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소공대비

                                                                                                                                                                                                                                                           

1.개요

삼척시 원덕읍 노곡리 산67에 황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문화재유형 : 유형문화재
▶지정종목 : 강원도 지방민속자료
▶지정일 : 
▶소재지 : 원덕읍 곡리 산67
▶시대 : 조선

2.세부설명

 1423년(세종 5) 관동 지방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관찰사로 임명된 황희의 구호책에 힘입어 서민들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이에 백성들은 황희의 치적을 기리기 위하여 황희가 쉰 와현에다 황희를 소공에 비유한 소공대를 쌓았다. 이후 1516년(중종 11) 황희의 4대손 황맹헌이 강원도관찰사로 부임하여 소공대를 둘러보고 소공대가 와해(기와가 깨지고 망가져있는 상태)되어 있자 그 자리에 비석 형태로 세운 것이 소공대비이다. 그리고 1578년(선조 11) 황희의 6대손 황정식이 삼척부사로 부임하여 비바람으로 마모된 비를 다시 세웠다. 당시 비문은 영의정 남곤이 지었다.
 소공대비가 세워져 있는 비각은 1988년에 중건된 것이다. 그러나 1990년 태풍으로 비각이 무너지고, 비석의 상단 부분이 완전히 부러졌다. 이듬해인 1991년 문화재 연구소가 부러진 비체(碑體)를 접착시킴으로써 비석을 원상 복구하였다. 그리고 당시 삼척군의 지원으로 비각을 다시 세운 후 1994년에 장헌경이 글을 짓고 일죽(一竹) 홍태의가 서각한 소공대비각중건기를 걸었다. 현재 비석은 정면 한 칸, 측면 한 칸의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삼척 소공대비는 뚜껑돌[개석(蓋石)] 없이 비신과 비좌만으로 되어있다. 비의 윗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원수(圓首)와 사각형[방형(方形)]의 비신 받침인 방부(方趺)를 갖추고 있다.
 현재 삼척지역에 있는 다른 공덕비와 달리 원래 대(臺) 형태로 쌓은 것을 강원도에 부임한 황희의 후손들이 관련 내용을 자연석에 새겨 비석 형태로 세웠다는 점에서 다른 선정비를 세운 사례와 구분된다. 그리고 원덕읍 산양리에는 원덕 지역 유림이 주도하여 황희를 기리는 산양서원을 세웠다. 이는 원덕 지역 사람들이 황희의 선정에 대한 감사함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상기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3.관련사진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 등 참고할 사진이 있다면, 여기에 삽입합니다.]

4.참고자료

[참고자료는 순서없는 목록형태로 링크를 추가하여 제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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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기타

[지도 등 기타자료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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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