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성읍은 동부 동안형 기후로 산간 고랭지와 해안 평야지 기후가 공존하는 지역으로서 흘리 “피망”, 해상리 “블루베리”, 어천리 “라벤더 축제”가 유명하며, 동호리 해안주변으로 자전거 도로와 해맞이 소공원이 위치하고 있어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평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기에 언제나 다시찾고 싶은 힐링마을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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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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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 간성읍 금수리 강릉 함씨 장손이 사는 큰 참나무 집 앞에 큰 우물과 발방앗간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집에 늠름한 한 아이가 태어나 가족들이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하루는 이집 안방에 아이를 눕혀놓고 방앗간에 갔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서 집으로 돌아와 평소 담배를 올려놓았던 선반에 손을 뻗쳐 더듬다가 물컹하는 물체가 잡혀 놀라 살펴보니 안방에 눕혀 놓았던 이 아이가 선반 위에 드러누워 있었다. 분명 안방에 누운 채 잠재워 놓고 방아를 찧으러 갔는데 이 아이가 선반 위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집안에서는 이일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문중 사람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이 아이가 분명 장수가 틀림없다고 생각한 가족들은 나라에서 장수가 태어나면 그 집안의 삼대를 멸종시킨다는 속설에 미리 겁을 먹고 이 아이를 돌을 달아 우물에 집어넣기로 했다. 그래서 돌을 그 아이에게 달아 우물 속에 넣고 그 우물을 메우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자정 무렵 마을 뒷산 넘어 방추골이라는 연못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나서 이튿날 아침에 동네 어른들이 나가 살펴보니 장수를 태울 용마[1]가 죽어 있었다. 용마를 묻어주고 그 안장을 집안에서 보관했었으나 6.25동란 때 소실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 없다. 우물은 옛날 이곳 땅속에서 용마가 솟아 나와 하늘로 오르면서 생긴 것이라 한다. 이 용마는 금수리 큰 참나무 집에서 날개 달린 장사가 태어났는데 이 장사를 등에 업고 가기 위해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이 우물이 얼마나 깊었는지 온 동네 명주실을 끌어다 넣어도 끝이 없었다고 전한다. 천혜장은 이 장사가 용마를 타고 군사훈련을 하던 곳으로 현재는 고성군 공설운동장이 되었다.
고려 때 어느 원님이 어느 날 관직에 오래 있으려면 3곳에 우물을 파고 4곳에 연못을 만들고 5가지의 나무를 심으면 관직에 오래 머물 수 있고 장수한다는 말을 듣고 간성 골 3곳의 우물과 4곳의 연못을 파고 은행나무 등 5가지의 나무를 심었다 한다. 그 후 이 우물과 연못, 나무 등을 가리켜 삼정(三井) 사지(四沈) 오목(五木)이라고 불러왔는데 지금 삼정과 사지는 사람들에 의해 매몰되고 집들을 지어서 모두 없어졌으나 오목 중의 하나가 지금의 현재 군청 입구에 있는 은행나무이다. 고목이 된 이 은행나무도 지난 1964년 가을 썩은 곳에서 불이나 연 3일 동안 타다 남아 지금은 봄이 돼도 잎이 절반밖에 피지 않고 있다. 오목(五木)중 은행나무 2그루는 1950년 6.35동란 전까지 남아있었으나 암은행나무는 6,25때 폭격으로 없어지고 현재는 군청 입구의 은행나무가 유일하게 살아 있다. 삼정(三井)은 현재 2개소 보존되고 있다. 군청 앞과 천주교 입구 중방여관 앞 현존하며 1개소는 현 산림조합과 하리 사무소 부근에 있었으나 매몰되었다. 사지(四池)는 현재 전부 매몰되어 없으나 그 위치는 상리 460번지 함희조(咸熙祥)씨 대지 부근, (구)경찰서 앞 길 건너편, 간성 우체국 대지, 하2리 사무소 부근이다.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 선유령 가는 길목에 옛날 산을 타고 다니는 관대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전한다. 어느 날 관대라는 사람이 그 산 주변에 바위 버섯이 많이 난다고 하여 그것을 따기위해 산을 타고 다니다 그곳에 가니 큰 짐승이 앉아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관대라는 사람이 그 앞에서 길을 비켜달라고 빌었으나 그 짐승이 꼼짝도 하지 않아 침을 탁 뱉어 그 침이 그 짐승 앞에 떨어지는 순간 그 짐승이 바위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관대바위라고 불렸다. 어느날 관대란 사람이 그 바위를 주욱 타고 오는데 산봉우리에서 물이 나오길래 물을 먹으려고 그곳에 엎드리니 물속에 말이 보여 신기하게 여겼다. 다시 고쳐 앉아 무릎을 탁 치니 그곳에서 백마가 울음소리를 내며 뛰어 나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맑은 물이 솟아나오고 있다고 한다.
옛날 간성에 어떤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어렵게 자식을 하나 두었다. 하루는 어떤 괴나리봇짐을 한 사람이 오더니 " 이 녀석 나긴 잘 났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그 사람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버지는 그 얘기를 듣고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괴나리봇짐을 한 사람을 불러 세웠다. 그 사람은 "왜 가는 사람 붙잡고 그러냐?"라고 했다. 아버지는 그 사람을 끌어들여 술상을 차려 놓고 "그래도 내가 여기서 밥술을 먹는데 그냥 가실 수 있느냐?" 하면서 술을 권하고는 "아까 우리 아이가 저기에서 놀았는데 걔보고 뭐 한 얘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나그네는 "저놈이 나긴 잘 났는데 단명한다."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버지는 다급한 마음에 "단명하면 저걸 어떻게 하냐? 어떻게 푸는 방법이 없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나그네가 답하길 "이 아이를 십 년 동안 어디 한데 나가 고생시키라."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어린아이를 객지에 보내 십 년을 혼자 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딴 방법이 없소?"라고 물었더니 나그네는 "향로봉사를 찾아가든가"라고 했다. 옛날 진부령 가는 길에 향로봉사라는 절이 있었다. 여덟 살이 된 아이는 향로봉사를 찾아 나서게 됐다. 일찍이 어른들로부터 얘기 들은 바 있는 향로봉사를 찾아 골짜기를 들어가 보니 스님은 기거하지 않았고 벽에 큰 부처가 있고 양쪽에 작은 부처 둘이 있었다. 마당에는 나무를 해 땐 재를 담아 둔 잿독이 3개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잿독을 파서 불씨를 찾아 그것으로 절에서 시주해 왔던 것으로 보이는 쌀로 밥을 해 부처에게 공양하고, 인근에서 풀을 뜯어 나물죽을 조금씩 끓여 먹게 되었다. 그렇게 사는 동안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아이가 열일곱 살이 되는 날 하루는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벽에 있던 큰 부처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밥 먹고 내 뒤에 와 앉아라." 그래서 이 아이는 큰 부처가 시킨 대로 아침 일찍 밥을 먹고 부처 뒤에 앉았는데 바깥에서 벼락치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큰 호랑이가 문을 벌떡 열고 들어와 "그 아이를 내놔라'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부처는 "일 년만 더 연기를 해 다오. 우리가 수백 년을 굶어왔는데 애로 인해 배를 채우고 지금까지 살았다. 우리 삼 형제가 부탁하니 일 년만 연기해 다오."라며 큰 호랑이에게 사정했다. "그래, 좋다. 일 년만 연기를 해 주마." 하고 호랑이가 돌아갔다. 아이는 일 년을 더 살 수 있었다. 일 년이 지난 후 이번에는 둘째 부처가 아이에게 "야 내 뒤에 앉아라" 했다. 이번에도 호랑이 나타나 "약속대로 아이를 내놔라" 했다. 그러자 둘째 부처가 "우린 다 똑같은데 형님은 연기해 주고 왜 나는 연기를 안 해 주느냐?"라고 사정해 또 일 년을 살수 있었다. 그다음 해에 다시 찾아온 호랑이에게 셋째 부처가 "형님 둘은 양보해 주고 너 말이야. 아무리 산중 호랑이라고 해도 그런 인정도 없냔 말이야. 인정을 베풀어야지."했다, 그렇게 일 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20세가 된 어느 날 큰 부처가 말했다. "내일 아침에는 여기서 자고 새벽에 떠나라. 저 아래 우물이 있다. 우물곁에 집이 하나 있는데 그 뒤에 큰 버드나무가 하나 있다. 버드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한 여자가 나와서 물을 물동이에 퍼서 담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여자 뒤에 가서 허리를 꽉 껴안아라. 여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날 살려 주시오' 하고 애걸하는데 여자가 놓으라고 해도 절대 놓지 말아라.“ 이튿날 새벽 그 아이는 부처에게 눈물을 흘리며 하직 인사를 하고 절을 나와 부처가 얘기한 우물 옆 버드나무 뒤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 날이 샐 무렵 처막에서 뻐금이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물동이를 들고 나와 사방을 휘둘러 본 다음 이상하게 하늘을 쳐다보더니 정신없이 대여섯 바가지 물을 퍼냈다. 그때 아이가 얼른 뛰어나가 여자의 허릴 꽉 끌어안았다. 여자는 "아이 왜 이래요. 웬 사람이 와서 끌어안고 이러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는 "날 살려 주시오"라고 하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때 벼락같이 큰 호랑이가 나타나 문 앞에 서더니 "난 그 아이를 잡아먹고 호랑이 가죽을 훌떡 벗어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라고 했다. 사실 그들은 옥황상제의 아들과 딸이었는데 아들이 하늘에서 죄를 짓고 땅에 내려오는데 혼자 보내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 누이와 함께 보낸 것이다. 그 누이가 말했다. "이 사람과 똑같이 한날한시에 난 사람을 찾으면 될 것이 아니냐.” 여인 덕에 목숨을 건진 아이는 여인과 인연을 맺고 다시 부모님의 집으로 찾아가 잘 살았다고 한다. 그 아이가 호상에 갈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운명을 새롭게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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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봉은 백두대간 준령[2] 위 진부령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절경과 함께 겨울철 설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자연의 위용과 위엄을 함께 느끼게 한다. 마산봉은 봄철 등산코스로도 이만한 곳이 없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마산봉을 정점으로 서쪽방향을 수개의 계곡이 형성되어 있고 계곡을 중심으로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금강산 1만 2천봉의 남한 제2봉이 바로 마산봉이다. 고성군내 백두대간 길이는 23.4km로 미시령-신선봉-마산봉-진부령-향로봉으로 이어진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다리이다. 보물 제1337호이다. 이 다리는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의 경계 지점에 있다. 육송정 홍교의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성 건봉사 능파교(보물 1336)와 함께 조선시대인 1745년(영조 21)의 대홍수로 붕괴되었는데 1704(숙종30)∼1707년에 축조된 능파교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748년에 편찬된 《간성군읍지》에 따르면 육송정 홍교가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 능파교보다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소재지: 강원 고성군 간성읍 해상리 1041번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리~ 거진읍 대대리에 걸쳐있는 교량이다. 국가문화재 제143호이다. 길이 214m, 폭 6m, 높이 5m인 교량으로 6.25전쟁을 전후로 남과 북이 합작하여 건설했다. 교각 총 17개 중 남쪽의 9개 교각인 북한이, 북쪽의 8개 교각은 국군공병대대가 완공하여 개통시켰다. 남과 북이 건설한 시기는 다르나 남북한이 만든 다리로 남북화해시대의 상징적인 구조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남북한 건설공법의 차이도 살펴 볼 수 있는 점에서 의미있는 다리이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상리, 거진읍 대대리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교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이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04호이다. 1420년에 현유[3]의 위패를 봉안, 배향[4]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서 창건되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교동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편안하게 미술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작품 "소" 등으로 민족의 강인한 정신을 담은 국민 작가로 평가 받고 있는 이중섭의 전시실이 운영되고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진부령로 663
강원도 고성군 어천리에 있는 라벤더 체험마을이다. 매년 6월~7월 초순 라벤더가 개화하면 라벤더를 주제로 축제를 연다.
라벤더 수확, 비누 만들기 등 라벤더와 관련한 다양한 체험학습을 즐길 수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꽃대마을길 175
소똥령은 옛날 국도1번지로 한양가던 길이었다. 선비가 괴나리 봇짐을 메고 과거 보러 가던 길이기도 하고 소를 비단과 물물교환하기 위하여 령을 넘다가 산적을 만나기도 했던 고개이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지나다녀서 산 생김새가 소똥모양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소똥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고개 정상에 주막이 있었는데 원통장으로 팔려가는 소들이 주막 앞에다 똥을 많이 누어 소똥령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유원지와 다양한 체험활동을 운영중이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장신2리 소똥령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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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 고성중학교
고등학교 : 고성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