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바다, 호수가 어울려 아름다운 우리 죽왕면은 천년의 신비 해양심층수와, 송지호, 왕곡마을 등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마을이다.
백도해변, 문암해변, 삼포해변, 봉수대해변, 송지호해변, 가진해변 등 해안선에 맞닿아 있어 여름날의 휴양과 짜릿한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여름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죽왕 #죽왕면
<출처: 고성군청>
#죽왕면 이름 #죽왕 지명 #지명의 유래
송지호는 고려 말까지 비옥한 땅이었다. 조선 초기, 이 땅에서 곡식을 많이 거둬들이던 부자가 살았는데, 그 부자의 이름은 정거재였다. 어느 화창한 봄날 눈이 안 보이는 아버지와 어린 딸이 정부잣집 문을 두드렸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불쌍한 거지이오니 한 푼 도와주십시오“라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대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연거푸 도움을 청하자 조용하던 정 부잣집 대문이 열리더니 종이 나와 ”여기가 뉘집인 줄 알고 동냥 구할 생각을 하시오? 어서 돌아가시오“라고 나무랐다. 부녀가 머뭇거리자 재차 호통을 치면서 ”가라면 빨리 가시오. 주인마님이 아시면 매가 춤을 추오.“라고 말했다. 이렇게 부녀와 종들이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웬 놈이냐? 단잠을 깨우는 놈이, 그놈을 당장 끌어들여라.“라는 정부자의 호령이 떨어졌다. 대청마루에 앉은 정 부자에게 부녀는 다시 도움을 요청했다. 한참 부녀를 노려보던 정부자는 ”저놈은 내 재산에 달걀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을 방해한 놈이다. 닭이 막 알을 낳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중인데 그 꿈을 꾸게 하다니 아이고, 원통해라. 저놈을 마구치고 오줌이나 잔뜩 먹여 보내라.“라고 소리쳤다. 결국 부녀는 동냥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종들에게 모진 매를 맞고 집 밖으로 쫓겨났다. 정 부잣집에서 쫓겨난 부녀가 길가에서 서럽게 울고 있자, 그곳을 지나던 노스님이 발길을 멈추고 부녀에게 사연을 물었다. 그러자 부녀는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노스님은 부녀에게 몇 푼의 엽전을 들려주고 정 부자의 집을 찾아 목탁을 치고 염불을 외우며 시주를 요청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대문 안에서 정 부자의 매서운 목소리가 들렸다. ”씨끄럽구나, 저 중놈에게 쇠똥이나 한짐 지워 보내라.“라는 정부자의 호령이 떨어졌다. 종들은 스님의 시주 걸망에 소똥을 잔뜩 담은 후 스님을 내쫓았다. 노스님은 정 부잣집을 나서는 순간 문간 옆에 놓여있던 쇠 절구를 정부자의 금방아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자 쇠 절구가 떨어진 곳에서 물기둥이 치솟기 시작했다. 노스님은 왼쪽 두루마기의 고름을 뜯어 옆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고 주문을 외워 홀연히 사라졌다. 노스님이 사라지자 물기둥은 일곱 줄로 늘어나 정부자의 집과 금방아, 그리고 논과 밭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놀란 종들은 노스님이 소나무에 걸어놓은 두루마기 고름에 매달렸다. 그러나 정부자는 그대로 물속으로 잠기고 말았다.
고성군 죽왕면 오봉 2리에서 서북쪽으로 3km쯤 오르면 흩어진 기와조각만이 나뒹구는 적곡사의 절터가 남아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적곡사는 고려초 한 고승이 이곳을 지나다 온천을 발견하여 절을 세웠다 한다. 이곳에 절을 세우자 인근 부락인 탑동(塔洞), 화정(花亭), 평촌(坪材), 적동(笛洞) 등에서 신도들이 찾아와 절이 점점 번창해 갈수록 절에서 승려들은 게을러지고 수도에 힘쓰기보다는 허영에 들떠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탁발승이 찾아와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탁발승에게 보여준 이절 승려들의 행실은 상상할 수 없으리 만치 나태하고 타락한 것이었다. 승복은 빨지를 않아 때와 이가 득실거렸고 절 주위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이 살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저분하였다. 또한 승려들이 곳곳을 다니며 못된 짓을 하여 신도 및 주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었다. 탁발승은 생각 끝에 이들에게 훈계로는 문란해진 생활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후 ”앞으로 3년 동안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부처님의 노여움을 크게 사리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절을 떠났다. 탁발승이 떠난 뒤부터 이 절에는 전에 없던 빈대가 득실 거리기 시작하여 승려들을 괴롭혀 앉아있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다. 견디다 못한 승려들은 잠자리를 마당이나 숲속으로 옮겼으나 빈대는 여전히 괴롭혔다. 참다못한 승려들은 마침내 회의를 열었다.”이러한 상태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으니 3년 동안 떠나 생활하기로 합시다. 그러면 빈대들도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게 될 것이니 그때 다시 모입시다."하고 한 노승이 제의했다. 그러자 다른 승려들고 모두 찬성하여 3년후 추석날, 다시 모이기로 한후 제각기 흩어졌다. 절을 띠나 이곳저곳을 떠도는 승려들의 생활이란 편할 리가 없었다. 살을 에는듯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이집 저집 처마 밑에서 새우잠을 자기도 하고 찬 이슬을 맞으며 숲속에서 자기도 하며 떠돌 다녔다. 그런데 중들은 속죄는커녕 자기들이 왜 고생을 하는지 반성하지도 않고 빈대를 피할 수 있었던 것만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들의 떠돌이 생활은 계속되었고 밥만 먹으면 아무 데서나 뒹굴며 3년의 세월이 빨리 가기를 기다렸다. 어느덧 떠돌이 3년이 지나자 중들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갖은 고생을 다하며 기다리던 중들이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여들었다. 걸식 생활을 면하게 되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들은 마당에 모여 그동안의 고생을 이야기하면서 빈대가 없어진 절 주변을 돌아보며 서로 기뻐하였다. 중들이 법당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부처님 앞에 난데없이 금기둥이 서 있었다. 중들은 자기들의 3년 동안 고생을 불쌍히 여겨 부처님이 하사하신 금기둥이라 믿고 기쁜 마음에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 순간 천둥과 함께 금기둥은 무너지고 기둥에 매달렸던 중들은 그 밑에 깔려 죽었다. 그 기둥은 금기둥이 아니고 빈대들이 3년 동안 부처님 앞에 응결되어 하나의 커다란 기둥을 이룬 빈대 기둥이었던 것이다. 후일 사람들은 이 절을 찾아왔던 탁발승을 게으르고 타락한 중들을 구제하러 왔던 부처님의 현신(現身)이라 말하고 있다. 그 후 적곡사(笛谷寺)는 폐허가 됐고 따뜻한 물이 솟아오르던 온천도 서서히 찬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산나물을 캐러 왔던 아낙네들이 타는 목을 이 샘터에서 축이며 쉬어갈 뿐 천년의 세월 속에 수풀만이 우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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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호수와 죽도가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한 고성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송지호는 둘레가 약 6km(20만평), 수심이 5m에 달하며 짠물이 섞여 겨울에도 잘 얼지 않는다. 물빛이 청명하고 수심이 일정해 도미와 전어 등 바닷고기와 잉어, 숭어 같은 민물고기가 함께 살고 있어 겨울 철새가 머물다 가는 철새도래지이다. 송지호 옆 송지호관망타워에서 청둥오리 기러기 떼와 천연기념물인 고니를 관찰할 수도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동해대로 6021
다섯 개의 봉우리가 둘러싸고 있어 오봉리라 불린다는 작은 마을의 옛 이름이 왕곡마을이다. 왕곡마을은 전통건조물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가옥의 개보수가 불가하여 전통가옥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전통가옥마을이다. 왕곡마을 가옥들의 굴뚝 위에는 항아리가 얹어져 있다. 이는 마을에 우물이 없는데 마을의 생긴 모양이 배의 모양이라 우물을 파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하며,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이기에 지금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한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36-13
한국해양연구원 후보지 8개소 중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 송지호 일대 국책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어 개발하고 있다.
어명기 전통가옥은 1500년대에 처음 지었으나 1750년에 불타 없어졌고, 3년 뒤에 다시 지어졌다고 하니 약 240년 된 옛집이다. 중요민속자료 제131호로 지정돼 있다. 강원도 일대의 상류 주택은 주로 강릉 지방에 많은데, 대개 홑집 구조에 ㅁ자형을 이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명기 전통가옥은 상류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겹집 구조를 갖추고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삼포 1리
죽왕면 문암1리에 있는 고성 문암리 유적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진 양양 오산리 유적(B.C.6000~3000)과 연대가 비슷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암리 유적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농사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 밭이 확인되어 중요성을 가진다. 이 밭은 동아시아의 농경 유적 중 최초의 것으로 평가받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다. 문암리 유적에서는 신석기 시대의 주거지와 덧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등 전기 신석기 시대의 토기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1번지 외
국도7호선 상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깨끗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는 조용한 해변으로 가족단위 피서객이 즐겨찾는 곳이다. 1989년 7월 개장되어 매년 해변과 백사장이 사계절 개방되며, 주변에 공현진항과 방파제가 있어 싱싱한 활어회와 낚시를 즐길 수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공현진2리
백도해변은 수심이 낮고 국도변에 접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해수욕장 서편에는 송림이 우거져 가족단위의 해수욕장으로 매년 해수욕장과 백사장이 사계절 운영된다. 해변 개장 기간 중 오토캠핑장을 운영하여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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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 죽왕초등학교, 공현진초등학교, 오호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