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선생, 우남 이승만 박사와 함께 3영수 3거두로 불리며,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일제강점기 파리강화회의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 명의의 탄원서를 제출한 독립운동가
►별칭 : 우사(尤史), 요한 ►성별 : 남 ►시대 : 현대 ►출생~사망 : 1881년 ~ 1950년 ►출생지 : 부산 동래 ►본관 : 청풍(淸風) ►주요업적 : 신한청년당 조직, 민족혁명당 창당, 미소공동위원회 한국대표, 파리강화회의에서 탄원서 제출, 기타 집필, 정치활동 |
1881년 홍천 출신 김지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인 김지성은 부산 동래부사의 하급관리로 근무하였는데,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다가 이것이 화근이 되어 귀양을 가게 되었고, 어머니마저 1887년에 사망하게 되며 6세에 고아가 되었다. 다행히 선교사 언더우드의 보살핌을 받아 미국 버지니아주의 로녹대학교(Roanoke University)에서 공부하였으며,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교사, 강사로서 교육활동을 하였다. 1919년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여 조선공보국을 설치하고 젋은 층을 흡수하여 신한청년단을 조직하였다.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 명의로 된 탄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서 발표하는 등 대한민국의 독립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35년 민족혁명당을 창당하여 그 주석이 되었으며, 미소공동위원회 한국대표 등으로 활동하며 김구선생과 같이 이승만의 남한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고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남북한 모두 단독정부가 수립되어 민족 분단의 상황을 맞이하였는데, 그와중에 북한으로 납치되어 1950년 12월 10일 평안북도 만포진 부근에서 70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