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흥면은 횡성군의 동남쪽에 위치한 면으로, 안흥에서 재배한 팥을 사용하고 손으로 빚는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안흥찐빵은 전국에서 인정하는 지역 대표 생산품이다.
매년 개최되는 안흥찐빵축제를 통해 안흥찐빵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7년부터 2020년 까지 추진되는 안흥찐빵 모락모락 마을 조성사업을 통해 안흥찐빵의 브랜드를 더욱 확고히 하고자 하고 있다.
# 안흥면
# 안흥면지명
횡성문화원-안흥면 지명 자세히 보기
<출처: 횡성문화원>
옛날 안흥이라는 마을에 이찬종이라는 착하고 부지런한 청년이 살고 있었으며, 그는 어려운 살림에도 열심히 일하며 가족을 돌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청년은 꿈에서 신선을 만나 앞으로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신선이 알려준 길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청년은 빛나는 새 난조를 만나 그 새를 따라가 신기한 여인을 만났고, 여인의 인도로 신선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신선은 청년에게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어려운 훈련을 시켰고, 청년은 3년 동안 열심히 배우며 훌륭한 도인이 되었으며, 마침내 신선은 청년에게 세상으로 나가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였다.
청년이 마을로 돌아오자, 마을에서는 무서운 산적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고, 산적은 특히 한 여인을 잡아가려 하고 있었다. 청년은 산으로 올라가 산적들과 싸워 혼자서 모든 산적을 물리쳤다.
마을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청년을 칭찬했고, 그때 청년이 구해 준 여인이 바로 꿈에서 만났던 여인임을 알게 되었다. 둘은 다시 만나게 되어 사람들은 더욱 놀라워했다.
그 뒤로 사람들은 청년을 도와주며 춤을 추던 새를 기억하며 이 이야기를 ‘춤추는 난조’라 불렀고, 마을의 동굴은 무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옛날 안홍4리에는 이춘생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아이가 없어서 아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어느 날 복실이라는 여자가 아기를 낳아 이춘생에게 맡겼다. 이춘생은 아주 기뻐하며 아기를 키웠다.
그런데 며칠 지나자 아기가 갑자기 천장에 매달려 웃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해서 사람들은 귀신이라고 수군거렸다. 무당은 잘못하면 벌을 받을 수 있다며 아기를 몰래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무서워진 이춘생은 고민하다가 아기를 죽이기로 하고 가짜 아기 얼굴을 만들었다. 집에 갔다 와 보니 진짜 아기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이춘생은 죽은 아기를 산에 묻었다. 그런데 그때 마을 근처 연못에서 용마 한 마리가 나와 산을 달렸다. 하지만 아기 무덤가에서 용마가 슬프게 울다가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기가 사실은 장차 큰 일을 할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사람들은 아기의 무덤이 있던 마을을 ‘말무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안흥면 안흥1리 근처에는 ‘삼척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옛날 슬픈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이곳에는 최수령이라는 여자와 홍련이라는 남자가 서로 좋아하며 지냈다. 그러나 홍련은 높은 집안의 원님의 아들이어서, 둘은 마음대로 만나기 어려웠다. 원님은 둘의 사이를 반대했고, 홍련을 멀리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했다.
최수령은 너무 슬퍼서 홍련을 다시 만나려고 길을 따라갔지만, 홍련은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 버렸다. 그 말을 듣고 절망한 최수령은 연못 옆의 바위 위에 올라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
홍련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크게 슬퍼했으며, 최수령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바위에 작은 돌비(비석)를 세워 그녀를 위로하고자 했다. 사람들은 그 뒤로 그 바위를 ‘삼척바위’라고 불렀다. 지금도 그 바위와 비석이 남아 있어 마을 사람들과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 슬픈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안흥면 가천리 앞에는 ‘삼형제 바위’라고 불리는 높은 봉우리 3개가 있다. 그 아래에는 큰 강이 흐르고, 버스나 도로에서 보면 그 풍경이 아주 아름답다고 한다.
옛날에는 이 바위를 ‘산양봉’이라고 불렀는데, 산양이 이 바위에서 살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나란히 솟아 있는 봉우리 3개가 마치 삼형제 같다고 해서 ‘삼형제 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강릉으로 가던 정수계 현감이 이 마을 주막에서 쉬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프고 얼굴도 누렇게 뜬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알고 보니 흉년이 계속되어 먹을 것도 없는데, 세금은 그대로 내야 해서 사람들이 아주 힘들어하고 있었다.
정수계 현감은 이 사실을 나라에 알려서 그 해 가을에 이 마을의 세금이 면제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너무 고마워서 그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덕애민선정비’라는 비석을 세우고, 마을 이름도 소사비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름이 소은리로 잘못 적힌 기록도 있는데, 그건 글자를 잘못 읽어서 생긴 일이다.
옛날 소사 2리에는 큰 기와집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마을이었다. 집에 새로 들어온 며느리는 손님을 계속 돌보느라 힘들어했다. 어느 날 중(스님)이 찾아오자, 며느리는 손님 치우는 일을 덜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스님은 “집 뒤 흙을 파서 앞개울 쪽을 메우라”고 가르쳤다. 며느리가 그대로 하자 집이 점점 기울고 망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 흔들바위가 생겼다고 전해진다.
봉화산은 옛날에 불빛 신호를 보내던 장소였다고 한다. 이 산에서는 다른 산들이 보여서 서로 소식을 전하기 좋았다고 한다. 전화가 없던 이조 시대에는 나라에서 급한 소식을 불빛으로 전했는데, 봉화산은 중요한 연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옛이야기에 따르면, 이 산에서 봉화를 지키던 사람이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장군을 도와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한다. 지금은 봉화를 피우던 자리만 남아서 전설의 산으로 알려지고 있다.
곰바위 약수터는 옛날부터 곰이 내려와 물을 마시고 힘을 키웠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 어떤 이야기는 곰이 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치려 했지만, 바위 틈에 빠져 죽었다고도 전해진다.
후에 일본 순사부장이 이 샘물을 마시고 부정을 타 물이 양이 적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약수를 다시 찾고 잘 돌보아 지금은 다시 약수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약수는 팔다리가 쑤시거나 속이 불편할 때 좋다고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 : 안흥초등학교,안흥초등학교덕천분교
중학교 : 안흥중학교
고등학교 : 안흥고등학교,민족사관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