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충신으로 왜적과 홍건적을 물리치는 데 앞장선 무신.
►별칭 : 고려의 만고불변의 충신 ►성별 : 남 ►시호 : 무민공(武愍公) ►출생~사망 : 1316년 ~ 1388년 ►본관 : 동주(東州), 철원 최씨 ►주요업적 : 변방 수비와 쌍성총관부 공격(1355), 홍건적과 왜구 격퇴(1358~1365), 목호의 난 진압과 왜구와의 교전(1376) |
“너는 마땅히 황금보기를 돌 같이 하라.”라는 유훈(遺訓)을 받은 후 최영은 이를 그대로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였다.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늠름했으며 용력이 출중하여 문신 가문에 태어났으면서도 병서를 읽고 무술을 익히어 무장의 길을 걸었다.
최영의 가문은 동주(철원) 최 씨로 왕건의 고려 개창을 도운 개국공신 집안으로 권문세가였다. 그러한 가문에서 자란 최영 역시 안에서는 고려 왕실에 충성하고 밖으로는 왜적과 홍건적 등을 물리치는 데 앞장서며 나라를 지키는 장수였다. 백성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바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시기입니다. 이성계의 정변 이후 우왕은 강화도로 추방되고 그의 9살 된 아들이 창왕으로 왕위에 오른다. 최영 장군은 고봉현(오늘날 고양시)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합포로, 그리고 개경으로 압송하여 참형되었다.
최영이 참형당하고 4년 후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올랐다.
다시 4년 후 최영 장군에게 ‘무민’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후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려 왕들과 충신들의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