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동

                                                                                                                                                                                                                                                           

1.개요

원인동은 조선 인열왕후가 태어난 곳으로 지금의 원주교 근처에 생가가 있었다고 하며, 인열왕후의 인(仁)자를 따서 ‘인동’이라 하고 남산이 정원(庭園)처럼 자리잡고 있다고 해서 ‘원동’이라는 유래가 있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5,177총 인구수
2,486인구(남)
2,691인구(여)

 

4.지명의 유래

  • 원인동은 상수도 제1배수지 일대를 정점으로 하는 남산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 둥글 원(圓)자를 사용하여 원동(圓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남산(南山)에는 옛날 달맞이 하던 추월대(秋月臺)가 있었고 일제시대엔 신사(神社)가 있었으나 지금은 그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인동은 조선시대 원주목사 한준겸(韓浚謙)의 딸이 이곳에서 태어나 후에 16대 인조대왕의 비(妃)인 인열왕후가 되어 고장을 빛낸 것을 기리기 위하여 쌍다리 분수대옆의 생가에 비각을 세웠으며 이 비각의 “인(仁)”자에서 유래하여 인동(仁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 원동 : 강원감영 앞의 남산을 원주의 정원으로 보아 남산정(南山町)의 이름을 고쳐 원동(園洞)이라 하였다.

  • 인동 : 조선 16대 인조(仁祖)의 비() 인열왕후(仁烈王后)가 태어난 곳이므로 인동(仁洞)이라 하였다. 원래 원주군 본부면(本部面) 상동리(上洞里)의 지역인데, 1937년 원주읍제 실시에 따라 대화정(大和町)이라 하다가 1946년 인동으로 고쳤다.
  • 다박골 [마을] : 절에 탑이 있으므로 그 앞의 골짜기를 '탑앞골'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탑앞골>타밥골>타박골>다박골'이 되었다. 이를 한자로 적어서 '탑전(塔前)' 또는 다박골을 닥밭골(닥나무밭)로 인식하여 '저전동(楮田洞)'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저전동면(楮田洞面)' 이 다박골에서 연유한 것이다.
  • 동문거리(東門--) [마을] : 조선시대 강원감영(江原監營)의 동문(東門)이 있던 길 주변으로 마을이 섰으므로 동문거리라 하였다.
  • 상동리(上洞里) [마을] : 원래 본부면의 위쪽이므로 본부면 상동(上洞)이라 하였다.
    [내용]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부면의 본읍리(本邑里)와 삼리(三里), 부흥사면(富興寺面)의 일리(一里), 판제면(板梯面)의 하일리(下一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상동리(上東里)라 하였다.
    1937년에 본부면이 원주읍으로 승격함에 따라 개운정(開運町), 남산정(南山町), 대화정(大和町), 본정일정목(本町一丁目)으로 나누고, 상동리 일부와 하동리 일부를 본정이정목(本町二丁目), 금정(錦町)으로 나누었다가 1946년에 동명 변경에 의해 남산정을 원동으로, 대화정을 인동으로, 본정이정목을 중앙동으로, 금정을 일산동으로 고치고, 개운정은 개운동으로 하였다.
  • 서낭당고개 [고개] : [고개에 서낭당이 있었다고 한다.
  • 호주말 [마을] : 옛날에 백정들이 집단으로 모여 산 곳이라고 한다.



<출처: 원주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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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