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 묘와 그의 부인 묘이다.
▶문화재유형 : 유형문화재 ▶지정종목 : 사적 ▶지정일 : ▶소재지 : 준경묘 -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 영경묘 – 삼척시 미로면 영경로 270 ▶시대 : 고려~조선 |
준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穆祖)의 부친 이양무(李陽茂)의 묘이다. 원래 이양무와 그의 아들 목조 이안사(李安社)는 완산(完山 : 현 전주)을 지지 기반으로 하던 세력으로 호족(중앙의 귀족과 대비되는 세력으로 지방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세력)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었으나, 이안사는 당시 완산주의 지주사와 갈등을 빚으면서 170여 호를 거느리고 삼척 활기리로 이주하였다.
고종 때(1899년, 고종 36, 광무 3)에 준경묘를 비롯한 주변의 헐고 망가진 부분을 수리할 것을 공식적으로 지시하고 정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묘는 영경묘와 같이 묘소를 정비하면서 제각(무덤 근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과 비각(글을 새긴 비석) 등을 건축하였다. 전주이씨의 실묘(實墓)로는 남한에서 최고의 시조묘(始祖墓)로 매년 4월 20일에 전주이씨 문중 주관으로 제례를 올리고 있다.
묘 앞 제각의 평면은 일자형(一字形)으로 조선 시대 왕릉의 제각인 정자형(丁字形)의 정자각(丁字閣)과는 그 형태가 다르다. 그리고 제각 우측에 비각이 있는데, 이 비각 안에는 “대한준경묘(大韓濬慶墓)”라 적힌 비가 비각 안에 있었으며, 이 비는 자헌대부(資憲大夫) 이근명(李根命)이 비문을 썼다.
준경 묘역의 공간을 분석해보면, 혈(穴)이 있는 봉분 지역은 혼백(魂魄)이 제례 시 상승하고 하강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성역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공간은 지형적 특성상 수직적으로 높은 곳에 있어 상(上)의 성(聖)에 속한다.
봉분의 기단을 아래로 하여 제각에서부터 홍살문(묘, 궁전, 관아 앞에 세우는 붉은색으로 칠한 나무문)까지의 공간은 참배(參拜)의 중심공간이며,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공간으로 중(中)의 반속(半俗) 공간에 속한다. 이 공간은 공간의 중심시설인 참도(參道)를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우측으로 비각과 수복방(守僕房)이, 좌측에 수라방(水喇房)이 배치되었다.
비각은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를 보호하는 건물로 1칸 규모이다. 이 건물은 제향 공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홍살문에서 들어가면서 바라보았을 때 우측에 배치되어 있다. 수복방과 수라방은 각각 3칸 규모였는데, 현재는 이들 두 건물은 없어지고 초석만이 남아 있어 규모와 터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영경묘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비(祖妃)이며, 이양무의 부인이고, 목조 이안사의 어머니가 되는 평창이씨의 묘소이다.
이씨 부인은 부군인 이양무와 함께 전주에 거주하였으나, 이곳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다가 별세하였다. 아들인 목조가 다시 함경도로 이거 하였으므로 일백 년 이상 묘를 찾지 못했다. 고종 36(1899, 광무3)년 준경묘와 함께 묘소를 정비하여 제각과 비각 등을 건축하고 영경묘로 추존하였다. 이 묘는 준경묘와 함께 전주이씨의 실묘(實墓)로는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시조모(始祖母) 묘이며, 매년 4월 20일에 준경묘와 함께 전주이씨 문중에서 제례를 지낸다. 비각 안에는
“대한영경묘(大韓永慶墓)”라 적힌 비가 안에 있으며, 이 비는 정헌대부(正憲大夫) 민병석(閔丙奭)이 비문을 썼다. 영경묘의 홍살문과 제각, 비각은 묘의 내청룡(묏자리 왼쪽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 가운데 가장 안쪽에 있는 줄기) 부분에 해당하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고, 이 내청룡의 능선을 타고 돌아가면 묘의 봉분이 3단의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영경묘의 제각은 준경묘와 마찬가지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크기로 정자형(丁字形)이 아닌 일자형(一字形)을 하고 있고, 제각과 비각, 수복방(왕릉을 관리하거나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이 지내던 곳)과 수라방은 내청룡에 해당하는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그 이유는 묘의 봉분이 내청룡과 내백호의 계곡 사이의 둔덕에 자리 잡고 있어 묘의 기단 아래에 제각을 세울 만한 터가 없기 때문이다.
제각에서 바라다보면 성스러운 묘의 봉분이 제각으로부터 휘돌아있고 또한 울창한 송림으로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즉 준경묘와 달리 영경묘는 자연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묘의 봉분과 제각과의 시선 차단 효과를 만들고 있다. 이것은 여성 묘인 영경묘의 봉분에 대한 공간의 신비감과 엄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이것은 묘의 봉분이 있는 성역 공간과 제각을 비롯한 비각 등의 건물이 있는 제향 공간의 축을 달리하여 배치함으로써 진입 시 홍살문에서 바라다보면, 제각과 비각은 한눈에 들어오지만, 묘의 봉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배치함으로써 제향 공간과 성역 공간을 구분한다.
홍살문에서 제각까지는 중(中)의 반속(半俗)에 속하는 참배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공간은 홍살문부터 제각까지의 공간으로 참배의 중심공간이며,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 공간인 반속(半俗)에 속하는 공간으로 신과 참배객과 만남의 공간이자 참배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는 공간의 중심인 참도를 중심으로 비각과 수복방, 수라방 등의 구성요소들이 좌우에 배치된다. 들어가면서 우측에 비각과 수복방이, 좌측에 수라방이 배치되었다. 이곳에 설치된 수복방과 수라방은 준경묘에 설치되어 있던 같은 용도의 건물보다 작은 2칸 규모이다. 현재는 이들 두 건물은 없어지고 초석이 남아 있어 그 터의 위치와 규모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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