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형산

                                                                                                                                                                                                                                                           

1.개요

조선시대의 문신으로 우찬성,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대관령 옛길을 개척한 인물

►별칭 :  정숙(靜叔),  익평(翼平)
►성별 : 남
►시대 : 조선 중기
►출생~사망 : 1453년 ~ 1528년
►출생지 : 횡성
►본관 : 횡성(橫城)
►주요업적 : 대관령 옛길 개선, 정치활동

2.생애

고형산은 1453년 횡성에서 태어나 14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후 해주목사(해주 지방관)와 함경북도병마절도사(도지사)를 지냈다. 평소 성품이 곧고 부지런하였으며 행정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이어 중종 임금 때 한양에서 벼슬을 하던 중 횡성에 살고 있는 노모가 병환에 시달리자 사직을 청하였으며, 임금은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해 어머니를 보살피면서 백성을 다스리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강원도관찰사 시절 대관령길을 우마차가 다닐 수 있도록 확장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공사를 진행시키기도 하였으며, 이후 형조, 호조, 병조판서 등의 요직을 역임하고 우찬성에 이르렀다 76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고형산이 죽은지 100년이 훨씬 지난 19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데, 당시 주문진에 상륙한 청나라 군대가 대관령을 통해 한양을 장악하게 되었다며 역적으로 몰리는 수모를 겪게 된다. 이에 인조는 명으로 고형산의 묘를 파내 부관참시를 했으며, 후에 이에 대한 무고함이 밝혀지면서 위열공이라는 시호를 받고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3.업적

  • 강원도관찰사, 형조, 호조, 병조판서, 우찬성 역임
  • 대관령길을 확장함으로써 조선시대 교통 및 물류혁신을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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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