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철원군청>
홍명희의 소설에 나오는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땅 백정의 장자 출신으로 서기 1559년경을 전후하여 황해도, 경기도, 강원도 일대를 무대로 활동한 대도적으로 실존 인물입니다.
타고난 재주가 비상하여 과거 등용에 뜻을 두었으나 천민 출신으로 출셋길이 막히고, 조정의 부패와 양반, 관료들의 수탈에 불만을 품어 당시 학정에 신음하고 있던 서민들과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대적당을 조직하고 그 두목이 되었습니다.
지금 고석정 건너편 산 정상에 석성을 쌓고 이곳을 웅거지로 하여 활빈당 활동을 전개하였어요. 조정 관군에 쫓기게 되면 포위망을 뚫고 빠져나가는 재주가 흡사 꺽지와 같다하여 임꺽지, 임꺽정으로 불렸다는 전설이 있지요. 곡석정 경내에 있는 인물상은 1998년에 조각가 이원경 선생의 작품으로 방문객들의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답니다.
-철원관광100선 중-
도피안사는 865년(경문왕 5) 당대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가 1,500여 명의 대중과 함께 철불을 만들고 삼층석탑을 세워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이예요. 당초 철원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 했던 불상이 운반 도중 없어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다고 해요. 도선국사는 불상의 뜻을 짐작하고 불상이 앉았던 자리에 절을 창건해 철불을 모셨으며, 전국의 800여 비보사찰(裨褓寺刹) 중 하나로 삼았답니다. 이 절이 위치한 화개산은 물 위에 떠 있는 연약한 연꽃의 모습이어서 철불과 석탑으로 산세의 허약함을 보충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했다고 합니다.
1898년 봄에 큰 화재로 전소된 뒤 다시 중수되었고, 한국전쟁 때 다시 불타 완전 폐허가 됩니다. 9년이 지난 1959년 어느 날, 제15사단장 이명재(李明載) 장군은 난데없는 꿈을 꾸었어요. 땅속에 묻힌 불상이 답답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이튿날 전방 시찰을 나갔던 장군은 갑자기 갈증을 느껴 부근의 한 민가에 들어갔다가 간밤 꿈에서 땅속에 묻힌 불상과 함께 보였던 안주인을 만나고는 깜짝 놀랐답니다. 이명재 장군은 그 여인의 안내를 받아 불타 없어진 도피안사터를 찾아가 뒤지기 시작했고,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을 발견했습니다다. 바로 꿈에서 본 불상이었다고 합니다. 그이후, 15사단 장병들이 법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답니다. 문화재로는 창건 당시 조성된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인 삼층석탑이 있답니다.
도피안사
승일교라는 ‘이름’에 얽힌 사연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해방 이후 철원이 북한 땅으로 넘어갔을 때 김일성이 다리를 절반쯤 놓는 도중 수복이 되었고, 철원이 다시 남한땅이 된 후 이승만이 다리 절반 공사를 마무리했으므로 이승만의 승자,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승일교(承日橋)라 했다고 해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높이 35m, 길이 120m인 승일교를 살펴보면 반반의 설계와 솜씨가 각각 다름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승일교 한쪽에 새겨진 명문의 내용은 전혀 다르답니다.
“이 다리는 북괴가 강제 노력동원으로 절반 정도를 구축하고 남침하였으며, 휴전 이후 우리가 완공한 것으로서 6·25 당시 이곳 한탄강을 도강, 민족의 염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북진하던 중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장렬하게 전사한 고 박승일 연대장의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제5군단장 이성가 장군이 1958년 12월 3일 이 다리를 완공, 당시 연대장의 이름을 따서 승일교라 명명한 것이다. ······.”
승일교는 남북이 반반씩 만든게 사실이지만 다리 이름은 한국전쟁으로 31세의 젊은 나이에 산화한 고 박승일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랍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노2리에 위치하고 있는 용정산에 얽힌 이야기다. 용정산은 금학산 남쪽으로 뻗어내려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데, 산봉우리에는 용정이라는 우물이 있으며 옛날 이곳에서 용마가 나왔다고 한다. 때마침 남이장군이 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용마는 주인을 만났는지 반겨하여 장군이 손수 용정산에서 이 우물을 먹여 키웠으며 승마하여 본 결과, 공중을 날으는 비용과 같이 날쎄어 전쟁에서 큰 공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산에는 현재 용마암과 용정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한국전쟁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어 병사들의 시체가 수없이 흩어져 있었으나 명산인고로 적이 멸망하였다고들 한다. 용마가 난 이후부터 이 산 이름이 용정산이라고 불리워진다.
한탄강 중류에 위치하고 있는 명승지 칠만암은 현무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수만개에 달하는 기암괴석을 한데 모아놓은 것처럼 기기묘묘한 조화의 신비를 이루었다 하여 칠만암이라 불리운다.
광해군 때 명장인 충무공 김응하가 청년시절 무예를 닦던 곳인데 하루는 아끼던 말에게 자신이 쏜 화살이 떨어지는 지점으로 달려가 화살을 입으로 받지 못하면 목을 벨 것이라 하고 화살을 쏘고 말을 달렸는데 이때 말이 달리다 멈춘 곳이 칠만암이었고 멈춘 말을 보니 화살이 없자 말의 목을 베었는데 말이 쓰러지는 순간 화살이 날아와 말의 엉덩이에 꽂혔다는 전설과 함께 그때 세차게 달려와 멈췄던 말발굽 자리가 바위에 남아있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라고 불리는 폭포로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와 물보라를 보면 저절로 탄성이 튀어나올 정도다. 강전체가 폭포로 이뤄진 직탕폭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으로 폭포의 폭이 가장크다. 폭포의 높이는 약3m, 폭은 80m정도다.
송대소에 위치한 주상절리의 형태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하여 만들어졌으며 대체로 5~6각형의 기둥형태가 흔하다.
철원은 옛 하천을 따라 현무암이 흐르고, 이 현무암을 하천이 다시 깎으면서 절벽을 만든 형태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관찰할 수 있다.
철원이 자랑하는 수직적벽은 무엇보다 높이 30m 위용을 자랑하고, 그 절벽 높이보다 더 깊어 보이는 비취색 한탄강물의 조화는 보는 이의 탄성을 절로 나오게 한다.
학저수지 일대에 서식하는 동식물 탐방과 주변 농촌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2013년 생태탐방로를 조성하게 되면서 4.5km 구간의 탐방로와 연결교량 1개소를 설치했다.
데크 및 돌망태, 전망정자, 안내판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한여울길6코스로 조성하면서 관찰데크와 자연 길을 이은 탐방로를 따라 관광객들에겐 데크를 거닐며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고
사진작가들에겐 학저수지의 여명과 별일주를 담아내는 장소가 되었다.
사냥한 산짐승의 뼈로 담장을 쌓았다는데서 연유한 것이며, 깊은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은 한여름에도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이 곳은 철원군 관광지 관문에 위치하여 관광객들이 여행에 따른 심신의 피곤함을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주변에는 '한국의 콰이강 다리'라고 불리우는 승일교(등록문화재 제26호) 및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흐르는 한탄강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정자 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초등학교 : 동송초등학교, 오덕초등학교, 장흥초등학교, 용정초등학교
중학교 : 철원여자중학교
고등학교 : 철원여자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