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면

                                                                                                                                                                                                                                                           

1.개요

토성면은 기암괴석과 깍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위의 천학정과 청간정, 설악산 끝자락의 속초와 고성의 경계지역에 위치해 자연의 예술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기암절벽의 극치인 울산바위 등 천혜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각종 리조트, 콘도, 온천, 아쿠아월드 등 전국 최고의 관광 휴양시설을 갖춘 관광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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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7,341총 인구수
3,886인구(남)
3,455인구(여)

4.지명의 유래

  • 천진리 :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당초에는 마을의 여삼평(汝三坪) 들판에서 거주했는데 바람이 세고 반농 반어를 목적으로 점차 해변으로 옮겨 현위치에 집단부락을 형성하게 되었다. 당초에는 건진리(乾津里)로 불렀으나 잦은 천재지변(天災之變)으로 곤경에 처하자 '건(乾)'자는 마른다는 의미에서 좋지 않으므로 조선 말엽경 천진(天津)으로 개칭하게 되었으며 재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방풍림을(천진솔밭) 조성하였다고 한다. 1970년 7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주도로를 기준으로 하여 동쪽은 천진1리, 서쪽은 천진2리로 나누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청간리 :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 부터 '군선리'라고 불리어 왔다고 하며 옛 주민들은 현 청간리(淸澗里) 상수도 서쪽 안터평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현재 청간리 청간정(淸澗亭)이 있는 산 및 해변에는 옛날 궁창(창고) 및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하며 군부대가 주둔지를 옮긴 후 주민은 안터에서 해변가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는데 현 마을명은 그이후 청간정 건립과 함께 청간리(淸澗里)라 불리어 왔다고 한다.

  • 아야진리 : 옛 조상들의 구전에 의하면 마을 속칭명을 구암리(龜岩里)로 불러왔는데 아야진 등대한 위치한 바위가 거북처럼 생겼다고 하여 거북 '구(龜)'자와 바위'암(岩)'자를 써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그후에는 애기미로 애칭되고 있다. 마을의 평안과 자손들의 번창함을 빌기 위하여 남쪽마을의 여자의 신을 모신 작은 서낭(암서낭), 북쪽 마을에 있는 남자의 신을 모신 큰 서낭(숫서낭)에서 매년 산신제를 지내는 풍습이 전래되어 오면서 현재의 아야진 5,6리 지역인 여자의 신을 모신 마을을 작은 애기미라 칭하고 남자의 신을 모신 1,2,3,4리 마을을 큰 애기미라 애칭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아야진으로 부르게 된 동기는 현재의 아야진6리 교회로 접하는 아야진에서 교암리로 넘어가는 산(山)형태가 잇기'야(也)'자처럼 생겼다고 하여 우리라는 뜻을 포함, 아야진(我也津)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1955년 7월 1일분할되어 아야진을 1,2,3리로 구분 하였으며, 다시 행정구역 조정으로 1972년 7월 1일 부로 1,2,3,4,5,6리로 분할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금화정리 : 마을안 정자가 있었고, 정자주변에 꽃이 피어있었다고 하여 금화정(錦花亭)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1972년 7월 1일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야진 7리에 속해 있다가 1997년 6월 5일자로 고성군의 리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제16015호)에 따라 본래 금화정리로 개칭되었다.

  • 교암리 : 옛날에는 천학정산(성황산) 기슭으로 도로가 놓여 있었으며 산길 중 간에는 돌다리가 놓여 있어 통행함에 따라 속칭 다리바위로 불렀는데 1972년 7월 1일 교암리(橋岩里)가 교암1,2리로 분할 되었다.

  • 백촌리 : 고려말 김씨 조상이 처음 들어와 마을을 형성 할 당시 마을어귀까지 바닷물이 차서 해안과 연접된채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양이라 하여 해상리(海上里)라 불리워 오다 조선조 초기때 잣나무가 많이 있다하여 백촌리(栢村里)로 개칭, 현재까지 불러오고 있으며, 마을 앞산 골짜기에 잣나무 숲이 남아 있다하여 아직도 잣골이라는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 운봉리 : 마을의 속칭명은 토성리로 운봉 토성을 현재 청재등이라 하나 이곳이 바로 토성이라고 하며 그 앞을 쪽지고개라 부르고 있으나 옛이름은 죽지고개라 했다고 한다. 고개의 이름중 운봉을 상토성(上土城)이라 부르고 죽왕면 야촌을 아래 토성이라 했으며, 마을 곳곳의 명칭으로 뒷말은 토성의 뒤에 있는 곳이라고 하여 뒷말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남운경이란 논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시초) 그 연혁이 약500년이 되고 최초에는 權씨, 둘째는 李씨가 거주했었다. 그 후에는 현재 李씨만이 14가구가 살고 있다. 그리고 동두박에는 동그란 우물이 있었다고 하며 현재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학야리 : 옛날에는 햇골과 뒷골이 한마을로 합하여 불러오던중 1940년대 일제시대때 학야로 명명되면서 학야1리는 뒷골과 옹기점말이 한부락으로, 학야2리는 햇골이 한부락으로 독립되었으며 뒷골의 명칭은 햇골 뒤에 있다고 하여 뒷골이라하였으며 옹기점말은 100여년전부터 鄭씨 집안이 이주 정착하면서 옹기를 만들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옹기점말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옹기'자를 빼고 점말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행정구역상 1반은 뒷골이며, 2반은 옹기점말이라고 한다.

  • 도원리 : 마을의 속칭명은 향도원이라 하는데 전해 내려오는 유래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없으며, 1968년 8월 도원저수지 신축공사때 현재 저수지내에 살던 주민 일부가 도원1리로, 일부는 도원3리로 각각 이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성대리 : 구전에 의하면 약 360여년전 嚴씨 성를 가진 이가 살면서 마을이 동쪽을 향해 위치하고 마을 모양이 다락처럼 생겼다고 하여 동루동 또는 동노동리(東老洞里)라 불렀는데, 지금의 속칭명이 되었다.

  • 용암리 : 옛날에 동쪽 산에 청용이 살아 청용바위, 남쪽 산에 범이 살아 범바위,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신선바위 등 여러바위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넓은 터가 있어 李씨와 金씨가 터를 닦고 집을 지어 살면서 마을명을 용암(龍岩)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서쪽에는 넓은 들과 골이 있었는데 가뭄이 들어도 샘이 계속 흐른다고 하여 속칭 장샘이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신평리 : 옛날에 성대리가 처음 마을로 형성된 후에 성대리의 남쪽으로 성남이라 부르던 곳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말이라 명명한 것이 속칭명이 되었는데 신말(新末)은 쌀밥먹고 장작만 땐다는 마을로 그만큼 풍부하였다는 유래도 있으며 성남이란 제일 먼저 생긴 곳으로 둘레를 성으로 쌓은 남쪽에 있다 하여 부르게 된 것이다. 1991년도 신평벌판에서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가 개최됨에 따라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 인흥리 : 속칭 장흥리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약70년전 일제시대때 인흥1리에서 성천리에 이르는 지금의 성황당 산맥으로 이어지는 언덕이 노루목처럼 생겼다고 하여 장항리(獐項里)라고도 불렀는데 그로 인해 위 언덕맥을 잘라 인재가 태어나지 않는다는 전설도 있다.

  • 성천리 : 이 마을은 옛부터 시냇가 건너에 산세가 수려하고 지리적으로 잘 생긴 수자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에 장수와 용마가 났다고 전하며 장수는 비통하게도 세상에 태어나면서 죽고 장수를 잃은 용마는 마을 뒷산으로 넘어갔는데 용마능선 바위 위에 그자취가 남아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 마을이 수자벌에서 현재 마을으로 이전한 유래는 수자별 동쪽 산봉우리와 수자벌이 서로 상충하여 대화재가 발생하여 현재 마을로 옮겨졌다 하여 마을이름을 속칭 수자벌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성천(星川)이란 시냇가에 작은 돌이 많이 있어 하늘의 별과 같다하여 '성(星)'자를 써서 성천(星川)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지금의 마을로 옮긴 후에는 화재도 없으며 마을에 탁씨가 대대 손손 살아오고 있다.

  • 원암리 : 과거 미시령 고개를 넘으려면 마을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속칭 역동네라 불리웠으며 마을 가운데 서낭봉이 있어 영을 넘을 때는 서낭봉에서 제를 올리고 넘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양양군 토성면 원암리 였던 것이 1963년1월1일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 속하게 되었다.

  • 용촌리 : 옛적에는 사야지리(沙也只里)라 불렀다. 농촌마을임에도 대지 부분이 모래가 많아 속칭 사촌리(沙村里 촌모래기)라고 부르고 있으며 뒷산 용바위가 등천하였다고 하여 용촌리(龍村里)라 명명한 것이 지금의 명칭이다. 원래는 용포리(龍浦里)와 사촌동(砂村洞) 두마을을 1915년 행정구역 병합으로 용포(龍浦)의 '용(龍)'자와 사촌(砂村)의 '촌(村)'자를 합쳐 용촌리(龍村里)라 부르게 되었는데 과거의 용포리(龍浦里)는 용촌2리이며 사촌리는 용촌1리가 되었다. 최근 편리해진 교통소통에 따라 인근 속초시에 생활권이 전이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봉포리 : 한일합병 이전에 해변가는 광포(廣浦), 산너머는 봉현(鳳峴)이라 칭하여 오다 한일합병 이후 1914년에 2개리를 합함에 따라 그 당시 이장 박매경씨가 봉현(鳳峴)의 '봉(鳳)'자와 광포(廣浦)의 '포(浦)'자를 따서 봉포리(鳳浦里)로 했다.

<출처: 고성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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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지역의 옛이야기

5.1.화암사와 수바위


화암사는 금강산 최남단의 절로서 지금으로부터 약 1216년 전(서기 769년) 신라 36대 혜공왕 5년에 진표율사가 설악산 북쪽 기슭에 창건하고 화엄사(華嚴寺)라 이름하였다. 화암사 기록에 따르면 이 절은 다섯 차례나 화재를 입었다고 전한다. 이절 남쪽에 있는 秀 바위와 북쪽에 코끼리 모양의 바위가 있는데 바위의 맥이 서로 상충하는 자리에 절터가 있어 수바위가 뿜어내는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여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다고 전한다. 화암사 남쪽에는 수바위라는 왕관 모양의 우람한 바위가 있다. 이 바위의 전설을 보면 다음과 같다.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은 항상 시주를 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절 두 스님이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곳을 찾아 끼니때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말하였다. 잠에서 깬 스님들은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꿈을 생각하며 노인이 시킨 대로 했더니 두 사람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두 스님은 식량 걱정 없이 편안히 불도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객승(客僧) 한 사람이 찾아와 이 절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고도 수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객승은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분의 쌀이 나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 흔들었다. 그러나 쌀이 나와야 할 구멍에서는 엉뚱하게도 피가 나오는 것이었다. 객승의 욕심에 산신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그 후부터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한다.

5.2.운봉산의 바위

  운봉산에는 우리나라 백성들 모두가 사흘간 먹을 양식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양식이 들어 있는데도 그 산은 지금까지도 임자를 못 만났기에 그대로 묵어 있다고 한다. 아주 옛날 운봉산도 금강산이 되려고 자꾸 봉우리를 만들고 있었다. 돌을 소복이 알뜰살뜰 모으고 있는데 먼저 고성에서 금강산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만 너무 억울해 울었다. 이 산이 으르렁거리며 내리구르고 하면서 너무 울어서 운봉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운봉산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울창한 숲만 보이지만 그곳에 올라가 산을 한 바퀴 돌면 꼬박 한나절이 걸리는데 이곳이 명산이기에 구경거리가 여기저기 많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오호초등학교, 천진초등학교 등 이 부근의 학생들이 숱하게 소풍을 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이산에 올라가서 조용히 놀지 않고 소리도 지르고 노래도 부르며 시끄럽게 떠들고 난잡하게 놀면 이 산에 바람이 몹시 분다. 이것은 이 산이 명산이라 사람이 올라가 조용히 풍광을 감상하고 내려와야 하지만 빼어난 풍경에 도취된 학생들이 "여기 거북바위다!" 또는 마당바위를 보면 "야, 여기 마당바위가 있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때마다 바람이 몹시 불곤 했다. 마당바위는 마당처럼 넓적하게 산에 척 걸쳐 있고, 기둥바위는 네모진 것이 마치 기둥과 같다. 또 거북바위는 바위가 우툴두툴한 것이 꼭 거북이 등처럼 생겼다. 병풍바위는 밑에 의자처럼 바위가 나란히 있는 것이 병풍처럼 생겼다. 빨래망치 바위는 조그마한 바위에 작은 손잡이가 있어 꼭 빨래를 두드리는 것같이 생겼다. 그래서 바람이 불면 동네 할머니들이 "저 아무 학교 애들이 산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해서 바람이 분다"라고 했다. 이산에 오르기 전에 꼭 서낭이 있는 바위 밑에서 정성을 들이곤 한다. 깨끗한 물이 졸졸졸 흐르는데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소나무가 빽빽한 곳이 나오고 그 소나무 사이로 들어가면 동그란 우물이 있다. 샘이 아주 동그란데 뾰족한 산꼭대기에 맑은 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곳에 아들 없는 집에서는 아들을 얻게 해달고 정성을 들이고, 가족이 멀리 나가서 안 돌 오면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정성을 들이면 소원을 다 들어 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옛날 아주 부지런한 장사가 살고 있었다. 이 장사는 지금의 금강산을 만든 장사와 집짓기 시합을 했다. 이 부지런한 장사의 집이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을 무렵 금강산 장사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자 헛소문을 냈다. “나는 벌써 집을 완성했노라.” 그러자 이 부지런하고 순진한 장사는 시합에 자신이 패한 것으로 잘못 알고 분함을 참지 못해 3일 동안 통곡을 함 주먹으로 자신이 쌓았던 돌성을 내리쳤다. 부서진 돌이 사방으로 굴러내려와 운봉산 기둥바위가 8각형의 모양으로 즐비하게 늘어져 있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 형상을 가히 장관이다. 그리고 병풍바위와 거북바위 등 기묘한 바위가 있고 장사가 돌성 높이를 구름 위까지 올려 쌓았다고 하여 구름 ‘운’(雲)자와 봉우리 ‘봉(峰)’자를 따서 운봉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산은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 하는 어부들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라고 하며, 옛날 이 산 정상엔 호수가 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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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지역의 명소

7.1.청간정

청간정청간정은 기암절벽위에 팔작지붕의 중층누정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청간정은 1560년 최초의 중수기록이 있으며 1953년 고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쓴 현판이 정자 내에 걸려 있다. 아름다운 주위 풍광으로 예부터 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며 노송 숲 사이로 뚫린 오솔길을 지나, 탁 트인 동해를 굽어보는 정취가 그윽하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동해대로 5110


 

7.2.울산바위

울산바위_크기변환_울산바위울산바위는 수많은 전설과 함께 자연의 위용과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미시령 터널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울산바위를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울산바위를 바라보면 높이 솟은 절벽과 그 아래를 둘러싼 푸른빛이 참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미시령로 2653 울산바위촬영휴게소 인근



 

7.3.화암사

화암사신라 혜공왕(서기 769년)때 창건된 사찰로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화암사는 남쪽에서 보면 금강산이 시작되는 신선봉 바로 아래에 세워져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화암사길 100




 

7.4.천학정

해안 절벽 위에 건립되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며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 바라보고 북으로는 능파대가 가까이 있어 한층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상하천광 거울 속에 정자가 있다하여 천학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넘실거리는 푸른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일시에 사라지고 드넓은 동해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이 고장사람들의 편안한 쉼터이기도 하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학정길 10


 

7.5. 아야진 해변

아야진해변은 주변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크고 작은 바위와 맑은 바다, 깨끗한 백사장이 어울려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합한 곳이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리





 

7.6. 봉포해변

봉포항과 연접하고 천진해변과 연접한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작은 바위들이 산재해 있고, 백사장이 있어 낚시와 해수욕을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매년 해변과 백사장이 사계절 운영되며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이다.

소재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봉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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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천진초등학교, 아야진초등학교, 동광초등학교, 도학초등학교, 인흥초등학교
중학교 : 동광중학교
고등학교 : 동광산업과학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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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