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하

                                                                                                                                                                                                                                                           

1.개요

인물/의병·독립운동가

►별칭 : 이봉하(李鳳河)
►성별 : 남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출생~사망 : 1887~1963
►출생지 : 강원도 철원군
►주요업적 :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 창단과 활동 주도

2.생애

이봉하는 1887년 7월 18일 지금의 철원군 철원읍 율이리에서 태어났다. 교육운동에 뜻을 두고 봉명학교(鳳鳴學校)를 설립하여 민족정신을 선양하고 항일 사상을 고취하다가 일제의 명령으로 폐교하였고, 1919년 3월 철원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8월 11일 이봉하는 철원군 도피안사(到彼岸寺)에서 김재근(金載根)·박연서(朴淵瑞)·강대려(姜大呂)·이용우(李用雨)·박건병(朴健秉)·김완호(金完鎬)·오세덕(吳世德)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 철원군단을 결성하고 단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5월 서울에서 신현구(申鉉九) 등의 주도로 결성된 뒤 강원도·충청도·전라도 등지에 도단(道團)을 설치하였으며, 국내의 조직망을 바탕으로 상해임시정부의 선전 활동과 군자금 조달을 비롯한 임시정부의 연통부(聯通府)와 같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江原道團)은 철원군단이 발전하여 승격하였으며 철원애국단(鐵原愛國團)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전국의 도단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이 활발하였고 규모도 컸다. 1919년 9월 중순 당시 대한독립애국단의 강원도단 단장을 맡고 있던 이봉하는 상해임시정부로부터 파견된 신상완(申尙玩)을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축하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전달받고 이를 추진하였다. 이후 1919년 10월 10일에 박건병·오세덕 등의 단원들이 철원에서 임시정부 축하 연설을 가진 데 이어 태극기 게양과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봉하는 1920년 1월 대한독립애국단 강원도단 조직이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검거되었고,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창씨개명 반대, 납세 거부 등의 항일 투쟁을 벌이다가 광복을 맞았다. 1963년 2월 24일 사망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3.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봉하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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