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면

                                                                                                                                                                                                                                                           

1.개요

화천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20.13㎢, 인구는 1,848세대에 4,33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파포리이다. 본래 화천군의 서쪽에 있으므로 서면(西面)이라 하여 토고미(土古味)·구운·파포·봉오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조선 순조 때 상·하로 갈라져 아래쪽에 있는 논미·계성·원천·서오지의 4개 리는 하서면(下西面) 그 나머지는 모두 상서면이 되었다.
경지[1]와 취락[2]은 주로 이들 두 하천을 따라 분포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콩·옥수수 등이고, 젖소·한우 사육과 양봉[3]이 활발하다. 특히 봉오리와 다목리는 ‘재래봉[4] 보호구역’으로 보호되고 있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4,314총 인구수
2,620인구(남)
1,694인구(여)

4.지명의 유래

 
  • 상서면 : 화천군 1읍 4면의 하나. 본래 화천군 서쪽에 위치하였으므로 서면(西面)이라하여 토고미(土古味), 구운(九雲), 파포(巴浦), 봉오(峰吾), 다목(多木), 노동(盧洞), 산양(山陽), 마현(馬峴), 논미(論味), 계성(啓星), 원천(原川), 서오지(鋤五芝)의 12里를 관할[5]하다가 고종(高宗) 30년(1893)에 상,하로 갈라서,아래쪽에 있는 논미, 원천, 계성, 서오지의 4개 리는 하서면(下西面), 그 나머지 위쪽에 있는 동리는 모두 상서면(上西面)이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6]에 따라 하서면(下西面)은 남면(南面)과 통합하여 하남면(下南面)이 되고 현재 11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그 나머지 윗쪽은 토고미, 구운, 파포, 봉오, 다목, 노동, 산양, 마현등 8개리를 상서면이 관할하다가 1956년 구운리를 갈라 장촌(長村), 노동리를 갈라 부촌(富村), 신풍리를 갈라 신대(新大)의 3개 리를 증설[7]하여 11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상서(上西)라 함은 서면의 윗쪽 지역을 나타낸 것이다. 동쪽으로 화천읍, 남쪽은 하남면과 사내면, 서쪽은 철원군 근남면, 북쪽은 철원군 원남면에 접한다.

  • 구운-리(九雲里) : 본래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구룬 또는 구운(九雲)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만산동(萬山洞)을 병합하여 구운리(九雲里)라 하였다. 북쪽 만산동에는 비녀바위가 있다. 구운이란 마을 명칭은 9명의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던 마을이였다는 전설에서 나왔다고 한다. 가랍-재(佳約峴)【고개】갈미고개라고도 한며 구운리에서 갈매기로 넘는 고개이다. 인근에 비가오면 바위색깔이 검게된다는 변화바위가 있고 이 바위를 비녀처럼 생겼다하여 비녀바위 라고도 한다. 현재 2반 소재[8].

  • 노동-리(蘆洞里) : 본래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갈밭[9]이 있었으므로,갈골, 갈곡(葛谷), 또는 갈노(蘆)자를 따서 노동(蘆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희역(希域), 명재(明在), 주막거리, 가둔지, 간촌, 토옥동, 황학동을 갈라 부촌리가 되었다. 1981년 7월 1일 노동1, 2리로 구역개편에 의해 분할되었다.

  • 다목-리(多木里) :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본래 다항(多項)리라 하다가, 조선 때 황장목(黃腸木)[10]을 많이 심어서 나라에서 쓰려고 금양[11]하는 황장갓[12]이 있었으므로, 나무가 많다는 의미에서 다목(多木)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창바우, 도리동, 언동, 장재울, 늑동, 약동을 병합하여 다목리(多木里)라 하였다. 1979년 9월 1일 다목1, 2리로 분리되어 특히 다목1리는 수복 당시 아무나 와서 집만 지으면 살게 되어 해방촌으로 불리우고 있다. 다목1리 북쪽에 대성산이 있다.

  • 봉오-리(峰吾里) : 본래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봉우재 밑이 되므로 봉골,봉오(烽五)이라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통, 폐합에 따라 갈전, 갈목, 밤나무골,멍에울 등의 마을을 병합하여 봉오리(峰吾里)라 칭하였다. 상집실, 중집실, 하집실, 주대, 가동, 율목, 갈매기골, 안봉오골, 밖봉오골 등의 9개 자연 부락이 합쳐서 봉오리가 형성되었는데 그 후 갈매기골, 안봉오골, 밖봉오골이 봉오2리로 1971년도에 분리되고 상집실, 중집실, 하집실, 주대일부가 1985년에 봉오3리로 분리되었고 현재는 가동, 율목일부가 봉오1리로 명맥[13]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에 밤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해서 율목동이라고 호칭하기도 한다.

  • 부촌-리(富村里) : 본래 화천군 상서면 노동리에 속해있던 마을인데 1950년 이후 급격하게 번창함에 따라 1956년에 주막거리, 가둔지, 간촌, 토옥동, 황학동을 병합하여 새로 일어나는 부자마을이란 뜻으로 부촌리라하여 노동리에서 분립되었다.

  • 마현-리(馬峴里) : 동쪽에 화천읍 풍산리, 서쪽에 다목리, 남쪽에 산양리, 북쪽으로 철원군 근남면과 접하고 있다. 1962년 구역개편에 의해서 분립되었는데, 마현리는 원래 말고개에서 유래된 마을명칭(말리고개) 으로서 현재는 민통선(民統線)[14] 북방지역으로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며 옛날 말을 몰고 가던 사람들이 하도 고개가 높아서 말을 타고 가다 정상에서 쉬어가곤 하였기에 말고개(馬峴)란 속칭명의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

  • 산양-리(山陽里) : 본래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남쪽이 틔어 향양(向陽)[15]하며, 조선시대에 산양역(山陽驛)이 있었으므로 산양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사방거리, 웃마산, 아랫마산을 병합하여 산양리라하였다. 수복이후 이곳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산양리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 늘어나고 모여서 산다고 해서 사방거리라고도 불렸다는 설이있고, 화천의 최북단인 발골에서 부터 장날 상인들이 다음장으로 상지사방 흩어져 간다하여 사방거리란 설도 있다. 1974년 7월 6일 구역개편에 의해 산양1, 2로 분할되고 또 1981년 7월 8일 산양1리가 1, 3리로 분리되었다. 특히 산양3리는 옛날 이곳에서 말을 많이 사육하였는데 살기 어려운 주민들은 대다수가 말 먹이가 없어 산골짜기에다 말을 놓아서 키웠다하여 마산골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다.

  • 신대-리(新大里) : 동쪽은 신읍1리, 서쪽은 구운리, 남쪽은 신풍리, 북쪽은 장촌리에 접한다. 구운리 마을 입구에 위치하여 어귀마을로 불리다가 1950년대 수복이후 갑자기 동리(洞里)가 커지면서 새로 생김에 따라 1956년 토고미(土古味), 느릅제기, 작은토고미를 병합하여 새로 일어나는 큰 마을이란 뜻으로 신대리라하여 신풍리에서 갈라져 독립하였다. 또, 한편 옛날에 이 고장에는 부자가 많아서 농사일에 품[16]을 팔면 꼭 쌀로 품삯[17]을 받아왔기 때문에 토고미로 호칭되었다고 한다.

  • 신풍-리(新豊里) :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본래 토구미(吐丘味)에서 토고미(土古味)로 명칭이 바뀌어 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 폐합에 따라 효죽터, 구둔지, 노고미, 토고미, 느릅제기, 작은 토고미를 병합하여 새로이 풍성하게 되라는 의미로 신풍리(新豊里)라 호칭하였다고 한다. 1956년에 토고미, 느릅제기, 작은 토고미는 신대리(新大里)라 하여 분리되었다. 또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옛날 신관[18] 사또가 처음으로 이 고장을 방문하자 대풍년이 들어 신풍들이라 한 것에서 자연히 신풍리로 명명되었다고도 하고 옹기가마가 있어 장터로 부르게 되었다는 속칭도 있다.

  • 장촌-리(長村里) : 동쪽은 화천읍 신읍리, 서쪽은 사내면 명월리, 남쪽은 구운리, 북쪽은 파포리에 접하고 있다. 본래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장(張)씨가 많이 살았으므로 장재울 또는, 장재동(長財洞)이라 하였는데,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구운리(九雲里)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분리되어 장촌리로 다시 되었다.

  • 파포-리(巴浦里) : 동쪽에 노동2리, 서쪽에 구운리, 남쪽에 장촌리, 북쪽에 봉오2리와 접한다. 원래 화천군 상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미륵양지, 웃양지, 버덩말, 골말, 창평을 병합하여 이 곳 내(川)가 “巴”자 모양으로 되었다하여 파포리라 호칭하였다. 명칭의 변경을 보면 파포내리(波浦來里)에서 파포리(波浦里)로, 다시 1871년경 파포리(巴浦里) 로 한자표기가 변하였다. 옛날 마을 뒷산에 잣나무가 무성하여 마을 에서부터 골짜기가 깊고 자연히 마을이 형성되었다하여 골말이라 속칭하였다. 또한 다른 동네보다 해가 빨리 뜨고 해가 늦게 넘어가 일조량이 많아서 양짓말이라 일컫었다고도 한다. 1981년 7월 1일 구역개편에 의하여 파포1, 2로 분할되었다.
<출처: 화천문화원> 

5.지역의 옛이야기

 

5.1.비래바위 전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있는 비래암은 비래바위라고도 하며 해발 970m이다. 비래암은 폭 100m, 높이 60m의 기암괴석으로 병풍처럼 깎아지른 바위로 주변 산중에 홀로 우뚝 솟아 있어 금강산에서 바위가 날아와 이곳에 앉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으로 산이 높고 골이 깊어 만산동계곡과 갈목계곡을 잉태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선한 산소와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기도 하다.
옛날 9명의 신선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던 마을이라고 붙여진 구운리의 북쪽에 서 있는 비래암은 신선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 바위 한 가운데는 연못같이 패이고 그 곳에는 맑은 물이 괴어 있어 신선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했다고 한다. 또한 이 바위는 마치 병풍처럼 주위를 둘러쳐 있어 병풍바위라고도 한다. 주변에도 토고미 오리쌀 농촌체험마을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학생 및 기업체, 가족 등이 사계절 친환경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많이 찾아오고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산양초등학교, 상승초등학교, 다목초등학교
중학교 : 상서중학교

9.기타

Footnotes

  1. ^ 경작하는 토지
  2. ^ 인간의 생활 근거지인 가옥의 집합체. 넓은 의미로는 가옥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거주 형태 전반을 이르기도 한다
  3. ^ 꿀을 얻기 위하여 벌을 기름
  4. ^ 예전부터 있어 전하여 내려오는 벌
  5. ^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통제하거나 지배함. 또는 그런 지배가 미치는 범위
  6. ^ 어떤 것을 폐지하여 다른 것에 합침
  7. ^ 더 늘려 설치함
  8. ^ 어떤 곳에 있음. 또는 있는 곳
  9. ^ 갈대가 우거진 곳
  10. ^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던, 질이 좋은 소나무
  11. ^ 나무나 풀 따위를 함부로 베지 못하도록 하여 가꿈
  12. ^ 황장목을 베지 못하게 하던 산
  13. ^ 어떤 일의 지속에 필요한 최소한의 중요한 부분
  14. ^ 한반도 비무장 지대의 남방 한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5~20킬로미터의 거리를 동서로 잇는 선. 북방에 대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다.
  15. ^ 햇볕을 마주 받음
  16. ^ 1. 어떤 일에 드는 힘이나 수고.2. 삯을 받고 하는 일
  17. ^ 품을 판 대가로 받거나, 품을 산 대가로 주는 돈이나 물건
  18. ^ 새로운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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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