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승려.
►별칭 : 자 이환(離幻), 호 사명당(四溟堂), 학산(鶴山),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 법명은 유정(惟政) ►성별 : 남 ►시대 : 조선 중기 ►출생~사망 : 1544년 ~ 1610년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 ►본관 : 풍천(豊川) ►주요업적 : 의병활동, <사명당대사집>7권, <분충서난록> 집필 |
1544년(중종 39년) 10월 17일 경남 밀양에서 임수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대사는 1559년 경북 김천 직지사로 출가한뒤 2년 만에 승과에 합격했다. 1575년 봉은사 주지로 천거됐으나 거절하고 서산대사인 휴정의 제자가 됐다. 대사는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건봉사에서 승병을 규합,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작전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으며 그해 3월 서울인근의 노원평과 우환동, 수락산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해 3월 27일, 선조는 대사에게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 직을 제수하였으며 또 4월 12일 그의 뛰어난 전공(戰功)을 치하하기 위해 절충장군(折衝將軍)호분위 상호군(虎賁衛上護軍)의 교지를 내려 당상직(堂上職)에 오르도록 했다. 선조 28년(乙未), 52세의 사명은 전쟁이 소강상태로 들어가자 장문의 상소문을 올려 국난(國難) 수습책을 개진(開陣)하는 한편 가야산으로 들어가 그뒤 용기龍起)팔공(八公)금오(金烏) 산의 산성을 차례로 쌓았다. 사명당은 선조 37년(1604) 7월 초하루, 서울을 떠나 대마도(對馬島)로 건너가 도주(島主) 종의지(宗儀智)를 만나 본 다음 이어 본토 도성(都城)으로 들어갔다. 관백 덕천가강(德川家康)을 만나 화친(和親)을 맺은 뒤 일본에 잡혀갔던 동포 3천여 명을 데리고 이듬해 5월 귀국하여 6월초 임금에게 복명(復命하였다. 임금은 62세의 노령을 무릅쓰고 나라의 중대사를 원만히 해결하고 돌아온 대사에게 가의대부(嘉義大夫)의 품계를 가하고 3대(代)를 추증했다. 노년에 병이 악화되어 해인사로 돌아가 요양하던 대사는 광해군 2년(庚戌,1610) 8월 26일, 병상에서 몸을 일으켜 대중들을 불러 모으고 마지막 설법을 한다.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뤄진 이 몸은 이제 진여(眞如)의 세계로 돌아가련다. 무엇 때문에 쓸데없이 오가며 환상의 몸[幻軀]을 괴롭히랴… 나는 적멸(寂滅)의 세계로 들어가 대화(大化)에 순응하리라.”
설법을 마친 뒤 가부좌한 채 태연스레 열반에 드니 세속 나이 67세, 법랍 51하(夏)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