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과 함께 16세기를 대표하는 사림(士林)이다.
▶별칭 : 자 숙헌, 호 율곡·석담, 시호 문성 ▶성별 : 남 ▶시대 : 조선 중기 ▶출생~사망 : 1569년 ~ 1618년 ▶출생지 : 강원도 강릉 ▶본관 : 덕수 ▶주요업적 : <동호문답>, <성학집요> 정치활동 |
아버지는 이원수로 찰방과 사헌부감찰을 지냈으며, 후에는 좌찬성에 증직되었다.
어머니는 사임당 신씨이다.
율곡은 외가인 강릉 북평촌(현재의 오죽헌)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명종 3년(1548) 13세때 진사초시에 합격하여 그의 총명함을 세상에 떨쳤다.
16세에 어머니를 여의였으며, 3년상을 마친 이듬해인 19세때 금강산에 입산하여 선문의 스님들과 교류하면서 불서를 탐독하였다.
23세때에는 영남사림의 거두인 퇴계 이황을 방문하여 학문적인 교류를 하였는데 이후 퇴계는 율곡에 대하여 <군자와 같은 뛰어난 재주로 어린시절에 정도를 일으키니 후일에 성치하는 바를 무엇으로 헤아릴까?>라고 하여 그의 앞날이 번창할 것임을 예견하였다.
명종 19년(1564)에는 생원시와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으로 칭송받았다.
급제한 후 사가독서를 받았으며, 호조좌랑에 임명되었다.
예조좌랑, 정언, 이조좌랑, 지평등을 역임하였다.
선조1년(1568)에 천추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또한 부교리로 춘추관기사관을 역임하면서 <명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 사직하였으나 1571년 청주목사로 부임하였고, 다음해 다시 사직하고 해주로 낙향하였다. 다시 1573년 직제학이 되고 이어 동부승지로서 참찬관을 겸직하였다.
다음해 우부승지, 병조참지, 대사간을 지낸 후 병으로 사퇴하였다.
그 후 황해도 관찰사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학문에 몰두하다가 1581년 다시 대사헌예문관제학을 겸직하다가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양관(예문관과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이듬해 이,형,병조판서와 우참찬을 역임했다.
그리고 같은 해 판돈령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을 얻어 선조 17년(1584) 정원 16일 4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