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내면은 금강산 육로관광의 출발지이면서 납북교류타운이 건설되는 평화지대이다. 남북화해협력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물류기지 조성, 호텔 신축, 관광레져시설 확충 등 최상의 투자지대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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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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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고구려 문화권에 있던 간성군에는 인가 없는 곳을 지나다 해가 저물어 잠잘 곳을 찾지 못할 경우 나그네가 쉬어갈 수 있는 집을 마련한 곳이 있었다. 그 지방 또는 지역 사람들이 모아서 집을 지어 놓고 연료로 사용할 나무를 잔뜩 쌓아 놓으면 장사꾼 또는 길손이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그곳을 떠나기 전에 준비되어 있는 도끼와 낫을 이용해 사용한 나무만큼 나무를 해서 다시 쌓아 놓고 간다. 이와 같은 원막이 간성군에는 지금의 토성면 도원리 원터와 현내면 구천동 두 곳이 있었다. 남쪽 지방에 없는 독특한 숙박시설은 추운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로서 나그네가 밖에서 잠을 잘 경우 동사하거나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에 따라 여행자를 서로 돕고자 하는 고구려 문화권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현내면 구천동에는 고성과 간성의 경계로서 한양 등 영서로 통하는 길목으로 그곳에 '계경지(堺境地=堺亭子)'라 하는 원막이 있었다. 옛날 현내면 명파리에서는 며느리를 대부분 수동면 외면이라는 동네에서 얻어 오곤 했다. 그런데 수동면 외면에서 명파까지는 길이 멀어서 중간 원막을 지나게 되며 신랑 측에서 가마와 신부 측을 수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술과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원막까지 약 30리 마중을 나간다. 어느 날 이 마중을 계경지까지 가던 가마꾼들이 가마와 술을 지고 가다가 그 길을 가던 도증에 그만을 술을 먹고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 시간에 신부 측에서는 신부를 가마에 태우고 계경지까지 왔으나 신랑 측에서 마중 나와야 할 가마가 보이지 않자 신부을 싣고 온 가마꾼(교군)들은 화를 내며 "이 여기까지 온다는데 우릴 말이여 즈 마당까지 미다 달라구 하냐?" 하며 신랑 집까지는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때 신부가 가마에서 나오며 함아비에게 "함을 열어 달라"라고 했다. 그리고 신부는 전안할 때 사용하는 나삼을 꺼내고 짚신을 벗은 다음 버선을 벗어 함 속에 넣고 한삼을 꺼내 발에 발이 얼지 않도록 보호하고는 "앞에서 길을 가르키시오." 라고 말했다. 신부가 걸어가겠다는 말에 신부 측 가마꾼들은 친정아버지를 따라 돌아가고 신부와 함께 신랑 후객이 날이 저문데도 30여 리를 걸어서 시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 오던 길에 만난 신랑 측 가마꾼들은 아직도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자고 있었다. 그래서 상객과 함애비가 가마꾼들에게 "거서 거냥 자면 얼어 죽는 거야. 술 먹고 거냥 자면 추운데 깨어나지 못해!"라고 호통을 쳐 깨워 데리고 왔다. 늦은 밤에 시집에 도착한 신부는 그 날밤이 지내기 전에 초야를 치르고, 결혼식 사흘 후에 첫 밥을 짓는 관례를 깨고 그날 첫 닭이 울자 신부가 밥을 지으려고 부엌에 나갔다. 밥을 지으려면 물이 필요한데 강에 물을 길어 와야 하지만 시어머니는 이 어린 신부가 물동이를 깨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못 미더워 물동이를 주지 않고 남박[1]을 주었다. 남박에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쭐럭쭐럭 거리며 돌아가는 어린 신부가 힘겨워 고개도 못 세우는 것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지난 방에 30여 리 길을 자기가 걸어서 와서 아침에 물 길어 오는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모두 측은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신부는 그 후에 부모를 잘 모시면서 현모양처로서 자식을 키우고 훌륭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간성군 현감 택당 이식 선생은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그곳의 이름을 '계경지'에서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으로 '가정자(佳亭子)'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5.2.노인산과 노총각
이 산은 강한 바람과 심한 경사로 나무들이 살지 못하고 벌거숭이인데다가 돌바위가 영을 덮어 그 모양이 마치 늙은 노인의 머리처럼 보인다 해서 노인산(老人山)이라고 불러지고 있다. 이 산밑에는 옛날 절터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절터를 찾아 기도하며 소원성취되기를 빌어 왔다. 이 마을에 사는 5대 독자인 노총각이 마흔 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 백일동안 노인산과 절터를 찾아 기도 끝에 어여쁜 아내를 만났다. 이 부부에게 1년이 넘어도 아기가 없자 또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려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아기 팔 밑에 날개가 달린 장사를 낳았다. 이 모습을 본 온 마을 사람들이 이상히 여겼다. 그러자 부부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날개를 인두로 지져 없애 버렀다. 그때 청명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서 심한 비바람과 함께 번개와 천둥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이에 놀란 부부는 아기가 잠자고 있는 방으로 급히 달려갔다. 어찌된 일인지 잠자던 아기는 오간데 없었다. 하느님이 하늘에 오를 날개를 없앤데 노하시어 날개 대신 용마를 보낸 것이다. 이 용마는 화진포에서 나와 아기를 업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위치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마을 뒷산 해발 400m 되는 우뚝 솟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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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현실이 발아래 펼쳐져 있는 곳으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되새기고자 1984년에 지어졌다. 이후 실향민과 관광객이 찾아와 이산의 상처를 달래고 통일을 기원하였다. 동해안 최북단 해발 70미터 고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금강산이 가깝게는 16km, 멀리는 25km 정도 거리로 해금강 대부분 지역이 한눈에 보이고, 해금강 주변의 섬과 만물상, 현종암, 사공암, 부처바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481
DMZ박물관은 남북한 평화와 안전을 바라는 전 국민의 염원을 담아 동해안 최북단인 군사분계선과 근접한 민통선 내에 건립하였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의 상징인 DMZ을 통하여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후 모습과, 휴전협정으로 탄생한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 이로 인해 나타난 동족 간 이산의 아픔, 지속되는 군사적인 충돌, 60여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태환경등을 전시물이나 영상물로 재구성하여 강원도 DMZ박물관에 담아 놓았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로 369
이승만대통령의 업적 등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친필휘호, 의복과 소품, 관련도서 등이 현대적으로 전시되어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이승만별장길 33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해 주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조용한 해변에 희고 고운 백사장은 가족단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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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 대진초등학교, 대진(명파)초등학교
중학교 : 대진중학교
고등학교 : 대진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