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면

                                                                                                                                                                                                                                                           

1.개요

서화면(瑞和面)은 대한민국 강원도 인제군의 면이다. 넓이는 265.37km2이고, 인구는 2011년 12월 말 기준으로 3,390명이다. 원래는 38선 이북이었는데 한국 전쟁으로 일부를 뺀 지역이 남한 지역이 되었다. 북측에 남은 지역은 금강군으로 편입되었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2,576총 인구수
1,515인구(남)
1,061인구(여)

인제군청-통계,백서

4.지명의 유래

  • 천도리 : 본래 서화면의 지역으로 천도(天桃) 또는 천도촌(天桃村)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제(水濟)를 병합하여 천도리(天桃里)라 했다. 1945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1년 국군이 탈환하여 군용지로 사용하였는데 1955년 5월부터 민간인이 입주하였다. 행정리로는 4개리다.

  • 서흥리 : 본래 서화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논장(論章), 사천(沙天)을 병합하여 서흥리(瑞興里)라 하였는데 1945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1년에 수복되었으나 군용지로 사용되었다가 1955년 5월부터 민간인이 입주하게 되었으며 행정리수는 2개리다.

  • 서화리 : 본래 서화면(瑞和面)의 지역으로 서화현(瑞和峴)의 소재지가 되기 때문에 서화(瑞和)라 하였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곡리(大谷里)를 병합하여 서화리(瑞和里)라 하였다. 1945년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1년에 국군이 탈환하여 군용지로 사용하다가 1958년 3월부터 민간인이 입주하게 되었으며 행정리로 2개리다.

  • 가전리 : 본래 서화면의 지역으로 가전리(加田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가전리(加田里)라 하였다. 1945년 38˚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3년에 휴전협정에 의하여 완충지대가 되었다.

  • 서희리 : 본래 서화면의 지역으로 서희(西希)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전리(加田里) 일부를 병합하여 서희리(西希里)라 하였다. 1945년 38˚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3년 휴전협정에 의하여 완충지대가 되었다.

  • 심적리 : 본래 서화면의 지역으로 심적(深積)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화리 일부와 다릿골, 신촌, 평촌, 장바우를 병합하여 심적리(深積里)라 하였다. 1945년 38˚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1년 수복되었으나 북쪽에 완충선에 닿아서 군용지로 사용되고 있다.

  • 이포리 : 본래 춘천부에 딸린 이포소(伊布所)가 있던 곳인데 조선 제4대 세종6년(1424)에 인제군에 이속되고 그 후에 이포리(伊布里)가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양지촌(陽地村),용산(龍山), 화학동(化鶴洞), 지남, 갈문, 대정동, 능동, 화중동, 이곡, 돌모루를 병합하여 서화면에 편입되었으나 38˚선 이북이 되어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3년 휴전 협정에 의하여 완충지대로 남게 되었다.

  • 장승리 : 본래 서화면의 지역으로 장승이 있었다 하여 장승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방곡(大房谷), 장평(長坪), 대평(大坪), 어우실, 장항(獐項) 노전평(蘆田坪)을 병합하여 장승리라 하였다. 1945년 38˚선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3년 휴전협정에 따라 완충지대로 남게 되었다.
     

<출처: 인제군청>

5.지역의 옛이야기

5.1.가전리(加田里)의 개고개

인제군 서화면 천도4리에서 북쪽으로 12㎞ 지점인 미복구 지역으로 가전리에 소재하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고개이다. 중부에서 서화리로 가는 고개 아래에 큰 갯가가 있는데 이 갯가에 얽힌 전설이다. 1900년대초 가전리 마을에 사는 촌노가 술을 마시고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석양길을 되돌아 오다 고개 밑 잔디밭에 누워 잠이 든 사이에 원인 모를 산불이 발생하자 따라오던 검둥이 개가 주인을 구출하기 위하여 냇가로 달려가 털에 물을 묻혀 되돌아와 잔디를 적시기를 수없이 하여 주인을 불속에서 살린 뒤 개는 지쳐 쓰러져 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으니 이 고개 밑에는 주인을 위해 죽은 개 무덤이 있다고 한다.

 

5.2.서화 천도리(瑞和 天桃里)

인제군 서화면 천도4리에 얽힌 전설이다. 옛날에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복숭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것을 본 마을의 한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길 징조라 생각해서 복숭아가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집을 지었다. 그랬더니 그 곳에 집을 짓고 사는지 불과 몇 해 되지 않아 그 지방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인근에 알려지자 사람들이 모두 모여와서 집을 짓기 시작하여 몇 해 안지나 이곳에 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웃 마을에서는 이 마을을 하늘로부터 복숭아가 떨어진 곳이라 하여 천도리(天桃里)라고 불렀다 한다.

 

5.3.서흥리 도깨비 화로

서화면 서흥 2리의 밭 가운데에 있다. 이 마을에 咸富者로 통하는 대농의 가족이 살았다. 근면 성실한 함부자는 수년동안 자기 집 앞에 있는 밭 가운데다 돌을 주어다 쌓아 큰 형체의 돌무덤을 만들었다. 어느 해 겨울 이 돌무덤을 들어내기 위해 온 집안 식구가 나와 작업을 했는데 제일 중심부를 치우게 될 단계에서 6척 정도의 뿔 달린 뱀이 둥지를 틀고 동면을 하고 있었다. 함부자는 설상사 (雪上蛇)가 몸에 특효약임을 아는 터이라 즉시 잡아 토막을 내어 뱀술을 담갔다. 100일 후에 뱀술을 먹으려고 항아리를 열었는데 모두 발효가 되었어야 할 뱀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생생하여 기이하게 여긴 함노인은 그것을 항아리째 강물에 띄워 버렸는데 석달 열흘간을 밤마다 凶凶하더니 그로부터 10년 내내 그 마을에 살던 함씨 일가 22명이 모두 죽어 갔으며 지금도 함부자가 살았다는 집터는 서흥리에 있다고, 당시 살았던 김수배(金壽培:1904∼ )씨는 전해 주었다.

 

5.4.설퍼덩과 머슴

인제군 서화면 소재지인 천도4리에서 북서쪽으로 태백산맥 최북단의 명산인 향로봉(1,299m) 중턱의 설퍼덩이란 곳에 얽힌 전설이다. 1900년대초 서화리 당촌에 머슴이 있었다. 그의 몸은 낳을 때부터 얼굴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털(毛)로 덮혀 있었는데 자기를 대해주는 사람이 없자 소(牛)와 친해져 계곡을 누비며 놀았으나 동네 사람들이 이를 알고 놀려대자 머슴은 마을을 등지고 향로봉의 “설퍼덩”으로 들어갔다. 몇 달이 지나도록 산으로 들어간 머슴이 소식이 없자 궁금히 여긴 동네 사람들은 그를 찾아 향로봉 중턱을 헤메다가 통나무 집을 발견하자 안을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옷이라고는 걸치지 않는 털복숭이 머슴 옆에는 키가 9척이나 되는 산사람이 누워 있었는데 그의 모습은 생리적 조건까지 여자를 닮았으나 말을 전혀 못하는 여인이었다. 여체의 괴물은 동네 사람들의 놀림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털복숭이 머슴을 가볍게 업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두 벌거숭이는 그 후 열흘이 못돼 어디론가 영영 사라졌다. 그 뒤부터 이 지방 사람들은 “바보와 미화”라는 표현으로 “미산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당지에서 70여년 살아왔다는 목격자 김수배(1904∼ )씨는 전해주었다.

 

5.5.천도리의 범바위

인제군 서화면 천도2리에 있다. 옛날 어느 장엄한 무사가 홀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게 되었다. 무심코 지나다가 말을 갑자기 멈추었다. 무사는 무슨 연고로 말이 갑자기 섰는지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벼랑 밑을 내려다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벼랑 밑에는 멧돼지 한 마리가 있었다. 이때 무사는 벼랑 밑 멧돼지를 노려보는 호랑이를 갖고 있던 활로 쐈다. 화살은 호랑이의 앞가슴을 정통하여 호랑이는 마침내 벼랑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무사는 다시 한번 호랑이의 죽음을 확인하고자 벼랑밑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화살을 맞은 호랑이가 벼랑으로 떨어지면서 멧돼지의 목을 물어 두 마리가 같이 죽어 있었다. 그 후부터 화살 한발에 두 마리의 짐승을 죽였다는 일화가 전해져오고 있는데 그 뒤부터 범바위로 불리어지고 있다

<출처 : 개인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ud540&logNo=4002720178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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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