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근대 삼척지역)에서 활동한 서예가이자 문장가
►별칭 : 자 백천(白天), 호 만재(晩齋) ►성별 : 남 ►시대 : 대한제국 ►출생~사망 : 1874년 ~ 1918년 ►출생지 : 동해 송정동 ►본관 : 남양(南陽) ►주요업적 : 만재집, 강회계록 |
홍병정과 삼척심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큰아버지인 홍병욱의 양자로 입적하였다. 홍낙섭이 살던 마을인 송정의 담안에 100여 칸에 이르는 큰 집에서 살았으며, 12세에 ‘화로’라는 한시를 지어 신동으로 불렸다. 어려서 연재(淵齋)송병선(宋秉璿)[1836~1905]에게 배우고 성장하여 이희수(李喜秀)[1836~1909]에게 배웠으며, 해강(海岡)김규진(金圭鎭)[1868~1933]과 동문수학하였다. 함께 공부한 김규진은 홍낙섭의 해서체 글씨를 두고 “동대문 밖에는 자네가 맡게.”라고 할 정도로 극찬하였다. 생전에 지은 시문, 제문, 상량문, 묘비, 행장 등을 기록한 『만재집』과 『강회계록(講會契錄)』이 전한다. 삼척시 근덕면맹방리 남양홍씨 재사(齋舍)에 많은 홍낙섭의 작품이 전한다. 홍낙섭은 44세로 요절하여 스승인 이희수의 서체를 따르는 경지에 이르고도 독자 서풍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홍낙섭의 제자로 심지황(沈之璜)[1888~1964], 최중희(崔中熙)[1896~1990] 등 당대의 명필들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