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현

                                                                                                                                                                                                                                                           

1.개요

고려 충신 7인이 이성계의 회유를 피해 정선으로 숨어와 임금에 대한 충성과 자신들의 처지를 한시로 지어부른 것이 정선아라리의 노랫말이 되었다는 거칠현설이 있음.

 
►별칭 : 
►성별 : 
►시대 : 고려말~조선전기
►출생~사망 : 
►출생지 : 
►본관 : 
►주요업적 : 고려 충신 7인이 이성계의 회유를 피해 정선으로 숨어와 임금에 대한 충성과 자신들의 처지를 한시로 지어부른 것이 정선아라리의 노랫말이 되었다는 거칠현설이 있음.
 

2.생애

거칠현설은 정선아라리의 근원설화 중 일반화된 설이다. 정선 지역민들에겐 거의 정설로 통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 유신들 중 72명이 불사이군(不事二君) , 충직한 신하는 결코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며 충절을 맹세하고 숨어든 곳이 개성의 두문동이었고, 여기서 이성계의 회유가 집요해지자 다시 이를 피해 일부가 흩어져 숨어든 곳이 강원도 정선 땅이었다. 이때 온 이들이 7인이었고, 그래서 이들이 머문 곳을 후세에 거칠현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들은 매일 아침 관복을 옛 궁궐 쪽에 걸어 놓고, 중국의 백이숙제의 고사(故事)처럼 서운산(瑞雲山)의 고사리와 산나물을 캐 먹으며 세상을 등지고 살았다. 그리고 이웃 여주의 목은 이색이나 원주의 원천석과 같은 이들과 회한을 나누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시로 지어 부른 것이 인근에 풀이되어 전해져 정선아라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가 정선아라리의 제 1절 격인 다음의 노랫말이라고 한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 막 모여 온다.”
 
여기서 눈이나 비가 오려는 암울한 상황은 고려 말의 국운을 말하는 것이며, ‘만수산이란 옛 도읍지인 개경의 주산을 말한다. 그리고 이들이 7인이니 7수의 한사와 그 풀이한 노랫말도 있다고 주장하여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주장은정선전씨대동보고려숭의록등에 명시하고 있으나 이런 주장에 대해 이의가 없지 않다. , ‘7현이라는 일곱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가 명확치 않다든가, 그들이 남긴 한시 7편의 문헌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든가, 그 시에 의한 사설이 확인되지 않다든가, 결정적으로는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라는 어원의 단서가 어느 시에 있는가? 등의 문제이다. 그럼에도 이 설은 정선아라리의 움직일 수 없는 기원설화로 자리집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목은 이색 시 수용설이 대두되고 있다.
 
여기서 눈이나 비가 오려는 암울한 상황은 고려 말의 국운을 말하는 것이며, ‘만수산'이란 옛 도읍지인 개경의 주산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7인이니 7수의 한사와 그 풀이한 노랫말도 있다고 주장하여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주장은정선전씨 대동보고려 숭의록등에서 확인 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이의가 없지 않다. , 7현이라는 일곱 사람이 과연 누구 누구인가가 명확치 않다든가, 그들이 남긴 한시 7편의 문헌적 군거가 불분명하다든가, 그 시에 의한 사설이 확인되지 않다든가 하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이 설은 정선아라리의 움직일 수 없는 기원설화로 자리집고 있다.

 

3.업적

고려시대의 충신 7인으로 이성계의 회유를 피해 정선으로 숨어와 그곳이거칠현동
이라 불림
고사리와 산나물을 캐 먹으며 세상을 등지고 삶
자신들의 처지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한시로 지어부른 것이 인근에 풍리되어 정선아라리가 되었다는 거칠현설이 전해 내려옴.

 

6.기타

정선아리랑문화재단에서는 거칠현이라는 정선아리랑극을 연출하여 발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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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