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계몽운동가이자 언론인, 한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언론인
►별칭 : 호 우성(又醒) ►성별 : 남 ►시대 : 근대 ►출생~사망 : 1881년 8월 26일~ 1928년 10월 16일 ►출생지 : 철원 ►본관 : ►주요업적 : 한인소년병학교 설립, 무장투쟁운동 |
1904년 보안회의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했다가 투옥, 이승만(李承晩)을 옥중에서 만나 의기투합, 옥중 동지가 되었다. 한성감옥에서는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투옥된 이승만과 정순만이 함께 있어 이들이 의형제를 맺어 '3만'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그 뒤 세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독립운동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는데, 박용만은 1909년에 네브래스카의 커니농장(Kearney農場)에서 무장독립군 양성을 목적으로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하고, 이후 대조선 국민군단을 설립해 지도하는 등 무장 투쟁 운동을 벌였다.
이승만, 안창호, 서재필과 함께 재미국 한인 교민 사회의 초기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었으며, 이승만의 사상적 동지였으며, 이승만을 하와이에 정착시켰다. 그러나 1914년 독립운동 방법의 차이로 이승만과 갈등을 겪다 정적으로 변신한다. 1928년 의열단원 이구연, 박인식, 이규서 등의 요구를 거절했다가 암살당한다.
미국 내 유일한 무장독립운동 단체를 설립하려 노력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