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은 남대천변 소나무숲이 우거진 도농 복합지역으로 도시 근교의 신흥개발 지역이다. 또한 관동대학교를 비롯한 2개 초등학교가 소재한 교육의 중심지이며, 신복사지 삼층석탑 및 석불좌상이 있는 문화재 보존지역이다.
<출처: 강릉시청>
강릉시 노암동과 유산동 사이에는 속칭 독갑재라는 산마루가 있는데 독갑재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편편한 들판이 있다. 들판은 모두 논인데 논 옆으로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용미암이다.
옛날 용씨 성을 가진 용부사가 강릉부사로 새로 부임해 왔는데 용부사가 부임해오자 가뭄이 몇 달이나 계속되었다. 그러자 새 부사가 덕이 없고 액운마저 지니고 왔다고 백성들의 원성이 날로 높아가니 용부사는 마음이 실로 괴로웠다
하루는 용부사가 동헌(東軒) 마루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수심에 잠겨 있는데 남쪽 하늘에 먹구름이 크게 일며 당장에 큰 비가 내릴것만 같아 가슴을 설레었다. 그런데 별안간 독갑재에서 서기가 일더니 구름이 금새 사라졌는데 이와 같은 일이 연 사흘동안 계속되었다. 그러자 이를 괴상하게 여긴 용부사는 통인을 데리고 서기가 일던 독갑재로 갔다.
독갑재 아래 벌판을 이르니 논 가운데 큰 바위가 있고 바위 틈 사이에 묘가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용부사가 그 묘의 내력을 물으니 한 백성의 대답이 이러했다.
그 바위는 농부들이 들에서 일을 하다가 앉아 쉬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난 봄에 마을 사람들이 모를 심다가 점심때가 되자 이 바위위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지나던 걸인이 왔기에 밥을 나누어 주고 자기들은 각기 들판으로 일을 하러 갔다가 저녁무렵에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그 걸인이 수건으로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당황한 농부들은 묻을 곳도 마땅치 않고 해서 바위 한복판 깊숙이 파인곳에 시체를 덮고 남은 모춤으로 대강 묘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부사는 사람들에게 바위틈의 묘를 파니 목은 사람이고 아래는 용모양을 한 괴물이 나오기에 산 위에 옮겨 잘 묻어 주었더니 그 후 부터는 가뭄이 드는 일이 없이 농사가 잘 되었다고 한다.
1. 조사일자: 1988. 6. 7 2. 제 보 자 : 박정자(65세, 여, 내곡동) 3. <한국 강릉지역의 설화> 두창구 저. 국학자료원.1999
초등학교 : 남산초등학교,명주초등학교
대학교 : 가톨릭관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