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은 북쪽으로 사북면(史北面), 동쪽으로 신북읍과 소양호(昭陽湖), 남쪽으로 신동면(新東面)과 남산면(南山面), 서쪽으로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북면(北面)에 접한다.
춘천의 서쪽에 위치하여 서면이라고 불려왔다. -조선시대 서하면과 서상면에 속함
서면은 금산리, 당림리, 덕두원리, 방동리, 서상리, 신매리, 안보리, 오월리, 월송리, 현암리로 10개의 행정리로 구분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남산면>
옛날 우양리에 우씨도 양씨도 아닌 착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우양리 마을은 우씨와 양씨가 대성을 이루고 살면서 마을에 작은 일 큰 일 할 것 없이 두 씨족끼리 아귀다툼을 하고 살았다. 우씨네가 찬성하면 양씨네가 반대하고 반대로 양씨가 찬성을 하고 나서면 이번에는 우씨네가 절대 반대하고 나서니 무슨 일을 하나 우씨네와 양씨네는 사사건건 대립을 하고 사소한 일에도 서로 편을 갈라서 흉을 보고 시비를 걸어대서 조용한 날이 하루도 없다시피 싸움으로 세월을 보냈다.
마음씨 착한 이 노인은 마을사람들의 대소 시비를 못 마땅하게 생각하고 이를 중재해 보려고 가진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우양리 마을 사람들은 이 노인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반성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고 여전히 싸움만 게속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우양리 마을의 한 우씨노인이 고산 밑 눈늪에서 큰 잉어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정지각에다 잡은 잉어를 걸으니 처마에 땅을 닿을 만큼 컸다. 이 잉어는 눈늪 연못에서 제일 큰 고기로서 마을사람들은 단 하나 밖에 없는 이 잉어가 그 못에 살고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씨노인이 큰 잉어를 잡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온 마을에 퍼지자 우씨와 양씨는 삼삼오오 떼를 지어서 우씨노인집에 찾아와 시비를 걸었다.
양씨들은 이 잉어는 자기들이 먼저 그 연못속에 이 잉어가 있었다는 것을 맡아 놓은 것을 우씨측이 잡아버렸다고 시비를 걸어 왔고 우씨측은 주인 없는 큰 연못에 있던 고기를 먼저 잡은 사람이 임자지 무슨 잔소리냐고 맞서고 나섰다.
마음씨 착한 노인이 이 집에 당도해 보니 이 싸움은 좀처럼 그치지 않겠기에 이들의 잉어 소유 시비를 가리기 앞서 두 씨족간의 화해를 종용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때 기둥에 매달려 있던 큰 잉어는 왕방울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우가야 양가야” “우가야 양가야”하고 거듭 소리를 질러 댔다.
노인은 잉어의 말을 듣고 심상치 않다고 생각이 들어 우씨노인에게 연못에 도루 갖다 살릴 것을 얘기했으나 우씨 노인은 이노인의 말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마음씨 착한 노인이 초저녁 선잠에서 꿈을 꾸니 백발의 하얀 노인이 나타나서 고하기를 “이 큰 잉어 탓으로 용왕이 노해서 필경 내일은 이 우양리가 물나라로 변할것이니 내일 새벽 아침 가족을 데리고 다른곳으로 옮기거라” 하고 전하면서 사라져갔다고 한다.
꿈에서 깬 노인은 하도 생시처럼 생생하여 이상스러히 여기고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으나 아무도 노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하는수 없이 노인은 홀로 가족들을 일깨워 가재도구를 강건너 마을 옥산 포 쪽에 서둘러 옮기고 다가올 물난리를 피하려고 피난을 갔다.
그날 낮까지 청청하게 개였던 하늘에 먹구름이 일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늘은 새까만 비구름이 덮이면서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 부었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강물이 바다처럼 불어나서 우양리 마을을 덮쳐 버리고 고산(孤山)과 금산리를 잇는 뒷 둔덕산이 무너지면서 고산밑의 눈늪을 휩쓸고 내려가 새로이 고산밑에서 덕두원까지 강길이 열렸다고 한다.
한일합방 초에 옛 지번을 새 지번으로 바꾸는데 옛 지번은 천자문인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해서 “야(也)“까지 이어가는 한문 지번이었다. 이것은 셈수인 일이삼사로 고치려 하니 천자문 앞쪽 번지들은 모두 강물속에 잠겨서 없드라는 옛 노인들의 증언이 있으니 이 전설은 신빙성 여부에 뒷받침 되기도 한다.
부래산(서면외도) 서면 신매리에 있는 고산은 모랫벌 가운데 오똑하게 솟아 있는 조그마한 바위산이다. 편편한 모래벌판 가운데에 홀로 서 있어서 고산이라고 부른다. 이 산은 장마 때 금성에서 떠내려온 것이다. 원래 금강산에 있던 것이어서 부래산이라고도 부른다.
금성의 관리가 해마다 춘천에 와서 세금을 걷어 갔다. 이 산 때문에 이곳 경치가 좋아 졌으니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며 집집마다에서 세금을 걷어 갔다.
이 고을 사람들은 매년 세금을 내어서 가난해지고 이에 따라 고을 사람들의 원성이 높아 졌다. 이에 수령은 고민에 빠져 병석에 누웠다.
그제서야 수령의 어린 아들이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금성에서 세금을 받으러 온 관리에게 어린아이가 대들었다. “저 바위산이 깔고 앉은 자리세를 내세요. 그리고 저 바위산은 춘천에는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 가세요.” 그후로는 아무도 세금을 받으러 오지 못했다.
옛날 한처녀가 병으로 몸져 누워있는 어머니 병환을 고쳐드리기 위해 등선폭포에서 백일 정성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열심히 정성을 다한 것을 하늘도 아시는지 백일째 되는 날에 어머니 병이 다 나았다. 그 후 효녀는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선녀가 되어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옛날의 가난한 나뭇꾼 총각이 이 곳에서 목욕하는 선녀의 옷을 훔쳐 가지고 와 선녀로 하여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자기와 결혼하여 두 자식을 얻으면 그때 선녀옷을 준다고 하였다. 그래서 선녀는 나무꾼 총각과 결혼을 하였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선녀가 두 자식을 두었으니 하늘로 올라 갈 수 없다고 하면서 선녀옷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제야 안심한 남편은 숨겨 놓았던 옷을 찾아 보여 주었다. 부인은 그 옷을 입어 보고는 양 겨드랑이에 자식 하나씩 끼고 그만 하늘 나라로 올라가 버렸다.
나무꾼은 그후 실의에 찬 세월을 보냈다.
그러던 중 꿈에 하늘에서 선녀들이 타고 올라갈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면 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꾼은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춘천시 서면 덕두원에 있는 등선폭포가 바로 그 폭포이며 일명 경천폭이라고도 부른다.
초등학교 : 금산초등학교, 당림초등학교, 서상초등학교
중학교 : 강서중학교
고등학교 : 강원애니고등학교