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면

                                                                                                                                                                                                                                                           

1.개요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51.18㎢, 인구는 2,443세대에 5,74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창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 영평군(永坪郡) 이동면(二東面) 도평리(桃坪里) 일부가 편입되어 용담·삼일·사창·명월의 5개 리를 관할[1]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 북위 38도선 이북으로 북한에 속했다가 1954년 수복[2]되면서 춘천군에서 화천군으로 이관[3]되었다. 면 소재지도 광덕리에서 사창리로 이전되었다.
남쪽에는 화악산, 서쪽에는 광덕산·백운산, 북쪽에는 복주산(伏主山, 1,152m) 등 높은 산이 많다. 각 산지에서 발원한 수계(水系)[4]는 사창리에서 합쳐져 용담천(龍潭川)이 되어 동쪽으로 흘러 춘천시 사북면에서 북한강으로 흘러든다.
내륙 산간지역이므로 경지[5]는 적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콩이다. 그 밖에 양돈[6]이 활발하며 사내 우시장(정기시장)이 열린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6,503총 인구수
3,499인구(남)
3,004인구(여)

4.지명의 유래

  • 사내면 :【면】화천군 1읍 4면의 하나. 본래 사탄향의 소재지이므로 시룬 또는 실운(實雲)으로, 변하여 곡운(谷雲)이라했는데, 조선영조 41년(1765) 춘천군 도호부에 딸린 사탄내면(史呑內面)이 되어 수밀(藪密), 현내(縣內)를 관할하다가, 고종 32년(1895)에 史呑內面이 줄어 사내면으로 개칭되어 신촌(新村), 영당(影堂), 수밀(藪密), 면대(面垈), 창리(倉里), 졸대(卒垈), 명월(明月), 실내(實內), 반암(磻岩), 내동(內洞), 맹대(孟垈), 검단(儉丹)등 12개리로 분할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경기도 영평군(永平郡.지금의포천군) 이동면(二東面)의 도평리(桃坪里) 일부를 편입하였으며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공산치하 김화군 사내면으로 있다가,1953년 수복되어 군정시 포천군 사내면으로 되었고, 1954년 10월 21일에 화천군으로 편입되어 현재, 사창(史倉), 명월(明月), 용담(龍潭), 삼일(三逸), 광덕(廣德) 등 5개 里를 개편 관할하고 있다. 동쪽은 하남면과 춘천시 사북면에 인접해 있으며, 서쪽은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북쪽은 철원군 금화와 연결되어 있다. 동국여지승람[7]에 의하면 1670년 평강(平康) 현감인 김수증(金壽增)이 자기 호(號)를 따서 이 지역을 곡운(谷雲)이라 칭하였으며 또한 이 곳을 옛날 사탄향(史呑鄕)의 소재지 이므로 이를 따서 사탄내국(史呑內局),사내리(史內里)라고도 했다.

  • 광덕-리(廣德里) :【리】광덕골, 광덕동이라고도 하는데 본래 춘천군 사내면 지역으로 광덕산(廣德山) 밑이 되므로 광덕골 또는 광덕동(廣德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반암(磻岩), 내동(內洞), 맹대(孟垈), 검단(儉丹)과 경기도 영평군(永平郡. 지금의 포천군) 이동면(二東面)의 도평리(桃坪里) 일부를 병합하여 광덕리(廣德里)라 하고 1954년 화천군에 편입되었다. 1971년 2월 1일 구역개편에 의해서 광덕1, 2리로 분할되었으며, 그후 1974년 7월 1일 광덕1리에서 광덕3리로 분할되었다. 그 다음해에 다시 광덕4리로 분할되었다. 특히 광덕1리의 속칭은 범암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옛날에 바위위에 호랑이가 가끔 나타났다 사라지고하여 옛날 명칭은 호랑바위라 칭하다 최근에 들어 범암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호랑이가 앉아있는 바위란 의미이다. 또 한편 광덕2리의 속칭은 맹대 혹은 안골이라고 하는데 맹대는 옛날에 맹자님이 지나 가다 날이 저물어 하루 저녁 쉬어갔다 해서 맹대라고 하는 명칭의 유래가 생겼고 안골마을은 마을 입구에서는 마을이 없는 것 같은데 들어가면 마을이 보이고 농사가 잘 되어서 안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명월- 리(明月里) :【리】본래 춘천군 사내면 지역으로 복주산(伏主山) 밑이 되므로 박달 또는, 명월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인하여 실내와 솔대리(率垈里) 일부를 병합, 명월리라 하고 1954년 화천군에 편입시켰다. 1971년 명월리를 명월1, 2로 분할하고 다시 1974년 7월 1일 명월1리를 명월1, 3리로 재분할하였다. 명월1리는 화학산 중턱 촛대바위와 명월2리 촛대바위를 환하게 밝혀준다하여 박달리라 불리웠다 전하고, 명월2리는 옛날 소, 말, 우마차로 각종 짐을 실어서 날랐다하여  실으세, 실내, 시래하지가 실래로 변하여 실래라는 속칭도 갖고 있다. 명월3리는 교통이 좋은 삼거리에 위치해 명월삼거리라 이름 붙기도 했다 한다. 장단터라고도 부른다.

  • 사창-리(史倉里) : 본래 춘천군 사내면 지역으로 옛 사탄향(史呑鄕)의 창고가 있었으므로 사창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창말, 솔대, 횃골을 병합하여 사창리라 하였고, 1954년 화천군에 편입되었다. 1971년에 사창 1,2,3,4리로 분할되었고, 1974년에 5,6리로 분할되었다. 예로부터 실은창말 혹은 창말이라고 불리웠다. 또한 세군데 집터와 여덟고개로 둘러 싸였다하여 3대(垈) 8관이라 하였다. 3대는 솔대(현 사창6리 지역), 면대(현 삼일리 지역, 27사단 사령부지역), 맹대(현 광덕리지역)를 칭한다. 창말의 유래는 조선시대 임금이 피신을 할 경우에 이곳으로 피신할려고 국창(國倉)을 지어놓고 토지에서 나오는 도지를 받아서 창고에 저장했다가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도록 나눠주고 햇곡식이 나오면 매년 도지를 받는 일을 되풀이해 왔으며 이러한 관계로 국창이 지어져 있었다하여 창말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며 외창(外倉)과 내창(內倉)이 있었고 서적도 보관했다고 한다.

  • 삼일-리(三逸里) : 본래 춘천군 사내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면대(面垈), 수밀(藪密)리와 영당(影堂)리 일부를 병합하여 세마을이 한 구역이 되었다는 뜻으로 삼일리(三逸里)라 하고 1954년 화천군에 편입시켰다. 삼일1리의 옛 명칭은 면대(面垈)라고 하는데 그 유래는 화악산(華岳山)에서 흐르는 물이 명경과 같이 맑고 깨끗한 이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된 곳이라하여 면대라고 하였으며 맹대, 솔대와 마찬 가지로 유사시 왕을 호위할 부대가 주둔했다 전한다. 삼일2리의 속칭은 과거에 나무심는 것이 하도 밀집되어 있어 빽빽하게 들어서서 나무 숲속에 들어가도 하늘이 잘 보이질 않을 정도로 심하게 들어차 있었기 때문에 수밀리(藪密里)라고 불렀다. 삼일리 지역은 동쪽으로 용담1리, 남쪽에 가평군 화악리 그리고 북쪽으로 사창3리에 접하고 있으며 1970년 1월 1일 구역개편에 따라 삼일1, 2리로 분할하였다. 삼일리는 1456년 세조(世祖) 元年에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자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등 삼현(三賢)이 이곳에서 은거하다가 편히 가신 곳이라하여 三逸里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는 전설도 있다.

  • 용담-리(龍潭里) : 본래 춘천군 사내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신촌(新村), 점골, 성황당, 송정동, 음앙골, 신덕리와 영당일부를 병합하여 용소의 이름을 따서 용담리(龍潭里)라 하고 1954년에 화천군에 편입 되었다. 1974년 7월 1일 용담리에서 용담1, 2리로 분할되었는데 용담1리의 속칭은 옛날 소나무로 정자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아래에서 신선(神仙)이 학을 타고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 해서 솔경지라 부른다. 또한 용담1리는 옛날에 사람이 살지 않았던 마을로써 일제(日帝)시대와 6.25동란 등으로 인하여 전국 각지에서 모여 마을이 구성되었다해서 신촌(新村)이라고 부른다.
<출처: 화천문화원>

5.지역의 옛이야기

5.1.안창마을 전설

안창마을 전설은 유랑민[8] 30여 호가 처음 사내면 사창리에 터전을 잡고 생활했으나 마을 앞 산의 호랑이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다가 중의 인도[9]로 마을을 옮겨 호환[10]도 없어지고 군내에서 가장 부자마을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 고장에 전하는 대표적 지명 전설이다.

 

5.2.용담 계곡 이야기

사내면 사창리에서 춘천 방면으로 56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오른쪽에 보이는 수려한 골짜기가 있는데 바로 '용담계곡'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곡운 김수증이 이름 지은 곡운구곡 중 3곡인 신녀협과 4곡인 백운담 사이를 '용담계곡'이라고 부른다.
1823년 이곳을 방문한 정약용은 여기가 바로 '중용의 미'라며 감탄했고, 수자원과 식물자원을 연구하며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도 용담계곡은 산을 끼고 휘돌아가는 푸른 물의 모습이 청룡을 연상시키는데 그래서인지 용이 천 년간 이곳에 머물다 승천[11]했다는 전설을 품고 있다.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사내초등학교, 실내초등학교, 광덕초등학교
중학교 : 사내중학교
고등학교 : 사내고등학교

9.기타

Footnotes

  1. ^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통제하거나 지배함. 또는 그런 지배가 미치는 범위
  2. ^ 잃었던 땅이나 권리 따위를 되찾음
  3. ^ 관할을 옮김. 또는 옮기어 관할함
  4. ^ 지표의 물이 점차로 모여서 같은 물줄기를 이루는 계통. 수계의 주체는 하천이지만, 여기에 딸린 호소(湖沼)도 이에 포함된다.
  5. ^ 경작하는 토지
  6. ^ 돼지를 먹여 기름. 또는 그 돼지
  7. ^ 조선 성종의 명(命)에 따라 노사신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의 지리서
  8. ^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백성
  9. ^ 1. 이끌어 지도함.2. 길이나 장소를 안내함.
  10. ^ 호랑이에게 당하는 화(禍).
  11. ^ 하늘에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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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