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사 이승휴

                                                                                                                                                                                                                                                           

1.개요

고려후기, 삼척지역에 은거한 문신.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천은사는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편찬한 곳이다. 

▶별칭 : 자 휴휴(休休), 호 동안거사(動安居士)
▶성별 : 남
▶시대 : 고려
▶출생~사망 : 1224년(고종 11) ~ 1300년(충렬왕 26)
▶본관 : 경산부(京山府) 가리현(加利縣: 지금의 경북 성주)
▶주요업적 : 역사서 ‘제왕운기’저술(왼쪽 사진이 제왕운기이다.)

2.생애

  이승휴의 자(字)는 휴휴(休休)이고, 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 또는 두타산거사(頭陀山居士)이다. 경산(京山) 가리현(加利縣) 출신으로, 가리 이씨 시조이다. 그러나 이승휴의 행적은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경산 가리현은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그곳에서는 이승휴의 연고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승휴는 일생의 대부분을 외가인 삼척의 두타산 귀동(龜洞)에서 보냈다. 고려시대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친가와 외가 간 차별이 없었다. 이에 따라서 이승휴는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삼척을 고향으로 하는 삼척 사람이다.

  이승휴는 고려의 격동기를 살았다. 이승휴가 살던 시기는 몽고의 침입, 무신정권의 붕괴, 원나라의 간섭 등 고려가 급변하던 때였다. 이승휴는 최씨 무신정권 시기인 1224년(고종 11)에 태어나 원나라의 내정 간섭 압제에서 시달리던 1300년(충렬왕 26)에 삶을 마쳤다. 8세가 되던 해에 시작된 몽고의 고려 침입은 20년 동안 계속되면서 전쟁의 고달픔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최씨 정권이 붕괴되고 무신정권이 몰락하는 정변의 회오리 속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고려가 몽고에 굴복하자 일어선 삼별초의 난에 휘말리기도 하고, 이어지는 원나라의 내정 간섭 시기에 정계에서 활약하다가 좌절의 쓴맛을 보기도 하였다. 이승휴는 격심한 정치 변화와 이민족의 침략 및 외세의 내정 간섭이라는 민족의 시련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다간 인물이었다.

  이승휴는 강화도에서 공부하였다. 이승휴는 9세에 독서를 시작하여 12세에 희종의 셋째 아들 원정국사(圓靜國師)의 거처인 방장(方丈)에 들어가 당시 이름난 선비 신서(申諝)에게 『좌전(左傳)』, 『주역(周易)』 등을 익혔다. 14세가 되는 해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친정인 삼척으로 돌아갔으며, 이승휴는 홀로 남아 먼 친척인 종조모에게 의탁하였다. 그는 최충(崔沖)[984-1068]의 사학(私學) 9재(九齋) 가운데 하나인 낙성재(樂聖齋) 도회소(都會所)에서 수업하면서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그 가운데 당대의 으뜸으로 꼽히던 문인 학자 최자(崔滋)[1188-1260]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최자가 고시관이 되어 주관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의 꿈을 펼칠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승휴의 나이 29세 되던 1252년(고종 39) 봄의 일이었다.

  혈기 왕성한 20대의 젊은 시절을 강화도에 묻혀서 보내야만 했던 이승휴는 급제의 기쁨을 안고 이듬해 홀어머니가 있는 삼척으로 금의환향하였다. 그러나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하여 왕이 피신한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이 막히자 이승휴는 삼척의 요전산성(寥田山城)에서 몽고군을 맞아 항전하였다. 그 후 다시 강화도로 들어가려 하였지만 이승휴를 이끌고 돌봐 준 최자와 종조모인 북원군부인(北原郡夫人) 원씨(元氏)가 모두 세상을 떠남으로써 더 이상 의탁할 곳이 없게 되어 결국 두타산 기슭 귀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 봉양에 전념하였다.

  이승휴는 나이 41세가 되어서야 벼슬살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승휴는 1263년(원종 4) 나이 40세에 이르러 강원도 안집사로 온 병부시랑 이심(李深)의 주선에 따라 강화도로 돌아가서 관직을 구한다는 시문인 구관시(求官詩)를 지어 올렸다. 이를 본 이장용(李藏用)[1201~1272]과 유경(柳璥)[1211~1289]의 추천으로 이듬해에 지금의 강릉인 경흥부(慶興府)의 서기(書記)에 임명됨으로써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승휴는 지방관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앙의 도병마록사(都兵馬錄事)가 되었다.

  이승휴는 사신으로 두 차례 원나라에 다녀왔다. 스스로 죄를 인정한 것이 오히려 원종의 신임을 얻게 되면서 서장관(書狀官)에 발탁되어 원나라에 가게 되었다. 그가 원나라에 가서 올린 진사선미(陳謝宣美)는 원나라 황제 세조를 탄복하게 하였으며, 동행한 송조국(宋祖國)도 이승휴의 문장이 중국인들을 감동시켰다며 찬양하였다. 이듬해인 1274년(원종 15)에는 원종이 승하하자 부음을 전하기 위해 또 한 번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들어갔다. 당시 원나라에 있던 고려의 세자가 원나라 옷인 호복(胡服)을 입고 장례를 치를 것을 염려하고 상복을 고려식으로 할 것을 권유하여 원나라 세조의 허락을 받아 냈다. 두 번에 걸친 원나라 여행으로 이승휴는 국제 정세를 읽는 안목을 새로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승휴의 관직 생활은 직언(옳고 그른 것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함)과 파직(관직에서 쫓겨남)의 연속이었다. 충렬왕 때에는 우정언(右正言)이 되어 당시 고려 정치의 성공과 실패를 15개조로 나누어 왕에게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간절히 말하였다. 우사간(右司諫)을 거쳐 충청도 양광안렴사가 되어서는 뇌물을 받은 관리 7명을 탄핵하고 불법으로 형성한 재산을 몰수하였다가 원한을 사서 지금의 철원인 동주부사(東州副使)로 좌천되었다. 이때부터 스스로 ‘동안거사’라고 일컬었다. 이승휴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관직에서 물러나고 복직하기를 반복하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자신의 도리라는 것을 동안거사라는 호(號)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얼마 후 상소로 말미암아 파면당한 후 관직을 버리고 다시 삼척의 두타산 귀동으로 돌아와 은거한 이승휴는 무릉도원을 노래한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 한 구절을 인용하여 지금의 천은사 자리에 용안당을 짓고 나랏일과 세상사에 함구하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냈다. 삼화사(三和寺)에서 불교 경전을 빌려다 보면서『내전록(內典錄)』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1287년(충렬왕 13)에 들어와 세상에 교훈이 되는 책을 저술하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다.

『제왕운기』를 저술한 2년 후인 1289년(충렬왕 15)에는 용안당 남쪽에 ‘보광정(葆光亭)’을 창건하는 한편 그 곁에 있는 우물 천정(泉井)을 ‘표음정(瓢飮渟)’이라 하고 보광정 아래에 ‘지락당(知樂塘)’을 만들어 귀동 용계별서라는 절을 완성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늙은 몸으로 귀동 용계별서에서 신선을 자부하며 살던 그가 71세인 1294년(충렬왕 20) 되던 해에 홀연히 용안당 간판을 간장사(看藏寺)[현재 천은사]로 개칭하고 승려가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곳이 현재까지 천은사로 내려져 오고 있다. 

  이승휴는 새로이 즉위하여 개혁 정치를 펼치던 충선왕으로부터 두 번에 걸쳐 간곡한 부름을 받게 된다. 관직에 있던 이승휴의 맏아들인 권지교서랑(權知校書郞) 이임종(李林宗)[?~?]을 내려 보내기까지 하는 충선왕의 열성에 못 이겨 개경에 나아간 그는 한때나마 고위직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충렬왕대에 빚어지고 있던 여러 폐단을 없애고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던 충선왕의 개혁 운동에 그가 적극 동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75세의 노년에 이른 이승휴로선 언제까지나 현직에서 활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거듭 물러나기를 요청하였고, 마침내 1298년(충렬왕 24)에 은거지이던 삼척으로 돌아왔다. 이때 충렬왕은 이승휴에게 밀직부사 감찰대부 사림학사승지(密直副使監察大夫詞林學士升旨)에 임명하는 것으로 치사하였다. 사림학사승지를 마지막으로 벼슬을 마친 이승휴는 2년 후인 1300년 10월에 생을 마쳤다. 그의 나이 77세였다.

3.업적

  • 역사서 ‘제왕운기’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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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