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말읍

                                                                                                                                                                                                                                                           

1.개요

갈말읍은 한탄강 래프팅과 트래킹, 번지점프, 서바이벌 등 레포츠와 명성산의 물줄기를 내뿜는 삼부연폭포, 순담계곡, 승일교가 자리 잡은 곳으로 여행과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깨끗한 물이 굽이쳐 흐르는 한탄강과 맑은 공기를 뿜어내는 명성산을 바탕으로 철원오대쌀이 생산되는 청정의 고장이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12,054총 인구수
6,462인구(남)
5,592인구(여)

4.지명의 유래

  • 갈말읍 : 조선 정조 2년(1778년 10월) 갈종면으로 편재되었다 조선 26대 고종 32년에 갈말면으로 개편되었다. 해방 후 북한땅이었다가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피난 온 실향민들의 집결지였다고 한다. 1979년 갈말읍으로 승격되었다.

  • 군탄리 : 조선시대의 중요한 교통로의 풍전역으로 이곳에서 일하던 군졸들이 마시는 술막이 있어서 “군역술막(구술막)“이라 했다. 주막의 다른 이름을 탄막이라고도 하므로 군역술막의 군자와 탄막의 탄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풍전,벌말,동온동을 병합하여 군탄리라 하였다.

  • 강포리 : 1914년 지포리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방축리,서자곡,안말을 병합하여 강포리라 하였다. “철원말(처런말)“은 경기도 포천군과 경계가 되는 작은 마을로 철원쪽에 딸린 마을이란 뜻의 고을 이름이며 군탄리와의 경계를 흐르는내천을 “작은내” 또는 “군탄개울”이라 일컫는다.

  • 문혜리 : 문현리, 지혜리 일부와 대동, 능곡, 논골, 새말, 토기점지석, 엄음성, 평촌, 삼셍이 등을 병합할 때 문현의 문자와 지혜의 혜자를 한 자씩 따서 문혜리라 하였다. 그러나 문혜리의 옛 이름은 문열이(문여리)였다는 유래도 전해오고 있다. 그것은 이 곳의 문고개에 당시 김화와 함경도로 가는 관문이 있어 이 곳을 통행하는 이에게 문을 열어주었던 때문으로 풀이한다.

  • 내대리 : 내대리는 주위의 산허리 안쪽에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안터”라고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담,포리를 병합하여 내대리라 하였다.

  • 상사리 :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후동, 내동, 외동, 송호동을 병합하여 상사리라 하였다. 옛 이름은 이 곳에서 누에와 상전이 많았던 곳으로 위실, 아랫실로 불리웠다.

  • 동막리 : 독을 만드는 도요지와 막이 있었으므로 대점동, 독말 또는 동막 궁예시 군사요새지로 병영의 막을 동편에 설치했던 곳이라 동막이라고도 전해오고 있다. 신철원리 : 원래 지포리에 속했던 곳인데 1954년 수복이후 철원읍에 있던 철원군청을 이 곳에 설치함에 따라 인구가 늘어나고 지포리의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에 1956년 이를 나눠 지포리와 신철원리로 분할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지경리 : 원래 철원군 갈말읍 지역으로서 김화군 서면 지경리에 있으므로 지경대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토성리에 편입되었다가 1956년 3월 26일 갈곡, 불당곡, 신촌을 병합하여 지경리라 하여 토성리에 분리 독립된 행정리이다.

  • 토성리 : 토성리는 동쪽 농경지 한 가운데 성축된 토성이 있어 그 후 사람들에게 토성리 또는 토세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토동,중토동,하토동,갈골,분당골,지경터를 병합하여 토성리라 하였는데 1956년 갈골, 불당골, 지경터를 병합 분리하여 지경리로 분리 행정리가 되었다.

  • 지포리 : 갈말읍 지역으로 한탄강의 지류가 되므로 지설개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방축리, 서자곡, 느치, 용화동을 병합하여 지포리라 하였으며 1956년 군청소재지로 인구가 증가됨에 따라 방축리, 서자곡을 합하여 강포리로, 느치, 용화동을 합하여 신철원리로 하여 각기 독립되었다.

  • 정연리 : 1945년 해방과 동시에 38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3년 휴전이 성립되면서 평강군의 일부지역인 정연리 일부지역이 남방에 흡수되었으며1954년 수복지구임시조치법의 시행에 따라 군정으로부터 행정권을 철원군에 인수하면서 1972년 평강군 남면 정연리가 철원군 갈말읍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철원군청>

5.지역의 옛이야기

5.1.명성산 전설

일명 울음산이라고도 부르는 명성산은 철원평야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발 922.6m의 명산이다.
김암절벽으로 울창한 이곳이 명성산 또는 울음산으로 부르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온다.
옛날 태봉국의 궁예가 철원 풍천원에 도읍을 정하고 통치하던 중 지나친 폭정으로 인심을 잃고 부하들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여기까지 피신해서 왕건과 대치하던 중 기력이 쇠퇴하여 부득이 이 산중에서 부하 군사들과 해산하게 됐는데, 이때 심복들이 슬퍼 통곡하였다 하며 그후 가끔 이 산중에서 슬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지금도 이 산중에는 궁예가 은거했던 성지 등 유적 일부가 남아있다.
<철원관광100선>

 

5.2.삼부연 폭포 전설

 

철원9경의 하나로 삼부연폭포는 폭 1m에 높이 10m 규모로 명성산의 기암절벽 사이에서 흐르는 맑은 물과 폭포 주위를 에워싼 울창한 수림으로 연중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곳이다.
삼부연이란 말은 가마솥과 같이 생긴 연못이 세 개 있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후삼국시대 궁예가 태봉국을 세우고 도읍을 철원에 정할 무렵 삼부연에서 도를 닦던 이무기 네 마리가 있었는데, 그중 세 마리를 도통하여 용이 된 후 승천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도를 통하지 못해 승천하지 못했다. 이때 용이 된 이무리 세 마리가 기암절벽을 뚫고 나와 하늘로 올라가면서 생긴 큰 바위 구멍 세 개에 물이 고여 연못이 된 후부터 이곳을 삼부연폭포라 부르게 되었고, 이곳 마을도 용화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화가 정선이 이곳을 지나다가 그린 그림에서 삼부연의 특징을 진경산수화로 잘 나타내었다고 전해진다.

7.지역의 명소

7.1. 삼부연폭포

삼부연폭포 이미지
철원9경의 하나로 폭1m에 높이 20m 규모의 명승지 철원군 갈말읍 삼부연폭포가 있다.
폭포수가 높은 절벽에서 세 번 꺾여 떨어지고, 세 군데의 가마솥 같이 생긴 곳에 떨어진다 이름붙여진 곳이다.
철원 9경 가운데 하나이며 경치가 빼어나 조선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이 이곳을 지나다가 진경산수화를 그렸다고 한다.

7.2. 순담계곡
순담계곡 이미지

하얀 천연 모래밭의 아름다운 계곡
철원군청에서 북서쪽 5km정도 떨어진 순담은 한탄강 물줄기 중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기묘한 바위와 깎아 내린듯한 벼랑,연못등이 많으며 물도 많을 뿐 아니라
계곡에는 보기 드문 하얀 모래밭이 천연적으로 형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연중 끊임없이 찾고 있는 명소이며 뒷편에는 래프팅 장소로 최적지인 뒷강이 위치하고 있어 래프팅 동호인들이 즐겨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7.3. 명성산
명성산 (울음산) 이미지

궁예의 일화가 함께하는 울음산
명성산은 강원도 철원군과 경기도 포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923m이며 ‘울음산’이라고도 하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주로 암릉과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으로 남쪽에 있는 삼각봉 분지에는 억새풀이 많아 매년 가을마다 억새꽃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7.4. 용화저수지

용화저수지 이미지
갈말읍 신철원3리에 위치한 용화저수지는 1960년도에 자연소류지를 확장해서 사력축조한 인공저수지이다.
저수지면적 28.47ha에 저수량은 17,770톤이며, 유역면적 1,400ha, 몽리면적은 450ha로서 지포리, 군탄리지역에 관수하고 있는데 저수지 하류에는 삼부연폭포가 있다.
용화동 주위 산록에서 채취한 산채는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다.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신철원초등학교, 문혜초등학교, 내대초등학교, 토성초등학교
중학교 : 신철원중학교
고등학교 : 신철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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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