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삼동

                                                                                                                                                                                                                                                           

1.개요

북삼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입지로 급속도로 도시화된 지역으로서 교육과 문화복지의 선두주자로 발전하고 있다.

2.인구

2020년 기준(자료갱신일: 2020.12) / 단위 : 명
19,257총 인구수
9,976인구(남)
9,281인구(여)

4.지명의 유래

  • 지흥동 (智興) : 지양사(智陽寺)라는 절이 있어 지양곡(智陽谷)이라 했는데 이것이 음이 변하여 쟁골로 불리면서 한자로는 쟁곡(爭谷) 또는 쟁골(爭骨)로 표기되어 오다 현재에 이르러 지흥(智興)이 되었다.
  • 효가동 (孝街) : 당시 효자 김겸(金謙)이 자기 손가락을 잘라 모친의 병을 고쳤다고 하여 선조때 삼척부사 허목(許穆)이 그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효가(孝街)라고 명명 한데서 유래되었다.
  • 나안동 (羅雁) : 처음에는 쇄운리(灑雲里)에 속해 있었는데 큰 홍수로 전천의 물길이 마을을 둘로 갈라 놓았으며 마을의 지형이 기러기가 평평한 모래에 앉은 형국인 평사낙안형(平沙落雁形)으로 생겨 낙안(落雁)이라 했던것에서 유래되었다.
  • 동회동 (棟淮) : 동회리(桐淮)라는 이름은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내에 오동나무 다리가 있어서 淮水桐泉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桐’자에 회암(淮菴)이란 호를 가진 김흥려라는 사람의 호를 따서 동회라 했다고 하기도 한다.
  • 쇄운동 (灑雲) : 과거 초분(草紛)으로 불리다가 한자표기 과정에서 초운(草雲), 쇄운(鎖雲), 생운(生雲)으로 쓰여지던 것을 미화시켜 오늘날 쇄운(灑雲)으로 적게 되었다.
  • 용정동 (龍井) : 감추(甘湫)의 남쪽에 위치한 용추(龍湫)와 안산(案山)인 구미동의 산봉우리에서 용마(龍馬)가 나왔다고 하여 용장(龍場)이라 했는데 이것이 와전되어 용정(龍井)으로 전하며 현재 서측 일부는 북삼동에 그외 지역은 송정동에 편입되어 있다.


<출처: 동해시청>

7.지역의 명소

7.1. 동해용산서원

강원도 동해시 효자로 583 (쇄운동)에 있다. 
용산서원은 조선 숙종(肅宗) 31년(1705) 삼척 부사 이세필(李世弼 )이 창건하여 교학에 힘썼으며, 그 뒤 여러번 다시 수리되어 오다가 고종(高宗) 5년(1865) 대원군(大阮君)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撤廢)되었던것을 1966년 이 고장에서는 유서 깊은 서원(書院)이라 하여 이곳 사림(士林)들에 의하여 1966년 현재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서원은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본산으로 성리학의 발전을 촉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인재교육과 문화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서원의 운영과정에서 작성된 필사원본과 고문서 등은 이러한 서원의 기능과 역할을 잘 보여주는 기록 자료의 보고이며, 지방사의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협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동해 용산서원 소장 전적류는 동해서원의 운영에 대해 규정한 전적들로, 18세기 삼척지방에서의 생활사와 교육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8.지역의 교육기관

초등학교 : 북삼초등학교
중학교 : 동해광희중학교
고등학교 : 동해광희고등학교, 북평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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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