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군 북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마의태자 관련 성곽
| ►문화재유형 : 유적 ►지정종목 : 사적 제553호 ►지정일 : 2019년 10월 2일 ►소재지 :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산 1-1 ►시대 : 고려후기 |
둘레 약 1.8㎞. 강원도 기념물 제17호. 해발 1,430m의 안산(鞍山)에서 남쪽 계곡을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으로 계곡 쪽에 남문터가 있고, 성 안에는 절터·대궐터·천제단 등이 있다.
한계령을 넘는 원통과 양양 사이의 길목을 차단할 수 있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다. 전설로는 신라 경순왕 때 축조되었다고 하며,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신라부흥운동을 할 때 성을 수축하고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 몽고의 침입과 홍건적의 침입 등 잦은 이민족의 침입 때문에 부근주민들의 입보(入保)를 위하여 수축되었다고 여겨진다. 지금 성벽이 남은 곳은 높이 5. 6m나 되나, 천연의 절벽은 성벽을 쌓지 않고 암벽을 이용하였다.
성벽은 아래쪽은 큰 돌을 사용하고, 위로 오르며 작은 돌을 사용하였으며, 아래에서 2m쯤까지는 벽면이 거의 수직을 이루다가 위로 오르면서 85°정도의 기울기가 된다.
성문은 문구(門口) 너비가 157∼166㎝이고 측벽의 높이가 230㎝인 사각문형식이다. 성벽의 기초는 쐐기돌로 수평을 맞추듯 작은 돌조각을 사용한 수법이어서 삼국 시대부터의 전통적 방법에 속하지만, 성벽의 윗부분은 여러 차례 수축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윗성과 아랫성 2개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6,279척으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고려사』 조휘열전(趙暉列傳)에는 1259년(고종 46) 몽고군과 조휘가 이끄는 반란군이 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방호별감(防護別監) 안홍민(安弘敏)이 야별초를 거느리고 출격하여 섬멸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