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16대 인조의 비로, 성품이 인자하여 인조를 도와 많은 일을 했다.
▶별칭 : 전호 숙녕(肅寧), 휘호 정유(正裕) ▶성별 : 여 ▶시대 : 조선 중기 ▶출생~사망 : 1594~1635 ▶출생지 : 원주 ▶본관 : 청주(淸州) ▶주요업적 : 조선 제16대 인조의 비 | ![]() |
선조가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한 유교 7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며 홍문관 부제학,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보국숭록대부 영돈녕부사 한준겸의 넷째 딸이다. 1594년 8월 16일(음력 7월 1일), 원주읍내 우소에서 탄생하였으며, 1610년에 17세의 나이로 한 살 연하였던 능양군(綾陽君)과 길례를 올리고 청성현부인(淸城縣夫人)에 봉해졌다.
이후 1623년 4월 11일 능양군이 인조반정을 일으키고 왕위에 오르자 왕비에 책봉되었다. 1636년 1월 12일 (1635년 음력 12월 5일), 대군을 낳았으나 곧 숨졌고, 나흘 뒤인 1636년 1월 16일(1635년 음력 12월 9일) 왕후 자신도 산후병으로 창경궁 여휘당(麗輝堂)에서 향년 43세를 일기로 승하하였다.
인을 베풀고 의를 따르는 것을 인(仁), 공로가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열(烈)이라 하여 인열(仁烈)의 시호를 받았다. 원래 인조는 명헌(明憲)의 시호를 내리길 원하였으나, 대사헌이었던 김상헌이 시호를 정하는 일을 담당 관원이 아닌 군주의 의향대로 할 수 없다 하여 바꾼 것이다. 전호는 숙녕(肅寧), 능호는 장릉(長陵)이다. 후일 정유(正裕)의 휘호를 받았으며, 아들인 효종이 명덕정순(明德貞順)의 휘호를 더 추상하였다.
인조는 왕후의 장릉(長陵) 곁에 자신의 수릉(壽陵)을 만들어두었으며, 인조 승하 후에 효종이 그곳에 아버지를 봉릉하고 장사지냈다. 장릉은 원래 파주 운천리(雲川里)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묘 주위에 뱀과 전갈이 살기 시작하자 영조가 현재의 파주 갈현리로 이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