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대왕태실 및 태실비

                                                                                                                                                                                                                                                           

1.개요

태실은 왕이나 왕실 자손의 태를 모셔두는 작은 돌방으로, 이것은 조선 22대 왕인 정조의 태를 모셨던 곳이며, 그 앞에는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는 비가 놓여 있다.

►문화재유형 : 유형문화재
►지정종목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지정일 : 1995년 9월 18일
►소재지 : 강원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 산133번지
►시대 : 조선후기
 

2.세부설명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의 맏아들이다. 정조 대에는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아 당론의 조화를 이루었고, 규장각을 통한 문화사업을 활발히 하였으며, 실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태실은 현재 2기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받침돌 위에 둥근 몸돌을 올리고 8각형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며 그 주위에 난간을 둘렀다. 다른 하나는 원통형 돌함(石函) 위에 반원형의 뚜껑돌을 얹은 모습이다.

태실비는 거북받침 위에 한돌로 된 비몸과 머릿돌을 세웠다. 거북받침의 등에는 5각형 무늬를 조각하였고 머릿돌에는 두 마리 용을 양옆에 새기고 그 사이에 구름무늬를 채웠다. 비몸은 앞면에 비의 명칭을, 뒷면에는 만든 날짜를 새겼다.

4.참고자료

 정조가 태어난 다음해인 영조 29년(1753)에 태실을 만들고, 순조 즉위년(1800)에 비를 세웠다. 1929년 조선 총독부에서 전국에 있는 태실을 창경원으로 옮길 때 이 태실의 태항아리도 꺼내 갔다. 태실과 비는 광산개발로 흩어졌던 것을, 1967년 KBS영월방송국 안으로 옮겼다가 지금의 자리로 다시 세워놓았다.

5.기타

태를 모시는 장태문화(藏胎文化)의 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역대 왕들의 태를 모신 태실을 모두 만들었다. 태실의 조성은 국가적인 큰 사안이었으며, 관련 논의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왕이 된 자와 왕이 될 자의 태실을 조성하는 것은 앞으로의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일종의 의례이자 믿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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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