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은 철원군 유일의 휴전선을 접하지 않은 지역으로서 북쪽은 갈말읍, 동쪽은 근남면, 남쪽은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과 접하고 있으며, 서울과는 국도 47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풍부한 문화유산과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춘 살기좋고 풍요로운 고장이며, 무한한 발전 잠재력과 자연환경을 두루 갖춘 곳이다.
<출처: 철원군청>
현 철원군 서면 자등4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 조막골의 약수가 발견된 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전설에 의하면 김화가 고을로 된 것은 고구려의 부여군이 된 때부터이다.
옛 객관은 어느 시개에 건축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유물의 흔적과 전래된 고증으로 입증된다.
숭정 2년 2월에 이 고을 현감으로 황후영이 부임해왔다. 마을이 잘 다스려지고 피해가 줄어드는 등 현명한 지도자였다. 어느 날 현감이 관내를 순시 중 이 곳 약수가 피부병에 특효를 갖고 있다는 것을 전해듣고 직접 확인한 바 신비의 약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조정 왕실의 한 사람이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이 약수터를 알렸고, 왕실에서는 환자를 데리고 와서 이 약수터에 조막을 치고 수양하면서 이 약수를 복용하였다. 그 결과 피부병은 완치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처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어 효능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후 사람들은 이 약수를 조막골의 약수터라 불렀으며 동네 이름 역시 조막골이라고 했다.
지금은 군부대 지역으로 사용이 통제되어 있다. 바위 틈바구니에서 흘러 나오는 이 물은 신비에 가까우며 옛적에 부정한 사람들이 이 약수를 이용하면 뱀들이 기어나와 접근을 못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서면 자등6리에 위치하고 있다. 문암에서 약 500미터 거리에 있는데 이 바위의 가운데에는 머리가 닿은 자국이 움푹 나 있고 좌우에 두 주먹 자국이 뚜렷하게 나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곳에 살던 두 모녀가 그 바위 부근에서 산삼을 캐다가 부정이 들어 그 바위에 눌려 허우적대는 것을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노승이 발견하고 이 바위를 머리와 양손 두 주먹으로 받쳐 들어 이 모녀를 살렸다고 한다.
즉, 이 노승은 승이 아니고 산신령이었다. 그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처바위라 하였고, 그 후부터 아낙네들은 산에 나물을 채취하러 갈 때 부정한 것을 보았거나 부정이 있을 때 큰 산에 올라가는 것을 삼가 하였다고 한다.
서면 와수1리에 위치하고 있는 얕으마한 고개를 말한다. 고려 말기에 이 마을에는 평산신씨 문중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신씨문중의 한 장사가 싸움터에 나가서 치열한 접전끝에 전사를 당하자 항상 타고 다니던 신장군의 애마가 주인의 목을 물고 돌아와 아리랑 고개에 서서 떠날 줄 모르니 신씨문중과 마을 사람들이 신장군의 목을 고개 마루터에 안장했다. 그 후부터 3년 간은 이 고개를 넘으려는 말을 탄 길손들은 발이 떨어지지 않아서 길을 돌아서 갔다고 한다.
초등학교 : 와수초등학교, 서면초등학교
중학교 : 김화중학교,김화여자중학교
고등학교 : 김화고등학교,김화공업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