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면

                                                                                                                                                                                                                                                           

1.개요

옥계면은 강릉시 최남쪽에 위치한 행정구역으로서 강릉시 강동면, 왕산면, 정선군 임계면, 동해시와 인접하여 있고, 면적은 148.02km2로 강릉시 전체 면적의 14.2%를 차지한다. 석병산, 자병산, 두리봉, 망덕봉, 만덕봉 등으로 이어지는 연봉들로 둘러싸여 있고 낙풍천, 주수천, 남양천 주위로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동해와도 닿아 있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3,553총 인구수
1,824인구(남)
1,729인구(여)

4.지명의 유래

  • 북동리(北洞里) : 북동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1916년에 사기막, 검정밭, 다릿골, 덕우동, 흐내를 합하여 북동리라 했다.
  • 산계리(山溪里) : 산계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1916년에 가새골, 검단이, 곰밭골, 반바우, 곱실, 쇠바우, 서낭댕이, 절골, 영밑, 원뜨루, 조월뜰, 황지미를 합하여 이 마을에 산계사(사찰)가 있어 산계라 했다. 또 세골(절골, 황지골, 영밑골)에서 흘러내리는 내가 3개라 삼계라 한 것이 음이 변해 산계가 되었다고 한다.
  • 주수리(珠樹里) : 주수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1916년 새터, 용바우,솔꺼리를 합해 주수리라 하다가 1957년 造山(助山)里를 합해 지금의 주수리가 되었다.
  • 천남리(川南里) : 천남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1916년 사잇말, 경방말, 동산미, 신영골을 합쳐 현내리의 주수천 남쪽이 되어 천남리라 했다. 이 마을에는 玉泉亭과 玉泉寺, 옥계중학교, 옥계종합복지회관이 있다.
  • 현내리(縣內里) : 현내리는 원래 강릉군 우계현(羽溪縣)의 소재지로 1916년에 향교말, 드릉담, 잿말, 장거리를 합쳐 현내리라 했다. 옥계의 옛지명이 玉泉縣이었을 때 고을 현감이 살던 곳이였다. 마을은 동쪽으로는 주수리, 천남리, 서쪽으로는 낙풍리, 남쪽으로는 산계리, 남양리, 북쪽으로는 금진리, 낙풍리와 접해있다. 옥계의 면소재지로 면사무소, 옥계초등학교, 우체국, 파출소, 보건지소, 농협, 축협, 한국도로공사 강릉지부 등의 공공기관이 있고, 4일과 9일에 이곳에서 장이 선다.
  • 산골터 : 주수에서 천남으로 가면서 첫번째 마을, 이 골에 위장병, 신경통에 좋다고 하는 산골이 많이 나온다.
  • 마구할미굴 : 낙풍리 샘골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왼쪽 참나무 숲이 있는 곳에 있는 굴. 옛날 이 굴에 마구할미가 살았는데 굴안에는 솥, 베틀 형상의 돌이 있고, 안방, 사랑방, 마굿간 등이 있다.
  • 황지미 : 산계3리 산계버스 종점이 있는 학림동(서낭뎅이)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오른쪽 골, 골입구에 효자각이 있다. 골안에는 범바위, 상황지미, 하황지미 3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 낙풍리 : 낙풍리는 원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조선조때 大昌道에 딸린 낙풍역이 있어서 역촌 또는 낙풍이라 하다가 1916년 양짓말,응달말을 합해 낙풍리라 했다.
  • 금진리 : 금진리는 본래 강릉군 옥계면 지역으로 땅이 검고, 개(浦)가 있어서 먹진이라 했는데, 1916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건남리를 합병하여 금진리라 했다.


<출처: 강릉시청>

5.지역의 옛이야기

5.1.낙풍에 얽힌 이야기들

마귀할멈 이야기가 있지, 마귀할미가 굴에서 살았는데 밥을 하던 솥과 빨래를 하던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어. 굴 속에 들어가 보면 이건 솥이구 이건 밥상이구 이런 흔적이 있었는데 이젠 다 없어졌지, 그 굴이 임곡으로 통했다고 하지만 정말로 통하는지는 모르겠어. 어려서 가보니 굴속에 짐승의 뼈가 있었지. 그 굴이 이젠 다 메워졌어.

그리고 예전에 이 마을에 통물방아가 있었는데 물이 한참 모였다가 툭 떨어지고 또 모였다가 툭 떨어지고 했거든. 밤새도록 방아를 찧는데 너무 방아가 더디니 어떤 처녀가 방아를 찧으며 졸다가 그만 치어 죽었대. 그리고 물방아간 앞에 자리를 만드는 왕골을 심었는데 호랑이가 거기에 자주 나타나 작폐가 심하자 거기다 호랑이 덫을 놓아 호랑이를 잡았대.

또 육발 달린 호랑이가 있어 사람을 많이 해쳤대. 눈이 오게 되면 그 놈의 육발 호랑이가 굴에서 밖으로 나오면서 제가 나온 흔적을 없애고 꼬리로 제 발자국을 지운대. 또 어떤 때는 짚신을 거꾸로 신고 나오니까 사람들은 누가 굴속으로 들어간 줄로 속았어.

요놈이 발가락이 여섯 개가 달렸는데 사람을 많이 해치니까 이놈을 결국 사람들이 잡았지. 임곡 사람이 잡았는데 이 사람이 삼 년밖에 못 살았대.

옥계 청남리에 사는 사람이 봄에 소로 논을 가는데 까마귀가 상투위에 앉더래, 그 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지금으로 보면 어느집 사랑방에 모두 모여 자는데 그 사람이 맨 앞쪽에 잤는데도 호랑이가 그 사람만 물어갔대. 앞산 쪽으로 물고 가니까 동네 청년들이 솔쾡이 불을 켜가지고 길을 밝히며 창을 들고 가보니 그 사람을 처치했더래.

또 북동에 학교가 있는데 거길 성매골이라 하거던. 5월 어느 날밤에 부인들이 모여 솔쾡이 불을 들고 혼자 나가더래 다른 사람들이 보니 호랑이가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간단 말이야. 날이 새자 사람들이 가보니 호랑이가 그 여자의 머리만 바위에 올려 놓고 몸둥이는 다 먹어버렸더래.

옛날에 아이들이 많이 죽으니까 죽은 아이를 묻으면 여우란 놈이 와서 그걸 파먹지. 고쟁이(뒤웅박)속에 먹을 걸 넣어놓고 구멍을 뚫어 놓으면 그걸 먹으려고 여우의 머리가 그 속으로 쑥 들어간단 말이야. 한번 들어가면 좀처럼 머리가 빠져 나오지 모하거던. 눈앞이 안 보이니까 여우가 그만 마을로 내려온대. 이른 본 청년들이 여우가 둔갑했다고 하며 때려 잡는다는 것이 고만 고쟁이를 부셔 버리면 여우가 도망가 버리지.

옛날 강감찬 장군의 아버지가 여자 백 명을 건드리려 했는데 99명까지만 건드렸을 때 이것을 안 여우가 여자로 둔갑해가지고 어찌해서 낳은 게 강감찬이라는 말도 있지.

옥계 장터에서 있었던 일이야. 사람들이 기분이 좋으면 장구채로 장구를 치는데 어떤 사람이 장구채를 옹구에다 대고 쳤단 말이야. 거기다 치면 소리가 잘 나니까 거기다 쳤대. 그래 장구를 치는데 어떤 초립동이가 한지 한 장을 사가지고 오더니 손톱으로 그걸 쭉 짼단 말이야. 장구를 치던 사람이 그걸 보더니 그만 기가 죽어 도망을 쳤대. 요 위에 틀집이 있는데 그 틀집까지 도망쳐와 숨었지만 그 초립동이가 쫓아와 밖에서 대고챙이로 꾹 찌르니 그 사람이 그 꼬챙이에 찔려 죽어 버렸어. 자기가 기운이 제일 세다고 뽐내다 초립동이한테 당한 거지.

1. 조사일자 : 1995. 10. 27. 2. 제 보 자 : 정종순(55세. 여, 성산면 보광2리) 3. <한국 강릉지역의 설화> 두창구 저. 국학자료원.1999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옥계초등학교,옥계초등학교금진분교장
중학교 : 옥계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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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