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동

                                                                                                                                                                                                                                                           

1.개요

강남동은 강릉 남대천을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시ㆍ농촌의 복합형 동으로서 8개의 법정동(노암,유산,장현,담산,박월,신석,운산,월호평)을 관할하고 있다. 남산교 준공, 단오타운 준공, 축구공원조성 등으로 강릉 남부지방의 최적의 거주지를 지향하고 있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18,134총 인구수
9,063인구(남)
9,071인구(여)

4.지명의 유래

  • 운산동 : 운산동은 본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운산'이라 하였는데 1916년에 내신석을 합해 운산리라 하다가 1989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557호에 의해 명주군 강동면에서 강릉시로 편입되었다. 운산이란 이름은 마을에 운수수조형(雲水垂釣形) 또는 운중선좌형(雲中仙座形)에 명당자리가 있어서 마을 이름이 생겼다.
  • 신석동 : 신석동은 원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납이 든 돌이 많이 나서 납돌이라 하는데 이를 한자로 고쳐 신석이라 한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돌이 눈에 띄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 마을은 1914년에 신석리라 하여 성남면에 편입되었고, 1920년에는 성덕면에, 1955년에는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 월호평동 : 월호평동은 원래 강릉군 자가곡면 지역으로 1914년 운산리 일부와 덕방면 청량리 일부를 합하여 월호평리라 하여 덕방면에 편입하였다가 1955년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옛날 이 마을에 함종 어씨에 정걸, 정직이란 형제가 살았는데, 그 집에 “월”이란 이름을 가진 비복이 살았다. 그런데 그 월은 여러 비복 가운데 일도 제일 잘하고 또 이쁘고 상냥해 두 형제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래서 두 형제는 서로 일을 시키기 위해 형집에서 “월아” 하고 부르면, 또 이에 동생집에서도 “월아”하고 불러 마을에는 두 형제가 서로 “월”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즉 “월”이를 부른 들이란 뜻에서 월호평이란 이름이 생겼다.
  • 담산동 : 담산동은 강릉군 남이리면에 딸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지, 외동진, 밭골을 합하여 담산리라 하여 성남면에 편입하였다가 1920년에는 성덕면에 편입되고, 1955년 9월에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담산이란 이름은 모산과 학산과 더불어 같이 있다고 하여 삼산이라 하다가 이곳에서 흐르는 물이 맑아서 담산이라 한다. 이 곳에 있는 산의 모양이 삿갓처럼 생겨 삿갓재라고도 한다.
  • 박월동 : 박월동은 원래 강릉군 남이리면에 딸린 지역으로 1914년 장대리를 병합하여 박월리라 하고 성남면에 편입하였다가, 1920년 11월에 성덕면에 편입되고 1955년에 강릉시로 되면서 동으로 되었다. 박월이란 이름은 이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후 고려 유신들이 송도의 만월대의 고사를 생각하여 박월이란 지명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만월대가 있었다.
  • 장현동 : 장현동은 원래 강릉군 남이리면에 딸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장현리라 하고 성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 11월 1일에 성덕면에 편입되고 1955년 강릉시에 편입되면서 박월리, 담산리와 같이 하나의 행정동이 되었다. 구한말에는 장현리, 담산리는 상모산이라 했고, 유산리와 박월리는 하모산이라 했다.
  • 유산동 : 유산동은 본래 남일리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에 문암리와 공가곡면과 신석리를 합하여 유산리라 하여 성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에 성남면과 덕방면이 합칠 때 성덕면으로 되고 1955년 9월 1일 강릉시제 실시 때 강릉시로 되어 里를 洞으로 고치고 노암동과 합쳐 하나의 행정동으로 이루고 있다.
  • 노암동 : 노암동은 본래 강릉군 남이리면에 딸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때 아죽리를 병합하여 노암리라 하여 성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20년에는 성덕면에 편입되고 1955년 9월에 강릉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쳤다. 마을에 노가니골이 있어서 노가니를 노암이라 불러 지명이 생겼다.


<출처: 강릉시청>

5.지역의 옛이야기

5.1.짝바위 전설

짝바위는 강릉시 노암동에 있는 독갑재를 넘으면 문정암이 자리잡은 마을에 있다. 그런데 이 바위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바위 두 개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위는 오누이간의 애절한 사연을 지니고 있어 오누이 바위라고도 하고 먼 곳에서 바라보면 코끼리 모양으로도 보이고, 버선과 비슷하기도 해서 버선바위라고도 부른다.

오래 전의 일이라 한다.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의 부인이 아들을 낳은 뒤 죽었다. 그러자 새로 부인을 얻었는데 그 부인에게는 이미 딸린 딸이 있었다. 그런데 아들과 데리고 들어온 딸은 서로 각별히 친했다. 점점 자라면서 연정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다가 어느 날 넘어서는 안 될 일을 범하고야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딸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배가 점점 불러오자 누이는 부끄러워 고민만 하다가 뒷산에 올라가 자살을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오빠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뒤따라 그 옆에서 죽어버렸다.

이 두 오뉘는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엎드려 간절히 사죄하는 모양을 하고 있기에 이 바위를 짝바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짝바위에 대해서는 이와 다른 이야기도 있다.

이곳에 살던 어느 부부가 아들과 딸을 낳고 죽자 집안이 어려워 한 때 어린 오뉘가 뿔뿔이 헤어졌다고 한다. 각각 다른 곳에서 성장한 오뉘는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는데 서로 남매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를 눈치 챈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오뉘간임을 알려주었지만 이미 깊이 사랑에 빠져 쉽게 헤어나지 못하자 하느님이 이를 괘심하게 여겨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생토록 접근치 못하도록 벌을 내려 바위가 되게 하였다고도 한다.

1. 조사일자 : 1991. 5. 4. 2. 제 보 자 : 박우순(72세, 여, 노암동) 3. <한국 강릉지역의 설화> 두창구 저. 국학자료원.1999
 

5.2.연화소녀와 무월랑 (월화정)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노암초등학교,모산초등학교,옥천초등학교 운산분교
중학교 : 경포중학교
대학교 : 한국폴리텍Ⅲ대학 강릉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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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