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내면

                                                                                                                                                                                                                                                           

1.개요

현내면은 금강산 육로관광의 출발지이면서 납북교류타운이 건설되는 평화지대이다. 남북화해협력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물류기지 조성, 호텔 신축, 관광레져시설 확충 등 최상의 투자지대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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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2,407총 인구수
1,185인구(남)
1,222인구(여)

4.지명의 유래

  • 대진리 : 처음엔 대범미진 (大범味津)이라 불렀고, 그후 安씨와 金씨가 개척하였다고 해서 안금리(安今里)라고 칭하다가 고려시대에는 여산현(驪山縣), 그후에는 열산현(烈山縣)에 속해 황금리(皇琴里 황구리)라고 불러왔고, 1910년 한일합방 이후에는 한나루(大津里)라 개칭 하였다.

  • 초도리 : 고려시대에는 이 지역에 샘이 많아 일명 샘동래 또는 9개소에서 샘이 솟는다 하여 구룡물이라는 속칭이 생겼다. 이 마을 앞바다의 섬에는 억새 따위의 새(草)와 수목이 많았으므로 초도(草島)라고 부르는 섬이 있었기에 '새임'이라고 칭하다가 진포(津浦)마을이므로 다시 초진리(草津里)라고 불렀는데 1915년 행정구역 폐합 때에 초도리(草島里)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1918년~1919년까지는 현내면 소재지였다.

  • 철통리 : 조그마한 마을에 뜻이 굳은 사람만이 모여 살았다 하여 옛부터 철통리라 속칭을 명명하여 지금의 명칭이 되었다.

  • 죽정리 : 이 마을은 동북쪽으로 열산현(烈山縣)때의 고성산(古城山), 서북쪽으로 노인산(老人山) 정상을 경계로 마을 중산평야지대로 중평천이 화진포로 흘러 내려 마을 앞에는 문전옥답의 1,000석 두루가 있어 옛부터 재해가 없는 부촌으로 이름나 있다.

  • 산학리 : 산학리는 원래 두 모퉁이로 나뉘어져 있어 옛 운근리(雲根里)를 고쳐서 산학리(山鶴里)와 열산리(烈山里)가 있었다. 고려때 여산현(驪山縣) 다음인 열산현(烈山縣)의 소재지가 열산리(烈山里)에 있었는데 조선시대 관제개혁으로 폐현(廢縣)되는 동시에 간성군에 속하고 현내면으로 개칭된 후 1915년 행정구역 폐합으로 두 부락의 '산(山)'자와 '학(鶴)'자를 따서 산학리(山鶴里)로 불렀는데 1914년까지는 현내면 소재지 이기도 하였다. 마을 뒤에는 고려초에 만든 것으로 전하는 주위 약 12m정도의 성지(城址)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전하는 바에 의하면 쑥고개 봉화봉(烽火峰)에서 횃불로 신호하면 이곳에서 간성 고성산으로 연락하였다고 한다.

  • 화곡리 : 옛날부터 시냇가에 버드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있어서 버드네라고 불러오고 있으며, 군량(軍糧)과 병기창고(兵器倉庫)가 있었다고 하여 창대리(倉垈里)라고도 부르며 산간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농작물과 목축의 소득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하여 화곡리(禾谷里)라 부르게 되었다.

  • 마달리 :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하늘이 가깝다고 하여 부르던 건달리(乾達里)와 원래 마직리(麻直里)라 부르던 아랫마을이 있었는데 마을의 남쪽에 꼭 말이 누워있는 형태와 같은 산이 있어서 후에 마직리(馬直里)라 고쳐 부르게 되었고, 1915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에 두 마을의 '마(馬)'자와 '달(達)'자를 합해 마달리(馬達里)로 되었다. 옛날에는 이웃마을인 마차진리(麻次津里)에 마직리(麻直里)의 동쪽 일부가 유입되었었다.

  • 마차진리 : 마차진리(麻次津里)는 고기(古記)에 마차진리(馬差津)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옛날에 인접한 마직리(麻直里)와 한마을로 병합하였을 때에 '마(麻)'자를 넣어서 마차진리(麻次津里라 고쳐썼다고 전하는데 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마직리(麻直里)가 분리 되면서 동편 일부를 흡수하고 무송대(茂松臺)부근에 수달리(水達里)로 편입하였다 한다.

  • 명파리 : 민통선 마을로 동해를 바라보아 동해의 맑은 물과 백사장을 낀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명파리로 불리우게 되었으며 광산천(鑛山川)과 명파천(明波川)이 흘러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전답이 비옥하고 각종 어족이 풍부하다.

  • 배봉리 : 신라시대에 봉화를 올려 통신을 전하던 봉화봉(烽火峰) 또는 돛대봉이라 부르는 뽀족한 봉우리 아래에 마을이 위치하였다고 하여 배봉리(培峰里)라고 불렀다. 인근 명파리와 함께 민통선 북방의 출입영농을 하고 있다.

  • 제진리(현내면 주민 미거주마을) : 마을앞 해변에 섬이 있는데 옛부터 이 섬에는 화살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했다. 섬이 흡사 돼지가 엎드려 있는 형상이라 저도(猪島)라고 부르며, 1945년까지는 동해 북부선 철도의 저진역(猪津驛)이 있었다.

  • 사천리(현내면 주민 미거주마을) : 고기(古記)에 의하면 사천리(蛇川里)라 불렀고 중국 魯나라의 사수(泗水)의 지형과 흡사하다 하며 수양과 학문을 탐구하는 곳으로서 적임지라 하여 사천리(泗川里)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 사천소류지 : 사천리 100번지일대로 유역면적 3㏊, 몽리면적 20㏊, 제방연장이 30m 등으로 일제시대 축조되었으며 1986년 일부 개보수 됐다.

  • 검장리(현내면 주민 미거주마을) : 옛날에 검장리(檢長里)라 불렀으며, 이 마을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마을 생김새가 칼을 꽂은 형상과 같다고하여 1915년 劒藏里라 부르게 되었다.

<출처: 고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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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지역의 옛이야기

5.1.'가정자(佳亭子)' 원집 이야기

 옛날 고구려 문화권에 있던 간성군에는 인가 없는 곳을 지나다 해가 저물어 잠잘 곳을 찾지 못할 경우 나그네가 쉬어갈 수 있는 집을 마련한 곳이 있었다. 그 지방 또는 지역 사람들이 모아서 집을 지어 놓고 연료로 사용할 나무를 잔뜩 쌓아 놓으면 장사꾼 또는 길손이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용자는 그곳을 떠나기 전에 준비되어 있는 도끼와 낫을 이용해 사용한 나무만큼 나무를 해서 다시 쌓아 놓고 간다. 이와 같은 원막이 간성군에는 지금의 토성면 도원리 원터와 현내면 구천동 두 곳이 있었다. 남쪽 지방에 없는 독특한 숙박시설은 추운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로서 나그네가 밖에서 잠을 잘 경우 동사하거나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에 따라 여행자를 서로 돕고자 하는 고구려 문화권의 생활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현내면 구천동에는 고성과 간성의 경계로서 한양 등 영서로 통하는 길목으로 그곳에 '계경지(堺境地=堺亭子)'라 하는 원막이 있었다.  옛날 현내면 명파리에서는 며느리를 대부분 수동면 외면이라는 동네에서 얻어 오곤 했다. 그런데 수동면 외면에서 명파까지는 길이 멀어서 중간 원막을 지나게 되며 신랑 측에서 가마와 신부 측을 수행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술과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원막까지 약 30리 마중을 나간다. 어느 날 이 마중을 계경지까지 가던 가마꾼들이 가마와 술을 지고 가다가 그 길을 가던 도증에 그만을 술을 먹고 술에 취해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이 시간에 신부 측에서는 신부를 가마에 태우고 계경지까지 왔으나 신랑 측에서 마중 나와야 할 가마가 보이지 않자 신부을 싣고 온 가마꾼(교군)들은 화를 내며 "이 여기까지 온다는데 우릴 말이여 즈 마당까지 미다 달라구 하냐?" 하며 신랑 집까지는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때 신부가 가마에서 나오며 함아비에게 "함을 열어 달라"라고 했다. 그리고 신부는 전안할 때 사용하는 나삼을 꺼내고 짚신을 벗은 다음 버선을 벗어 함 속에 넣고 한삼을 꺼내 발에 발이 얼지 않도록 보호하고는 "앞에서 길을 가르키시오." 라고 말했다. 신부가 걸어가겠다는 말에 신부 측 가마꾼들은 친정아버지를 따라 돌아가고 신부와 함께 신랑 후객이 날이 저문데도 30여 리를 걸어서 시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 오던 길에 만난 신랑 측 가마꾼들은 아직도 술에 취해 거리에서 자고 있었다. 그래서 상객과 함애비가 가마꾼들에게 "거서 거냥 자면 얼어 죽는 거야. 술 먹고 거냥 자면 추운데 깨어나지 못해!"라고 호통을 쳐 깨워 데리고 왔다. 늦은 밤에 시집에 도착한 신부는 그 날밤이 지내기 전에 초야를 치르고, 결혼식 사흘 후에 첫 밥을 짓는 관례를 깨고 그날 첫 닭이 울자 신부가 밥을 지으려고 부엌에 나갔다. 밥을 지으려면 물이 필요한데 강에 물을 길어 와야 하지만 시어머니는 이 어린 신부가 물동이를 깨트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못 미더워 물동이를 주지 않고 남박[1]을 주었다. 남박에 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쭐럭쭐럭 거리며 돌아가는 어린 신부가 힘겨워 고개도 못 세우는 것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지난 방에 30여 리 길을 자기가 걸어서 와서 아침에 물 길어 오는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은 모두 측은하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신부는 그 후에 부모를 잘 모시면서 현모양처로서 자식을 키우고 훌륭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간성군 현감 택당 이식 선생은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그곳의 이름을 '계경지'에서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으로 '가정자(佳亭子)'라는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5.2.노인산과 노총각
 이 산은 강한 바람과 심한 경사로 나무들이 살지 못하고 벌거숭이인데다가 돌바위가 영을 덮어 그 모양이 마치 늙은 노인의 머리처럼 보인다 해서 노인산(老人山)이라고 불러지고 있다. 이 산밑에는 옛날 절터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절터를 찾아 기도하며 소원성취되기를 빌어 왔다. 이 마을에 사는 5대 독자인 노총각이 마흔 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 백일동안 노인산과 절터를 찾아 기도 끝에 어여쁜 아내를 만났다. 이 부부에게 1년이 넘어도 아기가 없자 또 이곳을 찾아 기도를 올려 아기를 낳게 되었는데, 아기 팔 밑에 날개가 달린 장사를 낳았다. 이 모습을 본 온 마을 사람들이 이상히 여겼다. 그러자 부부는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날개를 인두로 지져 없애 버렀다. 그때 청명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서 심한 비바람과 함께 번개와 천둥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이에 놀란 부부는 아기가 잠자고 있는 방으로 급히 달려갔다. 어찌된 일인지 잠자던 아기는 오간데 없었다. 하느님이 하늘에 오를 날개를 없앤데 노하시어 날개 대신 용마를 보낸 것이다. 이 용마는 화진포에서 나와 아기를 업고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위치 :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리 마을 뒷산 해발 400m 되는 우뚝 솟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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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역의 명소

7.1.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분단 현실이 발아래 펼쳐져 있는 곳으로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되새기고자 1984년에 지어졌다. 이후 실향민과 관광객이 찾아와 이산의 상처를 달래고 통일을 기원하였다. 동해안 최북단 해발 70미터 고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금강산이 가깝게는 16km, 멀리는 25km 정도 거리로 해금강 대부분 지역이 한눈에 보이고, 해금강 주변의 섬과 만물상, 현종암, 사공암, 부처바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로 481


 

7.2.DMZ박물관

DMZ박물관은 남북한 평화와 안전을 바라는 전 국민의 염원을 담아 동해안 최북단인 군사분계선과 근접한 민통선 내에 건립하였다.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의 상징인 DMZ을 통하여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후 모습과, 휴전협정으로 탄생한 휴전선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 이로 인해 나타난 동족 간 이산의 아픔, 지속되는 군사적인 충돌, 60여년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태환경등을 전시물이나 영상물로 재구성하여 강원도 DMZ박물관에 담아 놓았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로 369

 

7.3.이승만대통령 화진포기념관

이승만대통령 화진포기념관 (이승만별장)이승만대통령의 업적 등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친필휘호, 의복과 소품, 관련도서 등이 현대적으로 전시되어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이승만별장길 33




 

7.4.명파해변

명파해변1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해 주변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조용한 해변에 희고 고운 백사장은 가족단위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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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대진초등학교, 대진(명파)초등학교
중학교 : 대진중학교
고등학교 : 대진고등학교

9.기타

Footnotes

  1. ^ 쌀을 씻고 일어 건지는데 쓰는 나무바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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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