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촌면

                                                                                                                                                                                                                                                           

1.개요

내촌면은 애국충절, 문화유산, 자연경관이 대표적인 지역으로 특히 일제에 항거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팔열사의 숭고한 넋이 살아 숨쉬는 기미만세공원이 자리한 애국충절의 고장이다. 내촌천이 흐르고 있으며 와야리 가령폭포는 높이 50여m의 웅장함을 자랑하고, 백암산 등산로와 연계되어 산행을 즐기면서 삼림욕을 즐기고자 하는 관광객들의 방문이 많다.
또한 물걸1리 동창마을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47호로 지정된 물걸리사지가 있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2,392총 인구수
1,252인구(남)
1,140인구(여)

4.지명의 유래

  • 광암리(廣岩里) : 내촌면(乃村面)의 북쪽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의 지역으로 4∼5평 정도되는 넓은 바위가 있으므로 너벙바우 또는 광암 (廣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웃괘석(상괘석(上掛石))을 병합하여 광암리라 함.

  • 답풍리(踏楓里) : 내촌면(乃村面) 서쪽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답풍(踏楓)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래울, 논골, 삼선대이, 솔경지, 용포동, 숯고개를 병합하여 답풍리라 함.

  • 도관리(道寬里) : 내촌면(乃村面) 북서쪽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사방으로 산이 둘러 있어서 독의 안과 같이 되었다하여 독안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큰골, 둔덕말, 모종촌, 버섯구지, 양지떼소를 병합하여 도관리라 함.

  • 문현리(文峴里) : 내촌면(乃村面) 중심부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문고개 밑이 되므로 문고개 또는 문현동(文峴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문현리라 함.

  • 물걸리(物傑里) : 내촌면(乃村面) 동남쪽에 있는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물거리(物巨里) 또는 물걸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복곡, 동창, 감두리, 새마을, 탑둔지, 자근솔치, 장수원, 조상골, 조룬, 된재를 병합하여 물걸리라 함.

  • 서곡리(瑞谷里) : 내촌면(乃村面) 중심부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조선 영조 때 서곡대사 찬연의 출생지라하여 서일 또는 서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절골(寺洞), 여창이(汝昌)를 병합하여 서곡리라 함.

  • 와야리(瓦野里) : 내촌면(乃村面) 동쪽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군 내촌면 지역으로 기와를 굽던 곳이므로 와야(瓦野)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령골, 망전을 병합하여 와야리라 함.

  • 화상대리(和尙垈里) : 내촌면(乃村面) 서쪽에 위치한 리. 본래 홍천현 내촌면 지역으로 화상사(和尙寺)가 있었으므로 화상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월부터, 정신뜰, 연못골, 살벼울, 솔골, 신여울, 어은동을 병합하여 화상대리라 함.
     

<출처: 홍천군청>

5.지역의 옛이야기

5.1.백우산의 장수

옛날 홍천군 내촌면 도관리 백우산 기슭 매지골이라는 마을에 초맹삼이란 어질고 착한 농부가 살고 있었다. 농사라고는 火田에서 나는 감자 옥수수 콩 따위의 밭곡식 뿐이고 쌀은 이웃 동리에 가서 몇 되 구해다가 조상의 제사때나 쓰는 형편이었다. 그의 부인 허을란여인 역시 마음이 착하고 남편을 잘 공경하여 인근에서 금슬 좋은 부부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나이가 오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항상 시름에 잠겼다. 아들이고 딸이고 간에 소생이 없어 대를 이을 옥동자를 얻기가 평생의 소원이었다.

어느 해 가을이었다. 백운산에는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 색동 저고리를 입혀 놓은 것처럼 아름다웠다. 부부가 오전 일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데 설악산으로 간다는 늙은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다. 마음이 착한 부부는 뛰어내려가 스님을 반갑게 맞았다. 스님을 마당에 펴놓은 멍석에 앉히고 강낭콩을 넣은 밀범벅을 대접한 후 농사지은 콩을 한 되 독에서 떠다가 시주했다. 그랬더니 스님은「나무아미타불」을 몇 번 되뇌이고는 홀연히 그 곳을 떠났다. 가을 겨울이 지나고 어느덧 백우산에는 화창한 새 봄이 왔다. 이 때 이들 부부에게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 부인의 몸에 태기(胎氣)가 생긴 것이다. 최씨 부부는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기왕이면 떡두꺼비 같은 옥동자를 낳아 주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가을이 되자 부인은 드디어 남들이 부러워 할만한 아들을 낳았다. 부부의 기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일 뿐 즐거운 일에는 슬픔이 따른다고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백 일이 지나기도 전에 기운이 장사였고 더욱 이상한 것은 밤마다 살그머니 나갔다가 자정이 지나서야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들어오는 것이었다. 부부는 차츰 겁이 나고 기이하게 여겨 하루는 몰래 뒤를 따라가 숨어서 아들이 하는 행동을 훔쳐 보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어린 아이는 칼을 들고 무술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아들의 행동은 신출귀몰,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모습이 비호 같았다. 숨을 죽이고 이 모습을 끝까지 지켜 본 부부는 장수 아이를 낳은 것을 깨닫고 놀라움과 근심으로 그 자리에서 실신할 지경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방바닥에 엎드려 밤새도록 남 몰래 통곡했다. 그 당시에는 장수를 낳으면 나라에 화를 입힌다고 하여 아이가 성장하여 힘을 쓰기 전에 부모의 손으로 죽여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도 중죄를 받아야 했다. 장수 아이는 자라면서 무슬이 점점 뛰어났고 그 소문은 동네에 널리 퍼져 나갔다. 부부는 애를 태우면서 아이가 방에서 글을 읽는가하고 들여다 보면 어느새 강변에 나가 칼싸움 훈련을 하는 것이었다. 장수아이에 관한 소문은 널리 퍼져 원주에 있는 監營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장수 아들을 죽이기로 했다.

어느 비 내리는 밤, 뇌성은 천지를 뒤흔들고 번개불이 쉴새 없이 번쩍였다. 부부는 굳게 마음을 다지고 잠자는 아들의 몸 위에 콩 두 가마니를 얹었다. 그러나 아들은 움직이지만 못할 뿐 두 눈이 말똥하여 저주하는 눈으로 부모를 쳐다 보았다. 이들은 콩 한 가마니를 더 얹어 장수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 장수가 죽자 장수를 따라 나타났던 용마가 울며 헤매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지금도 도관 2리에 「우렁골」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곳은 그 때 용마가 울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쉴 바위」라고 불리우는 5평이 넘는 큰 바위가 있는데 장수가 쉬었던 바위라고 전해지고있다. 그 곳에서 3km 떨어진 곳에「약세」라는 곳이 있는데 용마의 죽통과 말 발자국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장수를 모실 수 없게 된 용마는 슬피 울면서 헤매다가 크게 한번 뛰어 영월땅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영월에는 용마의 무덤이 있었다고 하며 장수 아들을 죽인 부부는 시름시름 앓다가 오래가지 못해 죽었다고 전해진다.

 

백우산의 장수 웹툰 1화
백우산의 장수 웹툰 2화
백우산의 장수 웹툰 3화

 

5.2.쌍계사의 유래

내촌면에는 서곡대사에 얽힌 전설이 많다. 신라 때 이 지방에는 서곡대사가 창건한 쌍계사라는절이 있었다. 절 이름은 서곡대사가 절 터를 보면서 계란을 묻어 닭이 울어야 명당이라고 했는데 밤중에 계란을 묻었더니 과연 새벽에 닭 두 마리가 홰를 치면서 울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쌍계사로 이름 지었다가 43년 전 서울 수정사에서 온 강월하스님이 두 줄기의 물 흐름을 보고 쌍계사로 이름을 고쳤다.

또 서곡대사는 주민들의 병고를 덜어주고 풍흉을 예언해 왔다. 어느 날 촌부 한 사람이 대관령에서 대사를 만나자 “쌍계사에 가서 내 장례를 지내달라”고 하여 돌아오는 길로 절에 가 보니 시체가 있었다. 후하게 장례를 지낸 후 사람들은 “생불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내촌초등학교,동창초등학교,
중학교 : 팔렬중학교,내촌중학교
고등학교 : 팔렬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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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