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리 : 유기[劉基:중국 원말명초(元末明初)의 유학자이며 정치가이다. 자는 백온(伯溫). 천문·병법에 능하였으며, 명(明) 태조(太祖)를 도와 중원(中原)을 얻어 성의백(誠意伯)이됨]를 추사(推思)하여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 사(祠)를 강선당(講善堂)이라 하고 그 상리(上里)를 소기(小基), 그 하리(下里)를 대기(大基)라 했다.
송현리 : 조선 태조때 송경(松京)을 생각하면서 강릉의 서남쪽을 송현(松峴)이라 하고 동산(東山)은 규학(叫鶴), 남산(南山), 삽당은 서덕(敍德), 북암(北岩)을 선연당, 그 남암(南岩)을 명당(明堂)이라 했다. 이 모든 것은 고려 왕도(王都)였던 송도(松都)를 생각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嶺東民俗志 : 地名傳說編(1972年刊)》
고단리 : 강릉에 와 있던 고려시대 충열지사 고상단충(高尙丹忠)을 생각하여 이곳 지명을 고단(高丹)이라 했다. 《嶺東民俗志 : 地名傳說編(1972年刊)》
왕산리 : 대관령 밑에 있는데 이종(理宗)을 추봉해서 단(壇)을 세우고 여기에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그 산을 이름해서 대제(大帝:왕산)라 했다.《嶺東民俗志 : 地名傳說編(1972年刊)》
목계리 : 목계리는 조선시대 평릉도(平陵道)에 딸린 목계역이 있었으며, 모계 또는 모개라 했다 전하며 사기점, 방터골, 구와동, 기수무늬, 낭골(仙人堂)을 합쳐 1916년 상구정면에 편입되었다. 옛날에는 모계(茅溪)라고 하다 목계(木界)로 개칭되었고, 삽당령을 기준으로 송현리와 경계를 이루고 마을 동쪽으로는 북동리, 언별리, 서쪽으로는 대기리,남쪽으로는 송현리, 동남쪽으로는 정선군과 접해 있다.
도마리 : 도마리는 1916년 밭갈이, 새재, 옷(옻)밭골, 둔지말, 탑거리, 돌모렝, 연애골을 합하여 도마리로 불리(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