 스님이 집 뒤에 있는 삵괭이 바위를 깨면 손님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부잣집은 스님의 말대로 삵괭이 바위를 깨뜨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손님이 뚝 끊겼다. 그런데 재물도 함께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부잣집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삵괭이 바위가 바로 집의 보물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고, 바위를 깨뜨리자 황금닭이 도망가서 집이 망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횡성읍 정암리에는 말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 이곳에는 아주 부자인 원장자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집이 워낙 커서 매일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집안 여자들은 손님을 대접하느라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 저녁, 초라한 옷차림의 노인 한 명이 이 집에 찾아와 하룻밤 묵어가길 청했다. 그날도 손님이 많아 겨우 구석에 자리를 잡은 노인은 부잣집 여자들의 푸념을 들었다. 여자들은 손님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며 제발 손님 좀 안 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노인은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확인한 뒤, 밤중에 집 뒤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정으로 바위를 깨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바위에는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고, 그 구멍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 후, 그 집에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가 갑자기 병에 걸려 죽고, 일하던 사람들이 쓰러져 죽었다. 그러면서 손님이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 부잣집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횡성에는 '화몽정'이라는 정자에 대한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 진오기라는 벼슬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서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그는 아름다운 여자와 만나 시를 짓고 춤을 추며 놀았다. 그 여자는 자신이 '화선'이라는 기생이라고 말했다.
진오기는 꿈속에서 만난 화선에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낙향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을 듣는다.
꿈에서 깬 진오기는 화선이 정말 있는지 궁금해 직접 찾아가 보았는데, 화선은 이미 1년 전에 죽은 유명한 기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진오기는 그 인연을 생각하며 '화(花)'와 '몽(夢)'이라는 글자를 따서 '화몽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남은 인생을 보냈다고 한다.
조선 인조 임금 때, 이괄이라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괄의 반란은 실패했고, 이괄은 역적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역적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벌주는 법이 있었다. 이괄의 형과 사돈 관계였던 박시중이라는 사람도 벌을 받았다.
사람들은 박시중의 무덤을 없애고, 그의 조상들이 묻혀 있던 산의 '혈'을 잘라 버렸다. 혈은 산의 중요한 기운이 흐르는 곳을 말한다. 혈이 잘린 산은 완전히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그 뒤, 사람들은 이 산을 '혈 잘린 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횡성읍에는 칠우고개라는 고개가 있다. 옛날에는 나무가 많아 낮에도 어둡고 험한 곳이어서 도둑이 많았다.
사람들은 도둑 때문에 이 고개를 넘기 어려워했는데, 관아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자 고개를 넘지 말고, 최소 6~7명이 함께 다닐 것'이라는 규칙을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은 6~7명씩 무리를 지어 고개를 넘었고, 도둑들과 싸울 몽둥이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렇게 친구 '일곱(七)'이 함께 힘을 합쳐 고개를 넘었다고 하여, 이 고개는 '칠우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횡성읍 교항리 마을에는 천석꾼이 터라는 집터가 있었는데 그 모양이 게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집터 앞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물고기들이 많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게 앞에 물고기가 있으니 도망가지 못하여 자연 집이 번창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게의 등(背)에 해당하는 집터 뒤에 집 10칸이 들어서면 그때에는 이 집을 뜨는 것이 좋다는 말이 내려오고 있었다.
즉, 게의 등이 닳고 벗겨지면 자연히 개의 정기가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이 일대에는 지금은 주택 단지가 조성돼 전설의 연못도 찾을 길 없으며 연못가에 심었다는 느티나무와 낚시를 했다는 낚시바위만 남아 있다.
횡성읍에 있는 국사봉은 옛날에는 국토봉이라고 불렸다. 이 산 정상에 올라가면 넓은 지역이 한눈에 보인다.
아주 오래전, 중국의 유명한 사람이나 도선국사라는 스님이 이 산을 보고 ‘정말 좋은 산이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사봉 정상에는 제사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옛날 횡성으로 오던 관리들이 이곳에서 백성들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횡성읍 궁천리에는 서낭당 나무라는 큰 소나무가 있다. 200년 정도 된 이 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
옛날 이 마을의 땅을 새로 일굴 때, 사람들은 이 나무에 의지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마을에 살던 한 사람이 서낭당 나무의 죽은 가지를 잘라다 불을 때었는데, 그 즉시 그의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서낭당 나무를 더욱 신성하게 여겼다고 전해진다.
횡성에는 '글쓴 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풍수지리에 아주 뛰어난 선비가 이 바위를 지나다가, 근처에 아주 좋은 명당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선비는 그 명당자리가 '팔봉'이라는 곳의 위쪽, '장지고개'의 아래쪽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중요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바위에 그 내용을 새겨 놓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비바람에 글씨가 많이 깎여서 지금은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 명당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 횡성초등학교,성북초등학교,성남초등학교,창림초등학교
중학교 : 횡성중학교,대동여자중학교
고등학교 : 횡성고등학교,횡성여자고등학교
대학교 : 송호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