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성리학자로 화천 사내면에 곡운정사를 짓고 제자를 양성함
►별칭 : 자 연지(延之), 호 곡운(谷雲), 화음동주(華陰洞主) ►성별 : 남 ►시대 : 조선 중기 ►출생~사망 : 1624년 ~ 1701년 ►출생지 : 서울 장동(현 종로) ►본관 : 안동(安東) ►주요업적 : <곡운집> 집필 | ![]() |
조선 중기에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 후금과의 관계를 끊어야 함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김상헌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할아버지를 모시고 학문을 익혔다. 또한 조선 중기 대표적 학자인 송시열과도 가까이 지냈다.
1650년 생원시에 합격하며 현감, 군수, 부사 등의 관직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정치 활동 가운데 숨어지내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47세가 되던 1670년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에 숨어지내게 되었다. 김수증은 화천의 용담계곡을 주자(朱子)의 무이구곡을 모방하여 곡운구곡(谷雲九谷)이라고 불렀으며, 평양 출신의 화가 조세걸을 시켜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하였다. 정치적인 문제로 친구였던 송시열이 유배당하고, 형과 동생도 처형되거나 귀양을 가게 되어 더욱 숨어지내는 생활을 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